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성 공방·날카로운 신경전 ‘끝나도 끝이 아니다?’

▲ <뉴시스>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기업별 주주총회(이하 주총) 시즌이 돌아왔다. 주총에서 합병안이 가장 주목받을 전망이다. 향후 사업은 물론 후계구도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승자의 저주도 함께 따라다닌다는 것이 함정이다. 합병이 마무리된 기업 중 일부가 이 저주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허우적대고 있다.

빅딜 엇박자 피했지만 매입액 두고 설왕설래
안정적 비즈모델 확보…뚜껑 열어보면 ‘글쎄’

1일 금융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3월 주총 일정을 공시한 상장사 826개 중 78%(644개)가 금요일에 주총을 연다.

25일 금요일엔 44%(367개) 기업의 주총이 몰렸다. 한화·한화케미칼·한화테크윈 등 한화 계열사를 비롯해 KB금융·LS·대림산업·엔씨소프트·코오롱·남양유업 같은 회사가 이날 주총을 연다.

18일에는 SK텔레콤 등 SK계열사와 LG전자 등 LG계열사, 대한항공 등 한진 계열사, 현대중공업 계열사가 주총을 개최한다. 삼성전자 등 삼성 계열사와 현대차 등 현대차 계열사의 주총은 11일에 몰렸다.

이미 주총을 통해 인수합병이 마무리된 기업도 많다. 전자소재 전문기업 엘앤에프(대표 이봉원)가 자회사 엘앤에프 신소재를 흡수합병하고 이차전지 양극활물질 사업 구조를 일원화했다. 전기차 등 이차전지 시장 확대에 맞춰 사업 역량을 집중하고 조직운영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엘앤에프는 지난달 5일 엘앤에프신소재를 합병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엘앤에프는 존속, 엘앤에프신소재는 해산으로 소멸될 예정이다.

엘앤에프는 2005년 이차전지 양극활물질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엘앤에프신소재를 설립했다. 기존 주력사업은 디스플레이 백라이트유닛(BLU)이었지만 양극활물질 사업 규모가 더 커지면서 엘앤에프도 주력 생산품을 BLU에서 양극활물질로 전환, 2013년 BLU 사업에서 철수했다.

코넥스기업으로는 최초로 스팩합병에 나서는 닉스테크가 코스닥 합병상장을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을 꿈꾼다.
박동훈 닉스테크 대표이사는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오는 4월 12일 교보4호스팩과 손잡고 엔터프라이즈 보안솔루션 전문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1995년 설립된 닉스테크는 정보보안 분야에서 20여년간 사업을 유지하며 안정적 사업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내부에서 정보유출을 제어하는 클라이언트 보안 솔루션과 외부에서 침투하는 위협을 보호하는 네트워크 보안 솔루션, 고객 맞춤형 서비스 추진을 위한 솔루션 서비스 등을 주력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다.

박 대표는 “설립 당시 약 300여개에 달하던 정보보안 전문기업은 현재 약 150여개로 줄인 구조조정이 이뤄졌다”며 “이는 차별화된 제품 경쟁력과 시장 신뢰성 여부에 따라 업계가 자연스럽게 재편된 것인데 현재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1500여개의 고객사 확보가 주된 경쟁력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교보4호스팩과 닉스테크는 각각 2.007대1로 합병비율이 정해졌으며, 주식매수 예정가격은 2017원이다. 오는 25일부터 4월 11일까지 주주매매 거래 정지기간을 거쳐 4월 12일 코스닥 시장 상장 예정이다. 주관사는 교보증권이 맡았다.

게임업계도 마찬가지다. 넷마블게임즈의 개발 자회사 넷마블몬스터(이하 ‘몬스터’)와 넷마블에스티(이하 ‘에스티’)의 합병이 개시됐다. 

2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몬스터와 에스티는 지난달 26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몬스터가 에스티의 흡수합병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합병 법인은 몬스터의 김건 대표가 대표이사를 맡게 된다. 김 대표는 경영을, 유석호 에스티 대표는 개발에 전념할 계획이다.

‘몬스터 길들이기’란 모바일게임으로 유명한 몬스터(옛 씨드나인게임즈)는 지난 2000년 설립 이후 PC 패키지부터 온라인과 모바일게임을 두루 개발하다 2010년 2월 넷마블게임즈(당시 CJ인터넷)에 인수됐다.
원래 넷마블게임즈는 지난해 초만 해도 몬스터를 비롯해 ‘알짜’ 자회사인 넷마블엔투·넷마블넥서스 3곳을 증시에 먼저 상장시킨다는 계획이었으나, 단일 흥행작이 아닌 다양한 라인업으로 지속 성장의 기반을 다진 이후에 상장 한다는 방침으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몬스터는 액션 역할수행게임(RPG) '레이븐'으로 유명한 에스티(옛 에스티플레이)와 합병, 덩치를 불려 향후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카카오(대표 임지훈)는 엔진과 다음게임 합병을 결정했다고 지난달 24일 밝혔다.
엔진과 다음게임은 지난 23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합병을 최종 결의했으며, 내년 2월 양사 임시주총을 거쳐 상반기 중 합병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합병 후 존속법인은 엔진이 되며 대표직은 남궁훈 현 엔진 대표이사가 맡게 된다.

카카오 관계자는 “두 게임 계열사 간 합병으로 PC와 모바일 게임영역에서의 시너지가 극대화 될 것”이라며 “향후 독자적인 국내시장 확대 및 해외 진출을 위한 추진력 있는 게임 퍼블리싱 전문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 넘어 산’

주총을 통해 합병 승인이 이뤄졌다 해도 끝난 것은 아니다. 과거 사례에서 보듯 승자의 저주와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다.

CJ헬로비전이 주총을 통해 SK브로드밴드 합병 승인을 가결시켰지만 미래창조과학부가 여전히 철저한 검토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경쟁사 및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거세 당분간 SK텔레콤의 고민이 이어질 전망이다.
조경식 미래부 대변인은 “인수 허가 심사는 관련법에 따라 미래부와 방통위, 공정위 등 3개 부처가 함께 진행 중인 사안으로 기업 주총 결과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며 “시일에 구애받지 않고 문제가 될 수 있는 모든 부분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수합병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KT와 LG유플러스가 주총 결과를 기점으로 다시 한번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양사는 공동자료를 통해 ▲방송통신 시장 황폐화 ▲방송법 위반 소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소지 ▲정부 심사재량 제약 ▲소액주주 이익 침해 배임적 행위 ▲주주·채권자 신뢰 및 권리 훼손 등 총 6개 부문에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반대했다.

KT 관계자는 “업계와 학계,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총을 강행한 점이 매우 유감스럽다”며 “모든 방법을 동원해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저지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업계 전문가는 “적법한 절차에 따랐다고는 하지만 CJ헬로비전이 굳이 이 시점에서 주총을 개최하고 합병 승인을 가결시켜야 했는가라는 점은 의문”이라며 “기업이 주주를 앞세워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는 식으로 비춰질 경우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CJ헬로비전은 지난달 26일, 발행 주식 7744만 6855주 중 75.2%인 5824만1752주가 참석한 가운데 SK브로밴드 합병계약서 승인을 가결시켰다. 찬성률은 전체 발행주식의 73.06%, 참석 주식의 97.1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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