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가슴에 안긴 고요한 바다와 그 바다를 품에 안고 살아가는 통영 사람들의 삶의 군상들이 봄 마실 떠나온 여행자의 발걸음을 더욱 들뜨게 한다. 그 풍경 속을 비집고 동네 마실 댕기듯 어기적거리는 동안 귓가에는 끊어지지 않는 한 곡의 왈츠가 경쾌하게 흐르고 있었다.

통영 먹거리의 모든 것! 중앙시장

새벽에 서울을 떠난 버스는 점심이 되기 전에 나를 통영에 데려다 놓았다. 출출함부터 달래려 중앙시장으로 움직인다. 그곳에 통영의 식탁이 기다리고 있다.

전국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크기의 어시장과 통영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 그리고 구수한 통영 아주머니들의 입담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빨간 대야에 가득찬 해산물을 가리키며 아주머니들이 흥정을 걸어온다. 참 착한 가격이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잡고 앉아 두툼하게 썬  회 한 접시를 맛보고 싶지만 모처럼 느끼는 봄기운이 여행자의 발길을 재촉한다.

중앙시장은 통영 여행의 중심이기도 하다. 시장의 동쪽으로는 동피랑 벽화마을이, 남쪽으로는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바다와 항구, 문화마당과 강구안 골목, 그리고 남망산 조각공원이 모두 지척이다.

두둑해진 배를 두드리며 동피랑 벽화마을로 향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슬슬 걷기로 한다.

쌔기 오이소, 동피랑 벽화마을

동피랑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도 참 오래전 일이다. ‘그런 곳도 있어?’ 하던 생각이 언젠가부터 바뀌어서 이제는 통영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느껴질 정도니 이 마을에 대한 호기심이 꽤나 높긴 했던 것 같다.

중앙시장을 벗어나자 금방 입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가파른 계단과 언덕을 따라 시골마을 풍경이 나타나고 그 풍경을 따라 소소한 볼거리들이 알록달록 색동옷을 입은 채 이어진다.

우리나라 대표 벽화마을의 자존심일까? 단순히 그림이 그려진 벽화마을만은 아니다. 벽화 속에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있고 우리네 삶에서 빠져나온 공감백배 이야기들과 때로는 폭소를 터뜨리거나 뭉클해지기도 하는 그들의 모습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좁은 골목을 내어준 주민들의 환영 인사 ‘쌔기 오이소!’ 어서오세요, 한마디가 참 고맙게 다가온다. 잠시 뒷동산에 올라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이렇게 가슴 따뜻한 풍경을 선사해 주니 말이다.

마을을 내려와 바다 저편에서 동피랑 마을을 다시 보게 됐다. 마을의 가장 높은 곳을 지키고 선 누각인 동포루에서 바라보던 통영항의 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다가온 동피랑 마을에는 이미 봄꽃이 만개한 것처럼 보였다.

아지랑이 꽃피는
남망산 조각공원

동포루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면 왼편으로 또 다른 언덕이 있고 그 언덕 위에 서있는 멋진 현대식 건물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눈에 봐도 예술의 장임을 짐작할 수 있는 그곳은 통영 예술 활동의 중심지, 통영시민문화 회관이다.

동피랑을 내려와 잠시 그쪽으로 걸으니 금방 언덕 입구다. 그곳에서 남망산 조각공원이 먼저 여행자를 반겨준다.

마치 바다를 조망하기 위 해 만들어진 원형경기장처럼 둥근 곡선을 그리며 층을 이룬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제 막 초록 봄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정원에 틈틈이 자리 잡은 조각작품들이 햇살을 받아 봄날의 운치를 더한다.

사잇길을 걷다 보니 통영 운하를 따라 멀리 통영대교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도심 속에 흐르는 낭만을 벤치에 앉아 잠시 누려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통영 앞바다는 동피랑에서 보이던 그 바다와는 사뭇다르다. 통영 시민의 젖줄이 되어주는 운하를 따라 빼곡하게 들어선 삶의 터전이 통영의 현실을 얘기해주고 있는 것 같다.

동양의 나폴리가 이곳인가,
강구안

남망산에서 내려와 항구를 따라 걸었다. 육지까지 바다가 들어온 항구 강구 안에는 다양한 풍경이 펼쳐진다.

낚싯배를 수리하고 그물을 다시 엮는 어부들, 문화마당에서 솜사탕을 나눠먹는 사람들, 길게 늘어선 꿀빵집과 충무김밥집, 그리고 봄기운 물씬 풍기는 알록달록한 옷차림의 관광객들. 통영이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이유가 이런 풍경들 때문일까. 복작거리는 항구의 오후 속에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강구안의 넉넉한 여유는 거리의 뒷골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꿀빵집과 충무김밥집 사이로 스며들어가면 작은 골목이 사방으로 이어진다. 이곳에 오래된 통영이 남아있다. 여전히 뚱땅뚱땅 농기구를 만들어내는 공작소가 신기할 따름이다.

잠시 주저앉아 낫을 가는 어르신의 모습을 지켜보며 사진을 찍었다. 한때 연탄불에 장어 굽는 냄새가 진동하던 골목에는 이제 단 한 집만 남았다는 안내판이 걸려있다.

이 골목을 지키고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옛 모습들. 그곳에서 낡음이 아닌 오래돼 더욱 잘 익은 좋은 술의 향기가 풍기고 있었다.

99계단의 인생, 서피랑 마을

동피랑 마을의 정상에 멋진 누각이 있다.

동포루라는 이름의 이 누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또 다른 누각이 눈에 띄었다. 동피랑과 중앙시장을 가운데 두고 마치 아랫마을 윗마을로 나뉘기라도 한 듯 그곳의 누각은 서포루, 마을 이름은 서피랑이다.

피랑의 뜻이 벼랑이니 서피랑은 서쪽에 있는 벼랑이라는 뜻.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마을 골목골목에는 또 어떤 볼거리들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방향을 따라 찾아간 마을 언덕길에는 특별한 볼거리 없이 집 안의 개들이 짖는 소리만 가득했다.

서포루가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 동네 아주머니에게 서피랑 마을이 어딘지 물어보자 계단 보러왔냐고 되물으며 길을 알려준다. 아래로 바다를 내려다보며 걷는 풍경이 동피랑과는 또 다른 통영항을 보여준다.

얼마쯤 지나자 눈앞에 나타난 긴 계단. 계단의 수는 안 세어도 알 수 있다. 계단마다 몇 번째 계단인지 잘 쓰여 있기 때문인데 숫자 하나 하나가 그려진 모습이 모두 다르다. 하나하나 그림을 음미하며 마지막에 도착하니 숫자는 99에서 멈췄다.

서피랑 사람들은 어쩌면 100의 인생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유치환, 김상옥, 윤이상
그들의 거리

서피랑을 내려와 다시 골목으로 들어섰다. 강구안의 골목보다 조금 큰 길 입구에 조형물도 보이고 누군가의 흉상도 보인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청마 유치환. 그곳에 그 유명한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라는 글귀가 남아 있다.

그가 사랑한 여인 이영도에게 보낸 편지 5000여 통의 절절함이 남아있는 통영우체국 앞. 봄기운은 온데간데없고 고독함만이 스며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시인의 이름을 만났다.

통영의 명동이라 불리는 항남 1번가, 일명 오행당 골목에 초정 김상옥의 이름을 딴 초정거리가 있다. 그의 생가 터인 오래된 여인숙은 그의 시적 감수성이 묻어나올 만큼 서정적인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의 시 봉선화는 어릴 적 이 집에서의 추억을 그리며 쓴 게 아닐까. 서호시장과 통영시립박물관을 지나니 윤이상 기념관이다.

현대음악의 5대 거장, 윤이상. 서양 음악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철학과 사상을 위대한 음악으로 융화시킨 그의 기억들이 전시실에 남아있다.

지금도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이곳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그를 추모하는 곳. 통영의 봄은 이곳에서 윤이상이라는 이름과 함께 시작되고 있다.

통영 낙조의 꽃, 달아공원

어스름 해가 넘어갈 시간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다 택시를 타고 달아공원으로 달렸다. 온종일 쾌청했던 봄 하늘이 낙조에 대한 기대를 멈출 수 없게 했다.

미륵도 해안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니 산양일주도로 중간에 달아공원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음미하는 일몰은 통영8경 중 하나로 통영 사람들은 국내 최고라고 자부하는 비경이다. 숲길을 지나 나타난 바다 위 전망대는 이미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이 명당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난 뒤. 그렇지만 멀리서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태양의 모습은 가려질 수 없다.

또렷한 원을 그리고 점점 작아져가는 태양이 결국 이름 모를 섬 뒤로 숨어버리는 그 순간까지 사람들은 저마다 환희의 찬가를 부른다. 바다에 어둠이 깔리고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수놓은 섬들이 점점이 사라져간다. 통영 앞 바다에 찾아온 봄은 내일 조금 더 활짝 필 것이다.

<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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