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의 파고가 거세다. 경제 전망은 시계제로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한국경제를 “난류(미국 금리인상)와 한류(유럽·일본의 양적완화)가 교차하는 소용돌이 속에 동력을 잃어버린 조각배”로 진단했다.

이처럼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도전은 북한 핵이나 미·중 간의 외교 줄타기가 아니다. 바로 청년 고용절벽·저출산 고령화·가계부채·노동개혁 등 동력을 잃고 표류하는 한국경제를 회생시키는 것이다.
정치는 전망이 안 된다. 지금의 국회 행태는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하다. 기어이 초가삼간을 태울 기세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인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가 옛말인가 하였더니, 참으로 지금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20대 국회에서 19대 국회처럼 ‘위기불감증의 무능한 정치’가 계속된다면, 한때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며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경제가 ‘엄동설한의 이빨 빠진 호랑이’로 세계인의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

혹자는 구한말과 지금은 ‘국력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민의 총화와 국가개혁을 통해 정치가 나라를 제대로 이끌지 못한 점은 구한말이나 지금이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라 하겠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 1803~1877) 선생은 저서 ≪인정(人政)≫에서 말하기를 “국가의 안위는 인재를 선거하는 날에 결정이 난다”고 하면서 “소인을 내쫓으면 백성이 기뻐하고, 군자를 물러나게 하면 백성이 걱정한다”고 말했다.

‘잘못된 선거’는 ‘선거’를 통해 바로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이 오롯이 깨어있어야 한다. 무능하고 부패한 선출직들에게 ‘국민 소환장’을 보내는 것도 다 보통사람 국민의 몫이다.

알레시 드 토크빌은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했다.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의 저자인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솅크먼은 “정치인을 뽑을 때 유권자들은 마치 복음주의 교회의 신도들처럼 ‘느낌’에 따라 후보를 선택한다”고 지적했다.

내년 4·13 총선거가 지난 15일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120일 대장정의 막을 올렸다. 문제는 현행 선거법과 공천제도는 현역에게 유리하고 참신한 신인의 정치권 진입을 가로막고 있어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점이다.

‘신인이 현역보다 50m 뒤에서 뛰는 100m 경주’에 대해 여야가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일부러 선거구 획정을 늦추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돌고 있다. 마치 야당이 정권탈환을 위해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5법, 경제활성화법 등의 통과를 가로막고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20대 총선의 함의는 박근혜 대통령 임기 후반기 국정주도권을 결정하고, 2017년 대선의 기선을 잡는 의미가 있어 여야가 당의 명운을 건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로 인한 국회 파행과 경제입법 지연 피해는 모두 국민에게 돌아간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총선 목표를 ‘180석 달성’으로 설정했으며, 야당은 과반수 확보를 목표로 정했지만 안철수 탈당으로 ‘일여다야 (一與多野)’ 구도가 가시화되어 패배 우려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분열과 정쟁에 휘말려 경제활성화법과 노동개혁 5법 등이 연말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야당 심판론’이 힘을 받을 수 있고, 손학규 전 대표와 같이 대선주자급 제3의 인물이 총선 전에 통합 신당의 대표를 맡아 총선을 진두지휘하면 총선 결과는 바뀔 수도 있다.

‘천하우락재선거(天下憂樂在選擧).’ 세상 근심과 즐거움은 선거에 달려 있다. 내년 총선을 통해 ‘정치적 상벌(賞罰) 메커니즘’을 작동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최한기 선생이 주장한 “소인을 내쫓고, 군자를 지켜주는” 올바른 선거를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에 걸맞은 선량 선택 기준을 나열해 보자.

첫째, 자유민주주 수호와 경제민주화를 위해 국가운영의 균형과 효율성을 촉진시키고 경제위기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과 인물을 선택하는 데에 국민적 총화를 집중시켜야 한다.

둘째, 진영논리, 패거리 정치에 매몰되어 양당 간에 저급한 거래의 흥정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 국회.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양당 정치’를 국민의 힘으로 종식시켜야 한다.

셋째, 북한에 동조하는 종북세력, 선과 악의 프레임에 갖혀 있는 운동권세력,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역사를 비하하며 폭력시위를 두둔하는 정당과 인물을 응징하고 낙선시켜야 한다.

넷째, 여야 정파를 초월해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국회선진화법 폐지와 북한인권법·태러방지법 제정 등에 앞장서겠다고 공약하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줘야 한다.

다섯째, 당보다는 국가를 앞세우는 후보, 나보다는 당을 위해 영·호남에 안주하지 않고 ‘험지출마’도 불사하는 ‘구당(求黨)’ 후보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줘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화가 된 지가 30년이 돼 가지만, 4류 정치권은 운동권 논리에 볼모로 잡혀 미래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정치인들은 지금 엄혹한 ‘정치 냉소’의 시대를 살고 있다. 광풍이 몰아치는 황야에 쓸쓸히 내버려져 있는 형상이다. 20대 총선을 준비하는 정치인들은 100년 후, 후손들이 쓸 2016년의 역사를 두려워해야 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