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 온 편지 공개

[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본지가 가장 최근에 입수한 ‘희대의 사기꾼’ 함바브로커 유상봉(70·구속기소)씨의 편지는 불과 2주 전인 2016년 1월 31일자에 작성됐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S법무법인 A회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 씨는 “법무법인 D를 선임해서 너무 어처구니 없는 재판결과로 절망하고 있다”며 “자신의 재판문제로 만나고 싶다”고 적었다. 또 A회장의 형인 관료 출신 B대학교수에게 3억 원 이상을 썼다며 믿기 어려운 주장도 피력했다. 그가 과거 함바사업 과정에서 공직자들에게 거액의 뇌물(賂物)을 줬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유 씨의 이런 언급이 과연 어디까지 사실일까. 분명한 것은 그가 뿌린 뇌물의 액수가 상당히 많이 부풀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유 씨의 편지에는 재기를 노리는 사기꾼 특유의 집요함과 치밀함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협박과 회유로 점철된 유 씨의 편지를 공개한다.


“저는 아직도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1
유상봉의 옥중편지 ?

존경하는 회장님께 올립니다.


그동안 한 번도 연락 올리지 못해서 진심으로 송구하고 죄송하옵니다.


사실 제가 법무법인 D를 선임해서 너무 어처구니 없는 재판결과로 많이 절망하고 있어서 회장님께 꼭 도움을 청하고 싶었습니다.


회장님! 저에 대한 오해가 있으실 것 같아서 그동안 ○○○ 원장님과의 금융거래내역과 ○○○과의 통화내역 그리고 제가 운영했던 그린월드(주)의 총괄사장 명함으로 영업활동을 한 내역, ○○○원장님이 저를 도와주시기 위해 동해시청과 평택시청 그리고 삼척시청까지 직접 출장가셔서 제가 현지에서 돈을 인출해서 경비를 지급한 금융거래내역, 행정고시 동기인 ○○○시장과 ○○○부시장이 제가 운영했던 그린월드(주)를 평택시와 동해시로 옮기라고 했다며 ○○○이 말씀하셔서 6천만 원을 투입해서 동해시와 평택시에 지사를 설립한 내역 및 평택시에 설립한 그린월드(주)의 지사주소로 ○○○의 명함을 총괄사장으로 만들어주어 ○○○이 직접 함바식당 영업을 하게 했던 내역 등을 보냅니다.


저는 실질적으로 ○○○원장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동해와 평택에 법인을 설립하는 비용 등과 3억 원 이상을 썼으며 ○○○이 저를 도와준다고 해서 별도 경비 6천여만 원을 지불하는 등 3억 6000여만 원을 썼습니다. 이런 확실한 금융거래내역과 활동내역, 통화내역 등이 있고 심지어 ○○○이라는 여자에게 돈을 보내면 식당해주겠다고 해서 통장으로 2천만 원을 송금해주기도 했습니다.


회장님! 이런 엄연한 사실이 있는데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회장님! 회장님의 말씀이 계시면 고소를 취하하겠습니다. ○○○을 따끔하게 꾸짖어주십시오. 그리고 회장님께서 급히 저를 한번 접견오셔주십시오.


제 재판문제로 급히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을 1억 5천만 원에 선임해서 말도 안 되는 억울한 판결을 받았습니다.


회장님께서 보시면 저보다 더 크게 분개하실 것입니다. 급히 뵙게 해주십시오.
(2016년 1월 31일 편지에서 발췌)


#2
유상봉의 옥중편지 ?

존경하는 C청장님께


며칠 전에 편지했던 유상봉입니다.


○○○은 그동안 저에게 청장님을 비롯한 10여 명에게 충분한 인사를 하면 저에게 건설현장 식당을 운영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며 2억4천만 원을 받아 이를 편취했습니다.


현재 저는 서울의 공직자 비리 합동수사단의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로 이송갔습니다.


제가 청장님께 편지한 것은 ○○○과 그의 지인인 ○○○가 서로 짜고 저에게서2억4천만 원을 받아 편취한 사실에 대해 합동범죄수사단에 진정서를 접수했으며(중략)


분명히 말씀 올리지만 늦어도 이번주 금요일까지 ○○○이 처리해주도록 이야기 해주시길 바랍니다. 진정서에 나타나 있는 공직자가 10여 명이나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연락이 없는지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2015년 2월 24일 편지에서 발췌)

#3
유상봉의 옥중편지 ?

존경하는 K구청장님께 올립니다.


제가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당시 ○○○교수가 구청장님에게 선거자금을 조금만 내면 관내의 건설현장 식당을 구청장님을 통해서 시행사에 이야기해서 도와주겠다고 해서 지방선거가 있기 바로 직전인 5월 마지막주 일요일에 ○○○가 같이 구청장님 선거 사무실을 방문하고 구청장님께 인사드리고 제가 같이 있는 자리에서 ○○○가 봉투를 건넸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늘 있을 수 있는 아름다운 정말 극히 인간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경험이 많습니다.


○○○은 그후에도 ○○○구청장과 ○○지방경찰청장, 인천○○서장. 인천○○서장, 강원 ○○서장, 천안 ○○서장 등에게 인사를 하면 저를 도와주겠다고 해서 인사비용을 건넸습니다.


또한 광주의 현장식당을 광주 ○○경찰서 정보과장과 ○○세무서 ○○○과장에게 답례를 해야 한다고 1500만 원을 달라고 해서 현금으로 인출해 주고(중략)


저는 이런 사실 관계를 전부 적어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진정서를 접수했습니다.
(2015년 4월 11일 편지에서 발췌)

#4
유상봉의 옥중편지 ?

L청장님께 드립니다.


지난번 편지했던 유상봉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 지난 지방선거 당시에 사무장을 통해서 선거비용으로 지불했던 200만 원을 반환하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즉시 반환해 주세요.


○○○을 비롯한 그와 관계된 모든 사람을 검찰에 고소했습니다만 검찰에 고소했다고 지금 당장 돈을 받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로 극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제 입장을 헤아려주시고 ○○○을 통해서 받은 200만원을 편지 받는 즉시로 우체국에 가셔서 영치금으로 송금해주시기 바랍니다.
(2015년 6월 22일 편지에서 발췌)

#5
유상봉의 옥중편지 ?

Y사장에게


벌써 17개월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이곳 구치소에서 죽음의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작년 2월부터 6월까지 10억 여원의 경비를 쓰면서 부산, 울산, 경남, 인천, 강원, 서울, 경기 지역에서 무려 30여 곳의 현장식당 운영권 수주 영업을 위해 (뛰었고) 거의 완성단계에서 구속돼 업무가 중단돼 있습니다.


만약 내가 작년 8월경에만 구속됐어도 20여 개의 현장은 완전히 마무리가 됐을 것입니다.


김 사장 제가 이곳에서 있으면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 비서실 ○○○비서질장에게 수없이 편지해서 4개 현장의 수주를 거의 끝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정부쪽에 있는 사람의 주선으로 미국의 ○○○채권 4만주 시가 40여억 원을 소지하고 있는데 현금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제가 구속까지 되면서 참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저도 돈 받을 사람들을 고소해서, 정부 요직에 근무했던 전직 공무원 등 21명에 대해 120여억 원을 받으려고 고소했으며, 앞으로도 20여 명에 대해 다시 고소해서 300여억 원을 받으려고 합니다.(중략)


저의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합의서 및 처벌 불원서 등을 급히 해주어서 11월 27일 석방되게 해주세요.


내가 출소하면 사무실을 새로 얻어서 꼭 큰 돈을 벌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아직도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큰 돈도 모을 수 있습니다.


저와 함께 큰 일을 합시다. 주변에서 나를 욕되게 한 사람들에게 꼭 보란 듯이 일어날 것입니다. 저는 정말 아직도 자신이 충분히 있으며 돈을 모으기 위한 좋은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몇 백억 모으는 것은 몇 개월이면 할 수 있습니다.
(2015년 11월 12일 편지에서 발췌)

 

2011년 발생한 ‘함바 비리’ 사건의 주범인 브로커 유상봉씨가 최근까지 자신이 알고 지내던 전·현직 공직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함바(건설현장 식당) 운영권 수주를 위한 청탁을 집요하게 해온 것으로 본지 취재결과 드러났다.


유 씨는 또 일부 공직자에게는 자신이 준 돈을 돌려달라는 협박성 편지를 지속적으로 보냈으며 최측근들에게는 전·현직 공직자들을 만나 돈을 받아오라는 등의 지시를 내렸다.


이는 최근 본지가 유 씨의 서신 65통을 입수해 정밀 분석한 결과다. 본지가 확보한 편지들은 2012년 4월부터 2016년 1월 31일 사이에 작성됐다. 유 씨가 서울구치소와 성동구치소·부산구치소 등에 수감돼 있던 시기다. 유 씨의 편지에 언급된 인물은 현직 여당 국회의원, 전 부산광역시장, 현직 경찰간부, 전 행정자치부 차관, 서울의 현직 구청장,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장, 관료 출신 수도권 소재 유명사립대 교수 등 각계 인사들이 망라돼 있다.


유 씨의 한 측근은 “편지에 언급된 이들은 유 씨와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로 실제 로비를 벌인 대상들”이라고 말했다.


유 씨는 서울의 한 현직 구청장에게도 편지를 보내 “지난 선거 때 캠프에 선거자금을 냈다. 도와주지 않으면 검찰에 진정서를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편지에는 다양한 로비 수법도 담겨 있다. 유 씨는 현금 외에도 평소 자신의 BMW자동차에 50만∼100만 원 상당의 명품 몽블랑펜 수십 자루, 백화점 상품권, 고급 양주를 갖고 다니며 공직자들을 만날 때마다 무차별적으로 선물공세를 펼쳤다.


유 씨와 10여 년 동안 함바사업을 함께 했다는 한 측근은 “5년 전 함바사건으로 구속된 직후 병보석 등으로 풀려나 있을 때도 병원에서 매일 외출증을 끊어 로비를 하러 다녔고, 주말에는 과천 경마장에 출입하며 경마도박을 즐겼다”고 말했다.


5년여가 지난 2016년 2월.


‘악마(惡魔)의 덫’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희생양을 기다리고 있다. 감옥으로부터 배달된 유 씨의 편지. 구속 수감된 직후부터 최근까지 써내려간 이 편지에 수많은 공직자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유 씨는 측근들에게도 ‘악마의 덫’을 준비하라는 편지를 끊임없이 보냈다. 함바게이트는 현재진행형이다. 편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잘못된 만남’을 가진 누군가를 노리며 감옥으로부터 끊임없이 배달되고 있다. 

songwi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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