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예산과 스타작가군 및 PD 투입 등 지상파 3사가 마음먹고 만든 대작드라마들이 시청률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획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던 MBC TV ‘영웅시대’는 조기종영 방침이고, 뉴스타임을 줄이는 등 편성 시간까지 재조정한 KBS 1TV ‘불멸의 이순신’은 주말사극 절대강세 전통을 잇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볼거리와 신세대 스타캐스팅으로 주목받던 SBS TV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시청률로 막을 내렸으며, ‘유리화’도 당초 기대와는 거리가 먼 반응을 얻고 있다.대작드라마 부진이유는 여러가지다.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불륜 등 반복과 비틀기를 거듭하는 자기복제, 영상의 고질적 답습이나 남발되는 감정과잉, 현격히 떨어지는 배우들의 연기력도 문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시청자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방송가의 평가다. 영화를 능가하는 고화질 영상(HD)이 많아지고, 인터넷소설이 회자되면서 드라마 기대치가 커지다 보니 고만고만한 작품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어졌다는 것.방송광고 최고단가가 책정된데다 현대, 삼성그룹 고위층이 주목했다는 ‘영웅시대’는 70년대 경제발전사의 조망이라는 원래 계획과 달리 1부부터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정연주 사장이 직접 시사회에 참석해 주연배우를 소개하는 등 의욕적으로 출발했던 ‘불멸의 이순신’도 사극마다 사회적 화제를 일으켰던 KBS의 이전 작품에 비해 반향이 작다. 시청률뿐 아니라 드라마 완성도에서도 고답적, 교과서형이라는 신통찮은 반응이 다수다.

고위층이 각별한 관심을 보인 드라마일수록 ‘무게감’에 눌린 탓인지 좋은 결과가 없다는 방송가의 속설을 다시 증명한 셈이다.해외촬영으로 시작된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나 ‘유리화’는 당초 한류열풍을 타고 드라마수출을 겨냥한 작품들. MBC TV에서 첫 방영이 시작된 ‘슬픈연가’도 국내 최초로 외주제작사 자체제작이라는 의욕적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는 식으로 허무맹랑한 구성이 문제였다.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는 ‘하버드의 공부벌레들’ 등 해외 수작 미니시리즈를 보고자란 30, 40대들에게 멜로로는 허무하고, 법정드라마로는 황당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유리화’의 주인공들은 오카리나, 푸른 장미 등 상징적 소품이 남발되면서 식상하다는 평을 받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슬픈연가’는 아역들의 빼어난 연기에도 불구, TNS미디어에 따르면 수도권과 전국권 모두 첫회보다 2회 시청률이 떨어졌다.반면 별반 기대를 걸지 않았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쾌걸춘향’등은 연기자들의 열연과 특이한 소재가 비교적 호평을 받고 있다. 신세대 스타는 없지만 안정된 스토리와 스펙터클한 영상을 여러차례 선보인 ‘해신’, 명확한 캐릭터와 공들인 영상이 무기인 ‘토지’도 시청률이 안정권이다. 특정세대보다는 보편적 세대를 노린 작품, 신선한 소재, 연기자 열연 등 고전적 드라마 흥행 화두가 다시 먹히고 있다.기대가 컸던 대작들의 부진만큼 방송사나 제작진의 충격도 크다. ‘올인’의 유철용(슬픈연가), ‘눈사람’의 이창순(유리화), ‘해바라기’의 이진석(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등 전성기를 달리는 드라마 PD들의 작품이라 볼거리가 풍부한데도 평년작에 불과하다는 점이 후속작 준비를 어렵게 하고 있다. MBC의 경우 ‘영웅시대’ 조기 종영후 3월중 방영예정인 ‘제5공화국’에 상당한 무게를 두면서도 정확한 방영일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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