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난치병 고치는 차세대 기술무한 가능성 열려
부모 없는 맞춤형 아기생산사회 근간 흔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인간이 신()의 영역에 다가가고 있다. 그 영역을 여는 문은 바로 유전자 편집 기술. 그 중에서 핵심은 원하는 유전자를 마음대로 잘라내고 붙이는 유전자 가위 기술, 불가능했던 생명체의 질병을 고치고 새 생명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것이라는 의견과 인간 세상의 체계를 흔들고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유전자 가위는 인간에게 약()일까, 아니면 독()일까?
 
크리스퍼(CRISPER) 유전자 가위는 가위라는 말처럼 동식물 유전자에 결합해 특정 DNA 부위를 자르는 인공 효소이자, 유전자 편집 기술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지난해 과학기술계 최대 이슈였다. 유전자 가위가 실제 연구에 활용된 지는 10여 년쯤 됐지만 이번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3세대 기술로 1,2 세대 유전자 가위와 달리 복잡한 구조가 없고 DNA 절단 성능이 좋다.
 
이 기술로 특정 DNA을 제거·수정·삽입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해 문제되는 유전자만 잘라내고 새로운 유전자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 지난 몇 년간 전 세계 과학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함께 논란도 동시에 일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인간은 물론 동·식물세포의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편집하는 데 이용될 수 있으므로 난치병 치료제 개발 등 생태계에 빛과 소금이 될 거란 기대를 받고 있는 동시에 맞춤형 아기 탄생과 같은 생태계의 근간을 흔드는 재앙이 될 거라는 우려 또한 제기되고 있다.
 
생태계의 빛과 소금
 
유전자 가위 기술이 가장 활발히 이용되는 분야는 질병 치료 분야다. 때문에 이 기술은 누군가에겐 자신의 난치병을 뚝딱 고칠 수 있는 희망의 만능약과도 같다. 대표적인 질병이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 AIDS)와 암, 유전병 등이다.
 
환자의 몸에서 면역세포를 채취한 뒤 이 면역세포의 유전자를 수정하고 다시 주사하는 방식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난치병 유발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특정 DNA를 절단해 정상 유전자를 삽입하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중국 광저우 의대 연구진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에이즈에 걸리지 않게 하는 데 성공했다. 에이즈를 유발하는 특정 유전자를 제거해 에이즈 바이러스가 침입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아직 추가 관찰 연구가 필요한 단계지만 치료법이 상용화되면 평생 약을 먹으면서 고통 속에 살아가는 에이즈 환자의 치료가 가능할 전망이다.
 
국내 연구진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피가 멎지 않는 혈우병 환자에게서 얻은 세포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제거함으로써 유전병인 혈우병의 치료가능성을 학문적으로 입증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혈우병 환자 8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이 진행 중이다.
 
()도 마찬가지 원리로 치료할 수 있다. 특정 암세포를 인식하도록 면역세포의 유전자를 조작한 뒤 다시 주입해 암세포를 공격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암세포만 집중적으로 죽이는 ‘CAR-T'라는 약물 치료법을 현재 개발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이미 사라진 동물들의 복원에도 쓰일 수 있다. 매머드가 대표적이다. 예전에 시베리아 빙하 속에서 발견된 메머드 세포에서 DNA를 채취해 코끼리 난자에 이식하는 매머드 부활 프로젝트가 있었지만 DNA 상태가 좋지 않아 부활에 실패했다. 최근 세계적 권위자 미국 하버드 조지 처치 교수(62)는 매머드의 유전적 특징(극지에서 생존할 수 있는 수북한 털 등)을 현생 인도코끼리에 붙여 넣어 매머드를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는 19세기에 멸종된 여왕 비둘기를 되살리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유전자조작식품(GMO)의 유해성 논란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GMO식품 수입을 많이 하는 나라여서 유전자 가위 기술은 더 각광 받을 수 있다. 현재 만들고 있는 대부분의 GMO는 특정 식물 세균을 활용해 외부 유전자를 식물에 인위적으로 삽입한다. 이 과정에서 수천 개가 넘는 외부 유전자가 삽입돼 안전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최근 국내 연구진은 특정서열을 목표로 하는 DNA 조각을 식물에 넣는 방법으로 식물 개량에 성공했다. 이 방법으로 GMO의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유전자 가위 기술은 농업, 축산업 등에서 동·식물의 품질을 개량할 수 있어 미래의 식량난을 해소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영국 로스린연구소는 돼지의 감염유전자를 흑멧돼지 유전자로 변환하여 아프리카 돼지들의 열병을 치료한 바 있고, 이 기술로 병충해를 견디는 상추와 같은 개량종을 만들 수도 있다.
 
대재앙의 전조?
 
모든 과학 기술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인류는 자동차라는 이동 수단을 개발해 편리함을 얻었지만 전 세계에서 연간 130만여 명이 교통사고로 죽고 있고, 인류는 스마트폰으로 내 손 안에 세상을 얻었지만, 스마트폰 중독·의존증·목 디스크 등 각종 부작용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로 인간이 인간의 유전자를 스스로 편집·조작할 수 있으면 동·식물은 물론 인간까지 맞춤형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점차 신의 영역에 다가서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인간 배아에 대한 유전자 연구는 이미시행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4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인간 수정란에 사용해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올해 4월에는 에이즈 치료를 위해 인간 수정란 유전자를 조작하는 실험에 성공해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안겨줬다. 현재 중국에는 인간 수정란 사용을 금지하는 규제가 미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과학계에서는 중국에서 수십 개 연구팀이 인간 수정란을 이용한 유전자 조작 실험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영국은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인간 발생과정의 이해를 높이고, 불임 치료에 기여한다는 근거로 인간 초기 배아에 대한 유전자 가위 사용을 공식 승인했다. 이는 맞춤형 아기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더욱 촉발시켰다. ‘부모 없는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인간의 실수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 자칫 잘못하면 목표 유전자 이외의 것을 잘라내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다른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 본인 세대뿐 아니라 자식 세대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치명적 단점이 있는 것이다. 국내 유전생명공학 ()툴젠 김석중 연구소장은 성인 유전자 교정은 그 세대에 국한되지만 배아 유전자를 교정하면 대대로 자손에게 전달된다. 유전병 치료에는 획기적인 대안이나 우생학적 관점에서 보면 난제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유전자로 차별 받는 세상이 도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997년도에 만들어진 공상과학영화 <가타가>에서 나오는 것처럼 선천적인 유전자로 한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 유전자 계급 사회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논란은 현재 진행형
 
유전자 가위 기술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박찬영 울산과학기술대학원 교수(43)는 동아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크리스퍼는 양날의 검이라며 유전자 치료를 할 수 있는 획기적인 도구이자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밝혔다.
 
김진수 서울대 화학과 교수(51)는 현재의 우려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전자 편집이란 말은 다분히 과장적이다. 흔히 말하는 유전자 편집 기술은 마치 500쪽짜리 책에서 한 글자 내지 한 문장을 바꾸는 것이라며 이는 교정이지 편집이 아니다고 밝혔다.
 
반면 MIT 뇌인지과학과 펑 장 교수(33)는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러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는 기술적인 문제와 생물학적인 문제가 있다기술 문제는 유전자 가위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유전체를 바꿀지 모른다는 것이고, 생물학적 문제는 유전자의 아주 작은 변화가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잘 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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