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기 어려운 직장, 구해도 자리 지키기 쉽지 않아

▲ 지난 6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6년 국제가사노동자의날 기념 가사노동 3단체 공동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참혹한 현실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경제협력 개발기구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노동지표들과 이를 뒷받침하는 실례들은 노동자들의 문제를 충분히 대변하고도 남을 정도로 차고 넘친다. 일요서울은 특별기획 「무법천지 노동현장 잔혹사」를 통해 우리나라 노동현장이 어디까지 바닥을 보이고 있는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무너져 있는 것인지를 들여다봤다. 특별기획은 ① 무법천지 노동현장 잔혹사를 들여보다 ② 갑질에 우는 노동자들…개선방법은 없는 것인가 ③ 바뀌지 않는 하청노동자들의 현실, 멈추지 않는 눈물 ④ CJ대한통운·항운노조 vs 항운노조원, 산재 분쟁 등 총 네 가지로 구성됐다.

두산모트롤·현대重·지역농축협 등 실례 많아
비정규직 차별 및 근로자 인권 탄압 현실 심각해

갈수록 길어지는 구직기간…눈에 띄게 짧아진 재직기간
고용불안정 가속화 시킨 두산인프라코어·삼성물산 사건

우리나라 일자리 사정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구하기도 어렵고 다니기도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비교적 객관적으로 노동 시장을 평가할 수 있는 노동 지표들은 상당 부분 이와 같은 결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전병유 한신대학교 교수는 “한국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중구조에 대기업과 영세사업체 이중구조가 더해진 이중의 이중화(Dual Dualization)에 처해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및 고령층 부가조사 기본자료에 따르면 청년층은 갈수록 구직 기간이 길어졌고, 직장을 구했더라도 첫 직장을 다니는 기간은 2년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15~29세 청년층이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한 뒤 첫 직장을 구하기까지 평균 11.2개월이 소요됐다. 지난해 조사 때보다 0.2개월이 늘었다. 그리고 1년 가까운 취업 도전 끝에 취업에 성공하고도 오래 직장을 다니지 못하는 청년도 많았다. 첫 직장의 근속 기간은 평균 18.7개월에 그쳤다.

이들은 직장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 절반에 가까운 48.6%가 ‘근로 여건 불만족’이라고 대답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보수, 긴 근무시간이 문제였다. 고령층 일자리 사정도 팍팍하기는 매한가지다. 5월 통계청에서 55~79세 고령층에게 가장 오래 다닌 직장을 그만둘 때 나이를 물었더니 평균 49.1세였다. 고령층은 일을 그만두고 싶은 연령을 평균 72세로 답했다. 이들이 직장에서 나온 이유는 30.6%가 사업 부진, 조업 중단, 휴ㆍ폐업을 들었다.

이른바 두산인프라코어 사태를 비롯해 소셜커머스 티몬, 삼성물산 등이 실시했던 희망퇴직만 보더라도 우울하고 불안한 노동세태를 반영한다. 앞서 두산인프라코어, 삼성물산 등은 20~30대 사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해 사회적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대기업이 경영악화·사업구조조정·부서 슬림화 등에 이유로 차·부장급 대상으로 실사하던 희망퇴직을 20~30대 평사원에게까지 적용하고 있어 청년 세대의 고용불안이 상시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당시와 현재의 노동지표의 순위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노동 지표들이 OECD 국가에 비해 양적으로는 하락하고 질적으로는 소폭 상승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한국이 OECD에 가입한 1996년부터 2016년까지 20년간 고용의 양과 질, 유연성과 안정성, 노동시장 격차 등 주요 노동지표 14개의 순위를 비교한 결과, 이 같이 조사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용률 등 노동의 양적 지표 순위는 하락했고, 노동생산성 등 질적 지표 순위는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평균을 밑돌고 있다. 세부항목별로 살펴보면 양적 지표는 경제활동참가율(남녀 15세∼64세)이 23위에서 26위로, 고용률(남녀 15세∼64세)은 17위에서 20위, 실업률은 1위에서 2위로 모두 하락하는 모습이다.

질적 지표는 노동생산성이 32위에서 28위, 연간 평균임금은 19위에서 17위로 올랐지만 여전히 OECD 응답국가 중 하위권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근로시간은 3위에서 3위로 순위변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 순위가 가장 많이 오른 노동생산성(32위에서 28위로)은 1996년 14.6달러에서 2014년 31.2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지만, OECD 평균의 68% 수준이다. 임금도 1996년 3만880달러에서 2014년 3만6653달러로 인상됐지만, OECD 평균과 비교하면 90%대다.

▲ 금속노조 경남지부가 지난해 4월 16일 두산모트롤 정문 앞에서 중식 집회를 실시하고 있다.

정규직 고용보호지수는 1998년 2.23에서 2014년 2.17로 0.06이 감소했다.  근로시간과 평균근속기간, 성별임금격차 등 3개 지표는 1996년과 비교해 순위 변동이 없었고 평균근속기간과 성별 임금격차의 경우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그 외에도 평균근속기간은 2003년 4.4년에서 2014년 5.6년으로 1.2년 증가했으나, OECD 국가 평균 9.4년에 미치지 못했다. 남녀 임금 격차도 36.7%로 OECD 16.6%의 두 배가 넘어가고 있다.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350∼420시간이 넘는 장시간 근로 문화는 한국 노동시장이 해결해야 할 장기 과제다. OECD 가입 후 순위가 하락한 지표도 찾아 볼 수 있다. 경제활동참가율, 고용률, 실업률, 시간제근로자의 비율 등 4가지 항목이다. 실업률은 15∼24세 청년들의 실업률이 늘어났다. 청년실업률은 1996년 6.1%→2014년 10%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시간제근로자 비율이 OECD 국가들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라고는 하나,  OECD 국가 평균 1.2%에 비해 한국이 4.2%로 3배 이상 늘어나면서 순위가 2003년 8위에서 2014년 10위로 하락했다. 한국 노동시장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지표들 14개 가운데 11개가 평균을 밑돌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낮은 지표들에서 나타나지 않은 노동인권 탄압 등의 백태가 아직도 만연하다는 것이다. 올해만 해도 울산과학대학교 청소노동자, 전국협동조합노조, 유성기업 비상대책위원회, 삼성전자서비스 지회 등이 노동자 인권 탄압을 호소하고 나선 바 있다. 

이들은 ‘청소노동자라는 이유로 화장실마저 가지 못하게 한다’ 거나 ‘명예퇴직을 거부한 직원에게 책상에 앉아 벽만 바라보게 하는 ‘면벽 대기발령’을 강행했다’는 등의 사연을 전했다. 무엇보다 면벽대기를 강요한 두산모트롤이 희망퇴직 때 논란이 됐던 두산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라는 점은 일부 대기업의 잘못된 노사관계 인식을 단편적으로 보여줬다.

아울러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이 안전사고 예방을 명분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만 스마트폰을 강제 수거했던 사례나, 서울메트로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공 사망 사고는 비정규직과 청년노동자들이 받는 차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 

한편 지표들과 실례들이 보여주는 현실은 암담하기 짝이 없다.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미래연구원과 경제개혁연구소·경제개혁연대는 지난달 13일 노동(시장) 불평등, 그 원인과 해법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해당 자리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전병유 교수는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이중화(Dualization)의 문제로 설명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고용형태상의 비정규직화 문제와 기업규모 간 격차의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자동화 등은 규제 완화와 제도의 부재로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결과를 낳았고, 대기업 중심의 수출 주도 성장체제에서 가격경쟁력 유지를 위한 외주화와 단가인하 전략은 영세사업체의 저임금으로 이어져 노동시장 격차가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조사 결과에 대해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우리나라의 양적 노동지표의 순위가 모두 하락한 것은 OECD 국가에 비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여전히 저조하고, 최근 청년실업의 증가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어 “최근 유럽에서도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규직 해고 규제 완화 등 유연화 중심의 노동개혁이 추진되고 있다”며 “한국 노동시장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장시간 근로, 연공서열식 임금체계와 정규직 과보호 해소 등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진단도 거의 비슷하다. IMF가 한국 정부 등과 진행한 연례협의 이후 한국 경제가 대내외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며 잠재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특히 산업 생산성이 저조한 데다 노동시장이 왜곡되는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이 강력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칼파나 코차르 IMF 아시아태평양국 부국장을 단장으로 한 IMF 미션단은 한국 경제에 대해 “현재 소득수준이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도국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잠재성장은 둔화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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