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넘치는 사회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지난해 말 유명 개그맨이자 왕성한 활동을 하던 정형돈 측은 돌연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불안증세가 과거보다 심각해졌다는 게 하차의 이유였다. 이에 대중은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특히 직업적 스트레스, 불안한 경제현실 등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따라, 정신질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신질환 발병 지속적으로 증가 “상담 늘어” 
가볍게 생각해선 안 돼…사회적 비용도 초래


지난 2월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는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제78회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일반 국민들의 우울증 등에 대한 조기치료 및 사전예방을 위해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확정했다. 이는 우울, 불안, 중독 등 지속적으로 사회적 문제로 지목된 정신건강 문제 및 이로 인한 자살, 범죄 등에 따른 것이다. 이에 정부는 국민 정신건강 문제의 사전 예방, 조기 관리에 중점을 둔 대책을 마련했다.


이번 대책의 주요 내용은 ▲ 일반인들을 위한 정신건강서비스 지원 ▲ 정신건강의 문제 발생 시 조기 집중치료로 원 상태 회복 ▲ 만성 환자의 ‘삶의 질’ 제고 ▲ 중독 및 자살 예방 관리 강화 등이다. 이는 보건복지부, 교육부, 고용부 등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마련하고 참여한 대책으로, 이는 올해부터 2020년까지 적용된다. 특히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 및 차별을 없애고, 생애주기별 정신건강 관리를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대책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60만’의 우울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현상은 이제 ‘소수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건복지부는 2011년 발표한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를 통해 국민 4명 중 1명은 전 생애에 걸쳐 한 번 이상의 정신질환을 경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한국사회에 대한 국제지표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한국은 11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가 60만 명에 육박, 중증 정신질환자는 50만 명에 이른다. 이는 전체 한국인 중 약 12%가 우울증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 중인 셈이다.


실제로 서울 강남 지역에서 우울증 및 중독 등 정신질환을 상담·치료병원을 운영하는 관계자는 “과거보다 정신질환 상담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확연히 증가했다”며 “이들 중 상당수는 사회적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을 겪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정신적 문제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알코올, 도박, 마약 등에 의존하는 현상인 ‘중독’ 증상을 겪고 있다”며 “이 역시 정신질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정신질환자 수가 과거보다 증가했음에도 여전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상당수 환자들은 내원 시 얼굴을 가리고 온다고 덧붙였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약 2년 전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는 A(33·여)씨는 “요즘 정신과 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워낙 많이 늘어, 이게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상담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친구가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것을 보고, ‘한국 사회에서 우울증, 스트레스 등의 정신질환 치료는 여전히 이상한 병’이라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고 언급했다.


최근 정신과 상담을 고민하고 있는 B(28·여)씨 역시 “대학시절 친구가 직장 내 스트레스로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등 정신적 문제가 ‘이상한 병’인 것만은 아니지만, 이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인식이 두려워 아직도 병원 상담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니던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뒤, 다른 직장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데다 집안에선 ‘결혼’ 문제 또한 꺼내고 있어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다”면서 “나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학교생활, 직장업무과 같은 다양한 이유로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이 주변에도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인구 1000명 당 항우울제 복용률(DDD, 1일 사용량 단위)은 20으로, OECD 평균인 58에 비해 낮은 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항우울제 복용률이 낮다는 사실에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치료하기보다 방치하는 것에 가깝다고 지적해온 바 있다.


이처럼 정신질환 등 정신건강 문제가 보편적인 사회현상이 됐지만 이와 반대로 편견이 없어지지 않는 데 대해, 정부가 최근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이에 대한 문턱을 낮추기 위한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25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국민이 마음 편히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는 것이 대책의 핵심”이라며 “정부뿐 아니라 재계, 종교계, 교육계 등 사회 각 분야의 관심과 협력을 바탕으로 대응역량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사회적 낭비로도  

건설사업을 크게 벌이다 실패한 뒤 전 가족이 사채업자에게 쫓겼었다는 C(62)씨. 그는 “빚 독촉 전화를 수도 없이 받았던 당시,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우울증에 심하게 걸린 경험이 있다”며 “하지만 당시 빚을 갚을 여력조차 없어 정신과 상담을 받을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신질환 문제를 상담·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은 개인별로 천차만별이다. 초진의 경우 만 원대에 머무는 경우도 있지만, 정신과는 장기적인 상담 및 치료를 요하므로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중독·재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관계자 역시 “마음의 병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기에 꾸준히 병원에 와서 상담을 해야 하고, 이 때문에 장기간 드는 비용을 부담스러워 하는 환자들이 많다”면서도 “중간에 치료를 관두는 환자들도 상당한데, 이런 문제는 결국 사회적 낭비로 이어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문제는 정신질환이 개인에서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정부가 지목한 4대 중독(알코올, 도박, 인터넷, 마약)으로도 이어진다고 언급한다. 중독전문가로 알려진 조성남 강남을지병원장 역시 “중독은 결국 정신건강의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일각에선 정신질환이 사회적 낭비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상담·치료, 정신질환으로 인한 일상생활의 어려움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중독 및 자살 예방·관리 등 사전 예방 및 추후 방안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대책의 내용 중 눈에 띄는 것은 내년부터 전국 시군구에 정신건강증진센터 223곳을 만든 뒤 전문 상담 의사인 ‘마음건강 주치의’가 배치된다는 점이다.


동네의원에서도 정신적 문제를 검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다. 또한 2017년부터 건강보험 외래치료 시 본인부담률을 현재의 30~60%에서 20%로 대폭 낮춰, 정신질환을 상담 및 치료하는 이들의 비용부담을 절감시킨다는 계획이다. 

yon8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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