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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독성물질 농도 측정 결과 전국 평균 180배

시민 불안…기업 키우고 정부·지자체 ‘수수방관’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전라도 광주의 한 배터리 부품 제조업체가 생산과정에서 1급 발암물질을 수년 째 배출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이 회사는 무려 6년 동안 ‘전국 발암물질 배출 1위’를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관리·감독해야 할 환경부와 광주시는 배출허용기준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사실상 방치했음이 밝혀져 시민들의 분노와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발암물질 사용을 중단하고 국내 유해화학물질 관리 체계를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7일 광주환경운동연합의 ‘2014년 화학물질배출량 조사결과’를 보면 세방산업(주)은 1급 발암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이하 TCE)’을 지난 2009년부터 최근 6년 동안 1500톤 넘게 배출했다. 특히 2014년에는 294톤을 대기 중으로 내보냈는데 이는 같은 해 두 번째로 많이 배출한 기업(130톤)보다 2배 이상 많은 양이다. 또 광주지역 다른 9개 사업장에서 배출한 총량(48㎏)보다 5000배 이상 많다.

세방산업 주변 광산구 하남동 측정소에서 대기 중 TCE 농도를 측정한 결과 전국 평균(2014년 기준 0.134ppb)보다 180배 이상 높은 24.629ppb (2015년)으로 조사됐다.

사망에 이르는 유독물질 

이러한 사실을 접한 시민들은 분노와 걱정을 쏟아냈다. 광산구에 사는 양모(37·여)씨는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정말 놀랍다”며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이 정도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라도 가야 되나 걱정된다”고 말했다. 조금 떨어진 북구의 주민 용모(31·남)씨는 “우리 아이들이 그동안 발암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는 얘긴데 나중에 암 걸리면 어떡하냐”면서 “1급 발암물질을 무차별적으로 배출하는 세방은 사회적 ‘암’덩어리 아니냐”며 분노를 터트렸다.

세방산업은 자동차 배터리 주요 부품인 연축전지용 배터리 케이스와 격리판(Separator)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1급 발암물질인 TCE을 배터리용 격리판을 만들고 세척하는 데 사용했다.

TCE는 국제 암연구소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간암과 폐암을 유발하며, 흡입했을 때는 간이나 신장질환의 병근이 돼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유독물질이다. 최근에는 신장암과도 연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된 강력한 신경성 독성물질이다. 2014년에는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제품 수리기사가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TCE가 검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공기 중에 배출된 TCE는 피부 접촉을 통해서는 거의 흡수되지 않지만 오염된 식품이나 물을 섭취할 때 몸속으로 들어올 수 있으며 드라이클리닝 시설 및 드라이클리닝한 의복 근처에 있을 경우 노출될 수 있다. 특히 공기를 통해 흡수되기 때문에 사용에 엄격한 주의가 필요하다. 각종 시민단체와 환경단체가 강력 반발하는 이유다.

민주노총 광주본부는 지난 20일 세방산업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진국과 유럽에서는 1990년대부터 TCE의 위험성 때문에 판매·제조·사용을 금지하고 있거나 대체 물질을 사용 중”이라며 “하지만 세방산업은 TCE를 2010년부터 매년 200톤 이상 공기 중으로 배출했다”고 말했다. 또 “TCE는 보관탱크과 격리판 등 모든 공정에서 노출 가능성이 높고, 기계 세척용뿐 아니라 스프레이 접착제와 드라이클리닝 등에 사용되고 있다”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미 일반인들에게도 노출돼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지자체 ‘합작품’ 

강력한 독성물질이 6년간 무방비로 노출된 가운데 이를 관리하고 규제해야 될 당국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환경부는 수년간 조사를 진행했지만 연구 보고서를 인터넷에 올리는 것을 끝으로 나머지는 관리 주체인 지자체가 알아서 하라는 식에 그쳤고, 광주시는 광주시대로 인터넷 검색으로 결과만 확인했을 뿐 배출허용 기준이 없다며 1급 발암물질 위험성을 방관했다. 광주시는 올해 3월 환경부가 공문을 보내 지도점검을 지시한 뒤에야 부랴부랴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광주시 투자유치 업무 담당 공무원이 세방산업 등을 광주시에 유치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6년 연속 전국 1위 발암물질 최대 배출 기업’을 유치한 공로로 표창을 받은 것은 관리·감독 시스템이 오작동을 넘어서 ‘무(無)’작동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세방산업이 지난 2011년 국내 한 업체로부터 받은 국제표준화기구(ISO)의 14001 환경경영인증 시스템에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ISO 14001 인증은 환경 법규 및 기준을 준수하고 지속적 환경성과를 개선하는 노력이 있을 경우 받을 수 있으며, 3년마다 재인증을 받아야 한다.

광주환경운동연합 이경희 정책실장은 “ISO 14001 인증은 환경을 위해 유해물질을 저감하는 연구나 시설에 투자할 때 받는 것”이라며 “화학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에 대해 확실한 검증 없이 환경경영시스템 인증이 됐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간 세방산업이 1급 발암물질을 1년에 수백톤씩 배출하고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던 것은 배출허용기준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지난 2014년 국제암연구소가 TCE를 1급 발암물질로 상향 조정하고 나서야 기준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바뀐 기준은 내년부터 적용된다.

세방산업, 결국 사과

그간 인체 유해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던 세방산업은 논란이 지속되자 지난 18일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했다. 이용준 세방산업 비상대책위원장은 “TCE 배출에 관한 법적 기준이 없던 점에만 매몰돼 배출량 관리에 소홀히 한 점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광주시와 전문가, 시민환경단체를 주축으로 구성된 검증위원회가 지정한 검진기관에서 정규직, 계약직, 협력업체 직원 등 전 직원 158명에 대한 TCE 특수 검진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현재 세방산업에서 TCE를 취급하는 특수검진대상 근로자 30명은 건강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주민들의 피해 사례 역시 아직 보고된 바는 없다.

이어 이용준 세방산업 비상대책위원장은 “내년 3월까지 별도의 시설 보완을 마련해 14년 대비 60% 이상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 유해화학물질 관리 체계에 대한 법령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은 “노동부는 작업장 내 기준을 준수했다는 이유로, 환경부는 배출허용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다”며 “유해화학물질의 제조·배출·사용 과정에서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정기 점검하고 사용 및 배출 기준 강화를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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