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공천으로 내부 물갈이 자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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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vs안철수 지역구에 명망가·새피 수혈
여당, 수도권 야당 강세지역에 거물급 투입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자객’(刺客)은 어떤 음모에 가담하거나 남의 사주를 받고 사람을 몰래 찔러 죽인다. 일본 정치에서는 선거 때 정적(政敵)을 낙선시키기 위해 지명도가 높은 유명 인사를 내보낼 때 ‘자객 공천’이란 표현을 쓴다. 이 때 자객은 주로 여성이었다.

2005년 9월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우정민영화에 반발하며 탈당했던 중진 의원들의 지역구에 미모의 여성 관료, 아나운서 등을 전략공천했다. 2009년 총선 때는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가 자민당 유력 정치인의 지역구에 역시 여성 정치신인들을 대거 내보냈다.
우리나라 정치에선 그동안 ‘표적공천’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상대당의 거물급 인사를 제거하기 위해 대중성이 있는 인물을 영입해 공천하곤 했다. 2012년 총선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이끌던 새누리당이 지금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대표로 있는 문재인 후보의 지역구(부산 사상구)에 27세의 여성 신인 손수조 후보를 공천한 일이 대표적이다.

오는 4월 13일 실시되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에서 표적공천, 자객공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표의 더민주와 안철수 의원의 신당으로 쪼개지는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야권에서 상대방의 핵심 인물을 겨냥한 자객공천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문 대표는 최근 “탈당으로 빈 지역에 과감하게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 정치를 물갈이 하겠다”고 선언했다. 탈당한 현역 의원들에게 보복하기 위해 맞춤형 공천을 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안철수 신당에 참여한 문병호 의원은 “친노 인사 지역구에 강력한 후보를 내는 등 특별 공천에 나설 것”이라며 맞불을 놓았다.

맞춤형 공천으로 ‘물갈이’

정치자객들이 곳곳에 출몰할 지역은 더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천정배 신당이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일 호남이다. 더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최근 영입한 김병관 웹젠 이사회 의장과 이수혁 전 6자회담 수석대표는 모두 전북 정읍 출신이다. 정읍의 지역구 의원은 더민주당을 일찌감치 탈당한 뒤 안철수 의원 진영에 합류한 유성엽 의원이다. 김 의장과 이 전 수석대표 가운데 한 사람이 유 의원을 제거할 자객으로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당을 떠나 천정배 신당으로 가는 권은희 의원의 지역구(광주 광산을)엔 이용섭 전 의원을 보내 응징하려고 한다. 역시 탈당파인 김동철 의원 지역구(광주 광산갑)의 경우엔 운동권 출신 인사를 영입할 것이란 소문이 지역정가에서 파다하다.

더민주당은 탈당을 예고하고 있는 호남의 다른 지역구 의원들에 대해서도 ‘대체 인물’을 준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로 내려올 만한 자객이 누구인지 헤아려보며 탈당 여부와 시점을 저울질 중이라고 한다.

안철수 신당도 맞불을 놓을 태세다. 무엇보다 광주·전남지역의 친노 주류인 강기정(광주 북갑), 우윤근(전남 광양-구례), 신정훈 의원(전남 나주-화순)에 맞설 인물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야권의 심장부 호남에서부터 친노 패권주의 척결을 이슈화시켜 수도권으로 확산하겠다는 전략이다.

따라서 양 진영의 자객공천은 수도권으로도 번질 전망이다. 더민주당은 특히 탈당 뒤 안철수 신당 합류를 선언한 김한길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광진갑에 내세울 참신한 인물 영입에 나섰다고 한다. 잦은 종편 출연으로 인지도가 높은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투입될 수도 있다.

문 대표는 신당 바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선 총선 때 신당의 중심축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안철수 의원도 당연히 표적이다. 안 의원의 지역구는 서울 노원병이다. 이곳엔 새누리당의 신예인 이준석 전 혁신위원장이 출마 채비를 차리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안 의원과 이 전 위원장은 오차범위 내의 접전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더민주는 안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해 ‘차도살인’(借刀殺人·남의 칼을 빌려서 사람을 죽임)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더민주당 후보를 공천하면 야권 성향의 표가 분산돼 이 전 위원장의 당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이런 구도를 감안한 안 의원이 출마지역을 변경하거나 비례대표로 선회할 수도 있다.

안철수 의원 진영에서도 수도권 자객공천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신당 합류를 선언한 외부 인물 상당수가 더민주당 의원들의 지역구를 노린다. 이현웅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 인사수석 출신인 박남춘 의원(인천 남동구) 지역구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홍훈희 변호사는 김태년 의원(경기 성남)에게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

김기완 전 안산시의회 의장은 문재인 대표의 핵심 측근 ‘3철’ 중 한 명인 전해철 의원(경기 안산 상록갑) 지역구와 겹친다. 정두환 극동대 겸임교수는 이목희 정책위의장(서울 금천)에게 도전장을 내밀 태세다.

오세훈·안대희는 험지 출마

자객공천 기류는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감지된다. 칼은 두 개의 표적을 겨누고 있다. 하나는 야당 중진, 다른 하나는 내부의 정적이다.

먼저 김무성 대표는 입버릇처럼 말하는 ‘의석 180석’ 확보를 위해 지명도 높은 인사들에게 ‘험지 출마’를 강권하다시피 한다. 험지는 곧 야당의 중진이나 거물급이 있는 곳으로, 그들을 제거할 자객을 투입하겠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얼마 전 서울 종로구와 부산 해운대구에 각각 출사표를 던졌던 오세훈 전 시장과 안대희 전 대법관을 설득해 험지 출마 승낙을 받아냈다. 두 사람 외에도 텃밭인 영남권에 출마 의지를 갖고 있는 지명도 높은 인사들을 수도권 험지로 돌려세울 구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대구 수성갑에서 더민주 김부겸 전 의원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에 대해서도 수도권의 다른 험지에 출마하라는 권고가 친박계에서 있었다. 하지만 김 전 지사는 “수성갑이 험지”라며 버티고 있다.

이들의 출마지역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정가에선 여러 가지 시나리오들이 나돈다. 그 중에서도 서울의
야당 중진 의원들이 표적이다. 정세균(종로)·김한길(광진갑)·추미애(광진을)·유인태(도봉을)·안철수(노원병)·이미경(은평갑)·박영선(구로을)·전병헌 의원(동작갑) 등이 해당된다.

당 일각에선 호남에도 명망가를 공천해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정현 최고위원이 전남 순천-곡성 재선거에서 당선된 만큼 일부 지역에선 해 볼만 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호남은 험지가 아니라 사실상 ‘사지(死地)라는 점에서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 내부를 보면 이미 대구를 중심으로 자객공천이 진행 중이다. ‘국회법 개정 파동’ 당시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도왔던 대구의 초선 의원 7명이 목표물이다. 이미 여러 명의 청와대 참모나 각료 출신들이 내려가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일부 청와대 출신에 대해선 교통정리도 이뤄지고 있다.
친박계 유력 인사는 “아무리 표적공천을 하려고 해도 지지율이 바닥이라면 본선에서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다. 민심을 얻지 못하는 후보들은 순차적으로 교체하고, 새로운 인물들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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