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전 11시경 서울 리츠칼튼 호텔. 아직까지 잠이 덜 깬 듯 눈을 부비며 인터뷰 장소에 들어서는 두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사랑의 세레나데라도 기대했던 걸까. 감미로운 사랑의 멜로디로 뭇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유리상자’와의 첫 만남은 예상외로 싱거웠다. 오히려 너무 이른 시간에 인터뷰 약속을 잡은 것이 아닐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정도. 유리상자의 멤버 박승화(36)가 “미안하다”며 “전날 잠을 못 잤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털어놨다. 두 남자는 요즘 콘서트 준비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사랑담기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갖는 건 이번이 19번째. 그것도 오는 3월 4일부터 4월 3일까지 약 한 달 동안이나 장기공연에 들어간다.

낮엔 지방공연, 저녁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 새벽엔 콘서트와 앨범 준비 작업까지. 몸이 꼭 열 개였으면 좋겠단다. 이번 공연의 컨셉트는 ‘학창시절’. 체육시간, 음악시간, 무용시간 등 시간표도 짜놓고 그에 맞는 노래와 무대 연출을 계획하고 있다. 학창시절 가장 기다려지던 ‘점심시간’도 프로그램에 넣었다. 이 시간에는 관객들과 다과를 즐기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란다. “작년 12월 초 18번째 공연 때 처음으로 ‘라디오 DJ’라는 컨셉트 공연을 했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이번에 또 기획해봤죠. 뒤에서 음악 도와주시는 밴드도 모두 교복 입혀서 무대에 등장시킬 거예요. 옛 날 생각나겠죠? 생각만 해도 재밌지 않나요?!” 멤버 이세준(33)은 이미 공연장에 와 있는 듯 신이 나 있었다.

유리상자는 이번 공연에서 자신들의 비밀스런 학창시절 이야기도 털어놓을 계획이다. 당구장에 몰래 갔다가 혼이 났던 기억, 오락시간이면 불려나가 ‘가수’ 노릇을 하곤 했던 일들. 고등학교 때 태권도를 전공했던 박승화는 가방 속에 교과서 대신 안티프라민과 붕대, 체육복 등을 넣고 다니다가 ‘학구파’ 친구들에게 신기한(?) 대상으로 취급 받았던 시시콜콜한 일들까지 얘깃거리로 삼을 생각이란다. 그들은 이번 콘서트 때문에 ‘축가 전문가수’라는 타이틀도 잠시 놓아두었다. 지인 사돈의 팔촌 결혼식에까지 불려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는 것보다 팬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더 알차게 준비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다.

박승화는 “우리에겐 팬들을 만나는 일보다 소중한 일은 없다”면서 “주변사람들의 소시적 이야기를 귀동냥하느라, 또 교복 고르느라, 추억을 떠올리느라 정말 정신이 없다. 하지만 공연 때 학창시절 추억에 잠길 팬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 행복해진다”고 아이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인터뷰가 끝난 뒤 교복과 책가방을 짊어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또 그들이 읊어낼 추억의 노래와 환상적인 하머니도 떠올려봤다.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모아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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