수사 사각지대 한국교회 세속화의 민낯

[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검찰이 기업비리 수사를 할 때마다 놀라게 되는 대목은 비자금을 조성하는 방법이 그야말로 기발하다는 것이다. 최근 등장한 종교기관을 이용한 돈세탁부터 전통적인 수법인 미술품 거래까지 실로 다양하다. 올해 3월 구속된 무기중개업체 일광공영 이규태(66) 회장이 교회를 자금세탁 창구로 이용했던 것처럼 종교기관을 이용한 세금(稅金) 탈루나 비자금 조성 사례는 과거부터 심심찮게 논란이 돼 왔다. 사정당국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수사 사각지대에 놓인 데다 비과세(非課稅) 대상인 만큼 자금 흐름 추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부금 등으로 회계처리…비과세 대상이라 추적 어려워
한국교회 신뢰 추락의 원인은 ‘돈’과 ‘권력’


‘비밀방 교회’는
‘검은돈 세탁소’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은 탈세(脫稅) 경로로 교회를 이용해 2010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회장은 러시아 측에서 받은 수수료를 미국 계좌에 보관하고 있다가 일광공영 은행계좌로 보내지 않고 이 교회에 기부금 형식으로 800만 달러(약 90억 원)를 보냈고, 교회는 다시 채무변제 형식으로 이 회장에게 송금했다.


특히 이 회장은 자신이 장로로 시무하고 있는 교회 안에 비밀 업무 공간을 마련해 놓은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던져줬다. 지난 3월 검찰은 서울 삼선동의 한 교회를 압수수색했다. 일광그룹 사옥에서 불과 170미터(m) 떨어진 교회였다. 이 과정에서 교회 3층 이규태 회장의 집무실 안쪽에 또 다른 비밀 업무공간을 찾아냈다. 10제곱미터(㎡) 넓이의 방에는 침대와 금고,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교회 안팎을 살펴볼 수 있는 CCTV 모니터 9대가 설치돼 있었다. 방 한 켠에는 도주로로 보이는 별도의 쪽문이 있었다.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은 이 방이 자금 세탁 창구로 활용했을 것으로 봤다.


또, 이 회장은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면 이 비밀공간 등에 관련 자료를 숨기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일개 교회 장로에 불과한 노인이 교회 안에 집무실을 별도로 뒀다는 점, 지난 2004년 불곰사업(구 소련에 빌려준 차관을 상환 받기 위한 목적으로 구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정부와 협상을 통해 차관을 러시아산 군사장비 및 기술과 방산물자 등으로 대신 상환받는 무기도입 사업) 진행과정에서 중개수수료 70여 억원을 교회에 기부한 뒤 다시 변제받는 수법으로 돈을 세탁한 전력이 있다는 점 등을 볼 때 교회의 태도가 석연찮아 보인다. 또 담임목사의 동생 J모씨가 일광그룹 계열사의 임원으로 있으면서 이 회장의 비자금 조성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는 점도 교회가 직·간접적으로 연계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부금’ 위장
수십억 비자금 조성 의혹

지난 7월 무기 중개 수수료 1000억 원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방산업자 정의승(76)씨도 수년간 교회 기부금 명목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은 지난 4월 정 씨가 장로를 맡고 있는 서울 마포구의 한 교회를 압수수색했다. 교회 측은 의혹을 부인했으나,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기부금 내역서 등을 분석한 결과 일부 자금의 사용처가 불분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정 씨가 해외에 있는 페이퍼컴퍼니(paper company·글자 그대로 물리적 실체 없이 서류형태로만 존재해 회사기능을 수행하는 회사) 계좌로 빼돌린 무기 중개 수수료 1000억여 원 가운데 일부가 기부금 명목으로 교회에 흘러들어가 비자금으로 조성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봤다. 그러나 교회 측은 정 씨의 기부금이 교회 교육관 건립과 주차장 부지 매입 등에 쓰였다고 밝혔다. 또 검찰은 정 씨가 이 교회 외에도 한 기독교 계열 대학교에 수십억 원을 기부한 사실을 확인해 비자금 조성 목적인지 파악하고 있다.

조용기 목사 800억
비리 의혹…
고발인 측 이번주 추가 폭로

최근 여의도순복음교회 일부 장로들이 조용기(79) 원로목사가 교회 돈 800억 원을 부당하게 챙겼다며 검찰에 고발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검찰이 조 목사의 비리 혐의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조 목사는 교회 헌금 유용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현재 집행유예 중이어서 검찰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 30명이 공동으로 검찰에 고발한 조용기 원로목사의 비리(非理) 혐의는 크게 두 가지다. 2004년부터 5년간 매년 120억 원씩, 총 600억 원이 특별 선교비란 명목으로 지급됐는데, 이 돈을 조 목사가 개인적으로 챙긴 의혹이다. 또 조 목사가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200억 원이나 되는 거액의 퇴직금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이달 초 고발인들을 불러 조사한 데 이어, 앞으로 조 목사를 상대로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조 목사의 퇴진을 요구하는 장로들이 검찰에 고발장을 낸 건 이번이 두 번째로, 이들은 2011년부터 이른바 ‘교회바로세우기 장로모임’을 만들고, 조 목사와 장남 조희준(47)씨를 교회 헌금을 빼돌린 혐의로 고발했다. 이에 따라 조 목사는 지난해 1심에 이어 2심 재판에서도 유죄가 인정돼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현재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중이다. 교회 측은 이번 고발 사건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고발인 측 장로들은 이번주 기자회견을 열고 추가적인 비리 의혹을 폭로한다는 계획이어서, 앞으로 조 목사 측의 대응이 주목된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최근 한국 교회의 미래와 교회 개혁의 필요성을 논하는 토론회 등 관련 행사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한국 교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지역 교회 목회자와 평신도의 목소리를 듣는 ‘한국교회 새 변화를 위한 500인 대화마당’이 지난 10월 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아현감리교회에서 열렸다.

“성장주의·배타주의
한국교회 변화해야”

‘내가 꿈꾸는 교회’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 특별위원회가 주최했다.


배태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는 선교 초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던 한국교회가 시대 풍조에 휘말려 물질만능주의, 성장주의, 성공지상주의, 교권주의, 교리적 배타주의, 분열주의, 자본주의, 반공주의, 성직 권위주의에 매몰되고 교회 정체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기를 스스로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오늘에 요구되는 종교 개혁’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교회 신뢰 추락의 원인으로 돈과 권력, 명예 등을 추구하는 세속적 욕망 등을 꼽으면서 세속적 욕망에 대한 절제가 이뤄져야 한국 교회가 바로 살아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 본부의 권흥식 장로는 출석 교인 500만 명의 교회가 1천500만 명 정도로 부풀려 있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 생존의 경쟁 시대에서 번영과 물질을 추구하는 교회가 아니라 나눔과 분배의 가치와 비전을 가지고 행동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평신도는 “목회자들은 사법부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각종 비리가 언론에 보도되더라도 건재하다”며 “그 이유는 목회자의 제왕적 권위에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하고 순종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부동산 투기와 불투명한 교회재정 운영을 하다가 교회 장로에게 고소를 당한 인천 모 교회 담임목사의 사례를 들면서 “이 목사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건재하다. 오히려 범죄 사실을 지적한 성도들을 사탄의 앞잡이로 몰아붙이는 일에 다른 성도를 동원하는 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민주적 교회 운영을 위해 목회자가 독점했던 목회, 재정(행정), 사역 등 세 부분을 독립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songwi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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