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영화 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수많은 영화 종사자를 비롯해 배우, 그 주변인들까지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한다. 더욱이 제작 규모가 양극화 돼 가는 영화시장에서 자리를 잃어가는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들은 그저 개봉을 할 수 있을까를 놓고서도 설왕설래하기 바쁘다. 하지만 세상을 위로하기 위해 메가폰을 잡은 서은영 감독은 우연 아닌 필연이라는 기회 속에서 기적을 일궈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다양한 영화제에서 미리 알아봐줄 정도로 섬세한 감각을 돋보이며 개봉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서 감독의 뚝심을 만나봤다.

영화 ‘초인’을 통해 첫 장편영화에 도전한 서은영 감독은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일요서울]을 만나 소감을 전했다.
 
그는 “아직 실감이 안 나기도 하고 이렇게 될지도 예상 못했는데 개봉까지 하게 돼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저 서 감독에게 개봉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는 “촬영을 시작하면서 개봉을 생각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렇게 찍는 게 맞는 걸까 생각하기도 했었고 운이 좋다면 영화제 관객들에게 알리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는 바람뿐이었다”고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서 감독은 “첫 상영할 때가 기억이 나는데 너무 떨렸다.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궁금했고 다행히 좋게 봐주신 것을 보고 정말 그런 걸까, 진자 좋아하는 걸까하는 의심도 들었다”면서 “하지만 뭔가 해 냈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자신감도 생겼다. 또 내가 하는 이야기 방식이 어려운 게 아니구나, 내 색깔을 관객 분들이 느끼는 것 같아 흐뭇했다”고 털어놨다
 
영화 ‘초인’은 꽃다운 청춘들의 성장드라마로 책이라는 접점을 통해 청춘 남녀들의 교감과 설렘, 삶의 용서 등을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특히 서 감독은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김정현(최도현 역), 김고운(최수현 역)의 미묘한 얼굴표정 하나하나까지 생생히 담아냄으로서 오늘날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 감내해야하는 삶의 짐과 더불어 미래를 위해 다시 뛰고 있는 희망찬 모습을 자신의 화폭에 가득 담아냈다.
 
과연 서은영이 담아낸 초인은 어떤 의미일까. 이에 대해 서 감독은 “인터뷰를 오면서도 많은 생각을 해봤다”면서 “결국 사람을 다루는 저의 시각적인 요소인 것 같다. 사람들을 보는 내가 그 사람들 개개인 존재에 대해 구경하는 지점이다. 우리는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해 잃고 있고 무시당하고 살고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인간 자체는 다 똑같고 평등한데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 주지 못하기 때문에 본질을 잃고 있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게 초인이라는 영화를 만들게 된 밑바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 순간만이라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를 던지며 “과연 초인적인 삶이 무엇일까 질문하다가 영화까지 오게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서 감독은 다소 어려운 주제를 자신만의 노하우로 쉽게 풀어냄으로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영화적으로 봤을 때 주인공들의 개인사나 그들의 관계, 주변사람과의 관계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쉽게 사람들에게 읽혀야 하고 그래서 프렌드쉽도 나오고 로맨스 같은 느낌, 멜로의 형식을 따르면서 쉽게 받아드릴 수 있게 했다”고 자신의 접근법을 설명했다.
 
그러나 서 감독이 관객들과 소통하는 방법은 더욱 주도면밀했다. 그는 영화 내내 다양한 시와 문학작품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초인을 극대화하면서도 쉽게 받아드릴 수 있는 접점을 모색했다.
 
서 감독은 “평소 책을 매우 좋아하지만 다독을 하는 스타일 아니다”라면서도 “항상 영화와 책이 같이 있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듯이 책도 읽으려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작가, 시 쓰는 사람들 자체를 좋아한다”고 애틋함을 드러냈다.
 
그의 문학에 대한 애정은 영화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서 감독은 “시나리오를 책을 좋아하는 독자의 마음으로 썼다”며 “기성 감독들처럼 저만의 색깔을 발현하고 싶었지만 보편적인 얘기를 시작할 때 특히 초인이라는 철학적인 소재도 있고 어울리는 책과 멜로 그런 것들이 어려울 수도 있었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엮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그는 지속적으로 시나리오를 써가는 등 작품을 준비하며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 가고 있다. 특히 서 감독이 배우를 캐스팅 하는 데에는 나름의 철칙이 있다. 바로 매 작품마다 신인 배우들과 작업을 하겠다는 것.
 
이번 작품도 두 남녀 주인공을 비롯해 서 감독 모두 장편영화 첫 데뷔작이다. 서 감독은 캐스팅에 대해 “둘 다 한국종합예술학교 연극원 친구들인데 저도 첫 작품이고 신인들의 첫 데뷔작으로 이끌어내고 싶었다. 평소 연극원 친구들의 공연을 많이 보러간다. 정현이의 경우도 공연을 보고 잘하는 구나 생각했었다. 우연히 알게 됐고 오디션을 진행해 발탁했다”며 “두 사람의 밸런스가 딱 맞았다. 정현이가 못하는 것을 고운이가 해줬고 반대로 고운이가 못하는 것을 정현이가 채워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연기 스타일이 다르지만 서로 메워지는 것 같은 생각에 같이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수많은 배우들을 놓고 고심했던 만큼 서 감독의 두 사람에 대한 만족감은 컸다.
 
특히 서 감독은 마지막 여주인공이 상기된 얼굴로 정말 따스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을 통해 위안과 위로가 필요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청춘들, 아이들에게 위로를 전해주고 싶었다며 ‘너희들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서 감독의 신의 한수는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극중 전직 배우출신이자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주인공 최도현(김정현 분)의 엄마 역을 맡은 베테랑 배우 서영화다.
 
서 감독은 배우 서영화에 대해 “정말 팬이었다. 영화를 구상하면서 당연히 이 역할을 주고 싶었다. 영화도 잘 출연을 안 하셔서 걱정했다”며 “지인을 통해서 전화를 드렸고 시나리오를 읽어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만나달라고 간청했을 정도”라고 캐스팅 과정을 설명했다.
 
이 같은 간절함 때문일까, 서영화는 흔쾌히 수락했고 그의 연기는 이번 작품의 백미로 평가될 정도로 베테랑의 진면목을 선보였다.
 
서 감독은 “서영화 선배님과 촬영했을 때가 가장 인상 깊었다. 편하게 해주시고 소녀 같으시기도 하고 인자한 모습도 계시고 배려도 해주시도 뭔가 마성의 매력을 가진 분”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던 서 감독은 “일단 원하는 것은 해봐야 하는 성격”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아있다. 작은 영화들이 겪는 고충인 넉넉하지 않은 예산이 여전히 눈에 밟히는 대목이다.
 
특히 그는 이번 작품은 ‘미세먼지 같은 예산’이라고 평가해 작은 영화들이 처한 현실을 애써 웃음으로 위로했다.
 
장편감독으로서 데뷔하면서 변화된 삶에 대해 묻자 서 감독은 “일단 영화를 시작할 수 있구나 라는 자신감 생겼다”며 “나의 영화 색깔을 고민도하고 다음 작품도 빨리 하고 싶다. 어떤 식으로든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더욱이 그는 늦게 영화를 시작했지만 개봉까지 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밑천도 없고 어떤 이들처럼 어릴 때부터 신동도 아니다. 주구장창 평범하게 영화를 좋아했을 뿐인데 그 이유로 시작 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됐다”고 자평했다.
 
성공적인 첫발을 내딛은 만큼 앞날에 대한 욕심도 묻어났다. 서 감독은 “좋은 영화, 잊혀질 수 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특히 저만의 터치가 들어간 작품을 만들고 싶다”며 앞으로도 함께 꿈꿔온 사람들과 함께 ‘한 그릇에 꽉 찬 영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인터뷰를 마쳤다.
 
todida@ilyoseoul.co.kr

<사진=송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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