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지난해 월드컵 본선진출을 위해 2차 지역예선을 훌륭하게 마무리했던 슈틸리케호가 올해 첫 A매치에서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지만 그 내용은 참담했다. 특히 주전급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자리를 못 잡는 사이 A매치 대표팀의 칼날은 무뎌져버렸다. 오는 9월부터 시작되는 최종예선을 앞두고 분위기를 끌어올리겠다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구상에도 차질을 빚게 돼 어떤 플랜B를 마련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울리 슈틸리케 A매치 축구대표팀 감독<뉴시스>

 최종예선까지 6개월, 약팀과의 평가전에서 유럽파 부진으로 빨간불
 차두리 은퇴 이후 무너지는 풀백…마땅한 대안 없어 진퇴양란


슈틸리케 감독이 이끌고 있는 A매치 축구대표팀은 지난달 열린 3월 A매치 2연전에서 레바논과 태국을 상대로 각각 1-0 승리를 거두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상대팀이 한국보다 약세라는 점을 감안할 때 큰 점수 차로 이기지 못하면서 축구대표팀의 전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앞서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를 결산하는 자리에서 “3월에는 유럽파가 한참 시즌 중이고 국내 선수들은 시즌을 개막해 2~3경기만 치른 시점이기 때문에 유럽파에게 기대를 건다”고 밝혀 은근 해외파, 특히 유럽파 선수들의 활약을 고대했다.

그러나 이번 A매치 2연전에서 선수들의 실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번 대표팀에 소집된 7명 중 기성용(스완지시티)과 석현준(FC포르투),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정도가 슈틸리케 감독의 눈에 든 정도다.

이 와중에 구자철은 레바논 전을 뛰던 도중 왼쪽 종아리 통증을 호소해 교체 아웃됐고 결국 소속팀으로 돌아갔다. 이에 유럽파 선수들은 슈틸리케 감독의 기대를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부진한 유럽파에 몸살 난 대표팀

▲ 김진수 선수<뉴시스>
이번 슈틸리케 호가 지난해와 크게 달라진 점은 믿고 있던 풀백 포지션이 무너지면서 대표팀이 불안한 수비로 일관하고 있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중앙수비수 홍정호(아우쿠스부르크)는 부상 여파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 정상 컨디션을 되찾지 못했고 왼쪽 풀백 김진수(호펜하임)와 박주호(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소속팀에서 3~4주 정도 결장했던 터라 실전감각이 무뎌졌다. 측면 공격수 이청용(크리스탈 펠리스)도 불완전하기는 마찬 가지다.

이 같은 부진은 최근 유럽파 주전선수들이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지만 실제 경기에서 나타난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간간히 교체 멤버로 기용되는 이청용을 제외하면 김진수, 박주호는 경기에 투입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면서 예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들은 날카로움과 정교함을 모두 잃어버리면서 쉬운 플레이에서도 실수가 반복됐다.

슈틸리케 감독 역시 이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할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이 유럽파 선수들이 부진의 늪에 빠지는 사이 축구대표팀의 실력도 부진의 나락으로 떨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어 6개월여 남은 최종예선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이와 함께 풀백의 부진이 축구대표팀의 전력 약화에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와 슈틸리케 감독이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가 됐다.

지난해만 해도 슈틸리케 감독은 풀백에 대해서는 큰 걱정이 없었다. 김진수는 아시안컵을 통해 자신의 경쟁력을 입증했고 박주호도 멀티플레이어로서 능력을 활용해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든든한 자원으로 성장했다.

다만 이때는 두 선수 모두 소속팀에서 꾸준히 출전하며 실전 감각을 키웠다. 하지만 지금은 두 선수 모두 소속팀에서 엔트리에도 들지 못하는 딱한 상황을 맞았다.

김진수는 팀이 강등 위기에 몰리며 두 차례나 감독이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는 사이 감독 눈 밖에 난 상황이다. 박주호도 마인츠 시절 감독인 토마스 투헬을 따라 도르트문트로 갔지만 빅 클럽의 수준 높은 경쟁 구도 속에서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풀백 가뭄, 발견한 시점 더 아쉬워

▲ 박주호 선수<뉴시스>
이 같은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출전하지 못하는 문제는 각자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있다. 슈틸리케호 역시 이들을 제외하고선 딱히 대안이 없어 향후 최종예선에 파장이 미칠 것으로 보여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특히 이번 평가전을 놓고 보면 왼쪽의 부진이 크게 부각됐지만 실상 오른쪽도 만만찮은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왼쪽을 맡고 있는 김진수와 박주호의 경우 소속팀 경쟁에서 이겨 주전으로 자리잡거나 이적이라는 과감한 선택을 노려볼 여지가 아직 남아 있다.

반면 차두리가 은퇴하고 1년이 지났지만 오른쪽 풀백은 마땅한 자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대표팀 주전 오른쪽 풀백은 장현수(광저우 푸리)가 맡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간 김창수(전북 현대), 정동호(울산 현대), 임창우(알 와흐다 FC) 등에게 기회를 줬지만 장현수가 그나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장현수가 본래 중앙수비수라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에 풀백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소속팀인 광저우 푸리에서는 중앙을 맡고 있다.

또 장현수 스스로가 인정하듯 스피드에 약점을 안고 있어 일각에서는 본선만큼 치열한 최종예선에서 오른쪽 풀백을 믿고 맡기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장현수 외에 김창수도 종종 기용되지만 썩 좋지 못한 경기 운용능력이 감독의 눈에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풀백 가뭄 현상이 빚어지면서 슈틸리케 감독 역시 복잡한 셈법에 들어갔다. 현재 부족한 풀백을 채우기 위해 딱히 검토할 만한 선수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적 문제가 불거졌다.

K리그에서 풀백 포지션을 소화하고 있는 선수들은 대부분은 30대여서 슈틸리케 감독의 검토대상에 속하지 않는다. 결국 그간 실력과 소속팀에서의 출전여부를 적극 참고하겠다던 슈틸리케 감독이 자칫 스스로의 오류에 빠져들 수 있는 궁지에 몰린 셈이다.

또 이번 소집에서 감바 오사카에서 주전으로 올라선 오재석을 뽑아 체크하려 했지만 부상으로 낙마했고 최근 고광민(서울FC)이나 포지션 변경에 성공한 김태환(울산 현대) 등도 검토할 만하지만 최종예선 전에 있는 기회는 6월 유럽 원정뿐이라는 점에서 다른 선수들을 테스트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이를 두고 관계자들은 문제점을 발견한 현 시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위기 속 ‘응답하라’ 주인공은 누구?

▲ 이정협 선수<뉴시스>
최근 복잡해진 사정 때문인지 이번 A매치 소집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이 세웠던 원칙을 뒤집으면서까지 유럽파 선수들의 재기를 위해 기회를 마련했다.

이번 소집 명단에는 소속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유럽파 선수들이 대거 포함되며 작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안 돼 지난해 딱히 보여준 것 없었던 이정협(울산 현대)의 발탁도 여기에 해당된다.

이 부분에 대해 슈틸리케 감독은 “솔직히 말하면 이정협과 박주호, 김진수 등은 이번 명단에 포함되면 안된다”고 언급하면서도 “지난해 이 선수들이 수고를 많이 해줬다. 부상만 아니라면 항상 대표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한 보답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슈틸리케 감독은 “최종예전 진출을 이룬 데 대한 마지막 배려”라며 경고 메시지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감독의 배려와 기대에도 불구하고 이변은 일어나지 않아 아쉬움은 컸다.

혹시나 했던 슈틸리케 감독도 아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는 A매치 후 “이번 소집 때 소속팀에서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과 모두 면담을 했다. 각자 상황이 달랐고 개인적이든 팀 문제이든 이유가 있었다. 제3자 입장에서 조언하기가 쉽지 않았다. 최근 소속팀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는 김진수, 박주호, 이청용은 본인들도 최근 경기에 뛰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출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고 탄식했다.

▲ 이청용 선수<뉴시스>
그러나 이들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입장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올해도 끊임없는 주전 경쟁을 통해 옥석을 가려내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결국 이제는 선수들이 응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스스로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선수들을 배려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 그만큼 올 가을 최종 예선을 앞두고 축구대표팀의 발걸음은 촉박하다.

이에 선수들 스스로 팀 내에서 위상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소속팀 출전이 요원한 선수들의 모습을 더 이상 못 볼 수도 있는 안타까움이 연출될 수 있다.

여기에 슈틸리케 감독이 사령탑을 맡으면서 발휘했던 원칙과 선구안을 통해 단기간이 될지, 큰 숙제로 남을지 모르는 풀백 가뭄 사태에 대한 해법을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슈틸리케 감독의 행보에 축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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