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친인척 채용금지 특권내려놓기 시금석
- 청렴의 의무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해야


서영교 의원발 국회의원 보좌진 친인척 채용 문제가 20대 국회 벽두를 강타하였다. 새누리당에서도 박인숙 의원 친인척 채용 문제가 불거지자 8촌 이내 친인척 채용금지를 당론으로 확정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국회 보좌진 30여명이 슬그머니 사표를 내고 사라지는 사태도 발생했다.

국회의원이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고용하는 관행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19대 국회에서도 문대성 전 의원이 매형을 5급 비서관으로 채용했고, 백군기 전 의원도 아들을 7급 비서로 채용해 5급까지 승진시켰다 논란이 일자 면직처리한 바 있다. 박윤옥 의원은 원래 있던 4급 보좌관 대신 아들이 그 보좌관의 명함까지 사용해가며 일했던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같은 ‘악습’을 막기 위해 관련 법안 제출이 쏟아졌다. 문제는 우리 국회에는 인턴까지 합치면 2700여명이나 되는 보좌진 채용에 관한 세부규정이 없다는 데에 있다. 현행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은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보좌관 등 보좌직원을 둔다”고 하여 국회의원 보좌진에 대한 법률적 근거만 정하고 있을 뿐이다.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법안은 17대 국회 개원 직후인 2004년 8월 20일 처음으로 국회에 제출됐다. 당시 노현송 의원 등 여야 의원 38명은 국회의원 배우자와 4촌 이내 혈족 및 인척을 보좌직원으로 둘 수 없도록 한 법안을 제출하였다. 이후 18대와 19대 국회에서도 어김없이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골자는 국회의원과 배우자의 4촌 이내 혈족 및 인척은 임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보좌직원으로 임명될 수 없는 국회의원의 친족에 해당 되거나 임명 당시 그에 해당한 자로 밝혀졌을 때에는 당연히 퇴직하도록 하자는 안이다. 임용을 못하게 할 것인지, 임용은 가능하되 국회의장에게 신고하고 이를 국회공보 등에 공고하여 투명성을 강화해 나갈 것인지를 두고 논의가 있다. 또한 친인척의 범위를 4촌으로 할 것인지, 6촌으로 할 것인지를 두고도 논란이 있다. 친인척 보좌진 채용이 금지되면 국회의원 간에 이른바 품앗이 채용이나 돌려막기 채용을 어떻게 규제할 것이냐를 두고 대안이 모색되고 있다.

주요국 의회의 친인척 보좌직원 채용관련 현황을 살펴보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대처방식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친인척 보좌진 채용을 국가예산으로 개인적 이익을 취하는 행위로서 의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일로 간주하여 이를 엄격하게 금지해야 한다는 미국의회와 같은 입장이 있다.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경우에도 일본은 배우자 채용만 금지하고 기타 친인척의 채용은 허용하고 있다. 독일은 전면 허용하되 다만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 조건이 있고, 프랑스는 제한을 두지 않되 친인척에게는 급여를 삭감하고, 그 사실을 공보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보좌진의 신분을 공무원으로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의원 보좌진은 의회의 공적 규제 밖에 있는 사적 지원인력으로 간주되고 임면은 의원의 재량에 맡겨 두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경우 보좌진을 공무원으로 대우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임면과정은 다른 나라의 경우와는 다른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명의 보좌직원을 공무원으로 채용하고 있음에도 직급별 최소한의 자격요건과 호봉책정을 비롯한 급여체계, 그리고 입법부 보좌진에 필요한 기본적인 윤리기준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의원들의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다. 

친인척 채용은 채용, 관리 및 대우에 있어서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현대적 고용관행에 비추어 친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보좌직원으로 채용하여 의정활동에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흙수저라고 일컬어지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크나큰 좌절을 안겨주는 것이다. 아울러 편법 예산방비를 조장하여 국회의원에게 요구되는 청렴의 의무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는 주범인 것이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국회의원의 윤리의식과 책임의식에 대한 기대수준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진 이 때, 친인척 채용문제는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의 시금석으로 보일 것이다. 단순히 기존의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소극적인 채용금지만 규정할 것이 아니라 변화된 국회환경에 걸맞는 전문성과 윤리성을 갖춘 보좌진을 채용하여 국회와 국회의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일본 국회가 3명을 보좌진을 두면서 정책비서는 자격시험 합격자나 채용심사 인정자만을 채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그동안 사건이 터져 물의를 빚을 때마다 많은 법안이 발의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임기만료 폐기되는 수순을 밟아 왔다. 이제 국회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단순히 특권내려놓기가 아니라 ‘국회 제자리 찾기’ 차원에서 ‘권력으로서의 국회의원’이 아니라 ‘무한봉사자로서의 국회의원’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진공청소기가 자신을 진공상태로 만듦으로써 주변의 먼지가 빨려드는 것과 같이, 태풍의 중심이 맑고 텅비고 기압이 낮을수록 강력한 바람을 몰고 오듯이 국회도 스스로 낮추고, 비울수록 국민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더욱 강해진다는 자연의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현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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