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재보궐선거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참패로 끝났다. 부산시장, 경남·제주지사는 한나라당이, 전남지사는 민주당이 차지했다. 선거 직전까지만 해도 누가 이기든 근소한 차이가 되리라 보았지만 결과는 야당의 압승이었다. 불과 50일 전 4·15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바람이 불던 것에 비하면 놀랄만한 민심의 변화이다. 이런 민심을 토대로 향후 정국을 전망해본다.선거 결과에 대해 일단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대통령부터 청와대, 우리당 지도부 모두 심각하게 반성하는 분위기이다. 우리당 지도부는 6·5 재보궐선거에서 국민들의 뜻에 부응하지 못한 것을 심각하게 반성한다고 밝혔다.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은 7일 오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당을 정비해 국정수행능력을 끌어올리고 정치 개혁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열린우리당이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국민은 열린우리당에 회초리를 들었다. 총선 뒤 과반수에 자만하고 민생과 정치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는 과연 이것이 민심의 정확한 반영인가 하는 불만이 나오기도 한다. 열린우리당 한 관계자는 “이번 보궐 선거 투표율이 겨우 28%이다. 과연 이게 전체 국민의 뜻을 반영한 것인가 하는데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관계자는 오히려 냉정하게 이 사태를 바라보기도 했다. “저번 선거에서도 실제 열린우리당의 득표율은 한나라당보다 2% 높았을 뿐이다. 4·15총선과 6·5 재보궐 선거에서 어느 것이 진정한 민심의 반영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여의도 연구소 주변에서도 “민심이라는 것은 변하는 것이다. 저번 4·15 총선에서도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차이는 별로 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고 하지만 결코 우리당이 잘나서 승리한 게 아니다. 역으로 이번에 한나라당이 승리한 것도 결코 우리 힘으로 된 것은 아니다. 저쪽(우리당)이 스스로 몰락한 것”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곰곰이 따져보면 민심이 이유없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비록 투표율이 28%에 머물러 전체 유권자의 뜻을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하지만, 선거 전문가 대부분이 동의하듯 이번 여당의 참패는 여당 스스로 자초한 구석이 많다.우선 여당은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지적이다. 4·15 총선은 결코 열린우리당의 실력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다.

야당이 탄핵 파동으로 스스로 자멸했고, 국민은 이를 심판한 측면이 강하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열린우리당은 길거리에서 지갑을 거저 주운 격”이라고 말했다. 겨우 2% 포인트 차 승리에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대통령, 정부가 모두 들떠서 중심을 잡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정동영 전의장과 김근태 전 원내 대표는 국가를 위한다기 보다는 대선 이미지 구축을 위해 ‘통일부 장관 입각’을 놓고 서로 싸우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는 국민들에게 환멸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총리 밀약설과 자질론, 배신자론이 난무하는 김혁규 총리를 밀어붙이려 하고, 상대적으로 형편이 좋은 영남 지역을 위한 발전 특위를 만든다는 소문은 호남과 충청의 유권자들에게 가슴 깊은 소외감과 배신감을 느끼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의 패배는 이미 예측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승부가 이렇게까지 큰 차이로 결정되리라고는 열린우리당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패배를 수습하기 위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이미 상처는 너무 깊어 보인다. 김혁규 총리 내정 문제도 7일 백지화되었고, 그 타격을 노 대통령이 가장 크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노 대통령이 도무지 당의 의견을 들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문희상 파동을 겪으면서 ‘청와대가 당에 신경쓰지 않을 테니 당도 청와대에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 그럼 도대체 ‘정부 여당’이라는 것이 왜 필요한가. 노 대통령은 지금 리더십의 혼란에 빠져 있는 것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초선 의원이 아니더라도 지금 열린우리당 초재선 그룹에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흐름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이런 흐름을 억누르려고 했던 노 대통령과 지도부의 실책이 쉽게 치유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또한 한나라당은 이번 보궐 선거 승리로 ‘박근혜 대표 대세론’이 더욱 힘을 얻을 전망이다. 우리 정치가 정당의 정강 정책보다는 ‘얼굴 마담‘의 위력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박근혜 효과’는 지속될 전망이다. 실제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도 박근혜 대표가 전면에 나섰기에 한나라당이 승리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정동영·김근태 양강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신기남·천정배 투톱 체제로는 역부족이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입장에서는 별 뾰족한 대안이 없다. 신기남·천정배 투톱을 대체할 만한 카드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와서 다시 정동영·김근태 체제로 돌아갈 수도 없는 것이다.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이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노 대통령이 너무 과욕을 부렸다. 정동영·김근태 의원을 입각시키고, 그 두 분을 김혁규 총리 카드로 관리하려고 했는데, 결국 너무 고집을 피우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처지에서 지금 열린우리당 주변에서는 두 가지 흐름이 나오고 있다. 한 편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과의 관계에서 청와대가 헤게모니를 행사한다는 분석이고, 다른 하나는 오히려 노 대통령의 힘과 권위가 급속하게 위축되고 당이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분석이다. 이번 보궐 선거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민심은 무서운 것’이라는 점이다. 4·15 총선전에는 야당이 그것을 느꼈고,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여당이 그것을 느꼈다. 국민들은 이렇게 무섭게 변하고 있는데, 정치인은 말로는 민심을 두려워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변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표로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