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한 고강도 군비경쟁 새 단계에 진입
- 사드방어 안 되는 잠수함발사미사일(SLBM)시험 재개

설 연휴가 끝나가는 2월 10일에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직접적인 가동 중단 이유는 7일의 북한의 로켓 발사였지만 일체의 유예나 예고기간 없이 바로 “오늘부터 가동을 중단한다”는 발표는 우리 측의 막대한 피해도 불사하는 극약 처방이었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이 12일에 정의당 개성공단기업주와의 간담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관련 5개부처 차관들이 입주기업 대표에게 전화를 하여 정책협의를 요청한 시각은 정부의 발표 3시간 전인 10일 오후 2시다. 4시에 이루어진 면담에서 정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은 “공단 내 원자재와 완제품 반출을 위한 시간만이라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홍 장관은 “한 기업 당 차량 1대와 근로자 1인만 공단에 출입할 수 있다”며 사실상 불허했다.

정 회장에 따르면 개성공단에서 원자재와 완제품을 반출하지 못한 것은 북한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출입제한 조치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여러모로 의문이다.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일체의 조치 없이 왜 정부가 이처럼 사실상 공단 폐쇄라고 할 수 있는 극단적 선택을 했느냐는 의문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홍 장관이 청와대의 극단적 조치에 일관되게 반대했다는 점이다. 사실 통일부 입장에서는 이렇게 많은 피해를 불사하면서 남북관계의 마지막 상징인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건의했을 리는 없다. 실제로 통일부 출입기자를 비롯한 주변 소식통들은 “홍 장관은 가동 중단조치를 극력 반대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청와대 입장은 달랐다. 일본이 9일에 독자적인 대북 제재안을 발표했고 10일에는 미 하원의 북한에 대한 포괄적 제재법안이 표결에 붙여지는 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국제공조 차원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대북조치를 발표해야 할 절박성을 더 의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통일부의 신중론은 먹혀들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여기서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가 과연 발표 이후 중장기적인 남북관계까지 종합적 고려한 합리적 선택인지, 아니면 무언가 북한을 아프게 할 결정적 한 방이 필요해서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인지가 혼란스러워진다.

11일에 북한은 사실상 개성공단을 영구적으로 폐쇄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개성공단의 “군사통제 구역 선포”를 결행한다. 이 조치는 공단 조성으로 인해 후방으로 철수한 북한 6사단 병력과 중무장 포병부대를 공단 지역에 재배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전쟁 당시 개성에서 한국군 1사단이 무너지자 서울이 사흘 만에 인민군에 완전히 점령되었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공단 조성 이전에 개성의 기동로는 서울에 가장 위협적인 북한의 남침 축선이었다.

2003년 개성 공단이 들어서면서 북한 6사단 기갑부대와 포병연대 등 최정예 핵심부대 6만여명이 후방으로 철수한 것은 대한민국 안보에 있어 망외의 큰 소득이었다. 그런데 북한의 발표는 사실상 군대가 물러난 자리에 다시 군대를 재배치하는 상황을 조성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만일 북한의 발표가 실행에 옮겨질 경우에는 개성공단의 정상화는 사실상 물 건너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개성공단의 폐쇄는 향후 남북관계에서 경제와 안보가 교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극도로 제약할 것이다. 지난 냉전의 역사는 군대가 안보를 지킬 수 없을 때 경제가 평화를 지켜온 역사다. 1994년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는 제2차 오슬로 협정을 통해 요르단강 서안의 점령지를 팔레스타인에 양보하는 통 큰 결단을 하였다.

이는 “땅과 평화를 맞바꾼다”는 평화사상의 발로로서 이 합의를 통해 그해 이스라엘 라빈 총리는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의장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스라엘의 근본주의자들은 한 집회장에서 라빈 총리를 저격하였으며, 이후 등장한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그간의 모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을 무력화하였다. 또다시 전쟁과 테러의 기나긴 암흑 속으로 빠져든 이후 상황은 더욱 참담했다. 오늘날 중동에서 총성과 폭음이 멈추지 않는 것은 1994년에 평화가 저격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험은 다른 한편으로 안보문제가 경제문제와 교환될 수 있느냐, 즉 “돈으로 평화를 산다”는 자유주의적 접근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다. 이번 공단 폐쇄 조치로 이 점이 북한에도 명확히 각인되었으리라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간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은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일지언정 북한을 회유하는 수단으로 인식하지 않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따라서 공단 폐쇄 이후 남북관계는 경제적 협력이라는 완충지대가 전혀 없이 오직 국가의 의지와 안보, 생존의 논리가 충돌하는 단순화된 방향으로 재편될 것이다. 이는 한반도에서 남북한 간의 고강도 군비경쟁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우선 북한은 기존의 방식이 아닌 전혀 새로운 비대칭적·재래식 방식으로 한국에 국지적 위협을 가하는 동시에 미국과 일본에는 전략무기라 할 수 있는 핵과 미사일 위협을 증가시키는 데 총력을 경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3, 4월 키-리졸브 훈련은 북한이 또 다시 준전시사태를 선포하고 한반도에 강도 높은 긴장을 조성할 결정적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남한은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소위 ‘참수작전’ 훈련 상황을 공개하고 확성기 방송을 증가시키며 필요시에는 군이 직접 대북 전단 살포에 나서는 추가적인 압박 정책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한국 안보의 취약점인 수도권 방어를 지속적으로 위협하면서 서해 NLL과 비무장지대 일원에서 국지적 도발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여 진다. 또한 최근 한국에 미국의 사드 고고도 요격체계 도입의 여론을 관찰한 북한은 사드가 방어할 수 없는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시험 재개와 단거리 저고도 스커드 미사일을 수도권을 표적으로 증강 배치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지난해 8월의 준전상태를 방불케 하는 고강도 위기의 양상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장기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데 대해 정작 당사자인 한국은 물론 미국과 중국, 일본과 같은 국가들이 과연 장기간 인내할 수 있느냐는 문제도 제기된다. 4년여 전에 센카쿠에서 중국과 일본의 경비정이 물리적 충돌을 일으켜 긴장이 고조되자 미국과 중국은 막후협상을 통해 해당 해역의 안정을 도모하여 최근에는 인근 해역에 충돌의 가능성이 억제되어 왔다. 한반도에 있어서도 미국이 중국과 다른 막후협상을 시도할 경우 의외로 군사적 긴장은 진정되면서 한반도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도 남아있다고 보아야 한다.

단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정권 말기로 대외정책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이 위기관리에 있어 취약성으로 인식될 수 있다. 문제는 어떠한 시나리오든 간에 한국이 주변 정세를 주도적으로 풀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한반도 문제가 강대국 정치의 양상으로 전락하게 되면 남과 북은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밀려나 정세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 당한다. 이는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의 박근혜 정부의 대북 압박 조치는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다.

여기서 북한 핵 문제는 장거리 마라톤을 하듯이 긴 호흡으로 처리했어야 할 한국 정부가 마치 100미터 경주하듯 호흡이 가쁘게 폭주한 결과 나중에 속도조절에 실패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정작 한국 정부에 가장 심각한 재앙이 바로 이 점이다. 이 점에서 박근혜 식 ‘벼랑 끝 전술’의 성패는 늦어도 총선이 있는 4월경에는 판가름 날 것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
국무총리비상기획위원회 혁신기획관
대통령비서실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방전문위원
14.15.16대 국회 국방위원회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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