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 결정으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문제로 정가가 들썩이고 있다. “여당이 왜소해 정부의 구상 계획이 의정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하며 ‘총선승리’에 강한 집착을 보이던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탄핵’이라는 ‘덫’에 걸리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감내’하며 열린우리당의 총선 승리에 그처럼 집요한 관심과 욕심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발언을 둘러싼 선거법 위반 논쟁이 선관위의 위법 판정이후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전개되고 있다.더욱이 열린우리당에서 나왔다는 ‘총선문건’이라는 것이 한참 정가를 뒤흔들어 놓기도 했었다. 당(黨)과 청(靑), 정(政)이 컨트롤타워를 형성해야 한다거나 국정운영의 우선순위를 선정 중청 후정으로 해야 한다는 등의 ‘관권선거’ 시비를 불러일으킬 만한 계획이었다.

자체 조사를 해봤더니 계약직 인사가 ‘순전히 개인적 아이디어 차원에서’ 작성했더라는 해명이 나왔다. 어쨌든 열린우리당이 총선 승리에 심하다고 할 정도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정치권 인사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편들기도 예사로 봐넘길 수준은 훨씬 넘어섰다는 것이다.노 대통령의 ‘총선승리’에 대한 집착은, 거대야당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여당이 왜소해서’ 정부의 구상 계획이 의정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취임초부터 정부 인사에 제동이 걸리는가 하면, 국회 해임결의안 통과라는 타격을 받기도 했다. 결국 여당의 총선승리를 통해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하겠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생각인 듯하다.

실제 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주최 취임 1주년 특별회견에서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해 총선승리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이번 총선에서 나머지 4년을 제대로 하게 해줄 것이냐, 못 견뎌서 내려오게 하느냐 국민들이 분명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해 국민들에게 안정의석을 은근히 부탁했다.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경인지역 6개 언론 합동회견에서 열린우리당 입당시기를 묻는 질문에 “입당하게 되면 가만 있어도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총선용이 되고 정치적 공방에 휩쓸리기 때문에 국민이 불안해 할 것 같아 입당은 되도록 늦게 하려고 한다”며 “경제, 민생에 집중한 후 불가피한 시점에 입당하면 그때부터 정치적으로 발언하고 정치활동을 해서 짧게 총선까지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에 되도록 늦게 입당해서 할 수 있는 정치적 발언과 정치활동이란 것이 무엇이 있을 것인가. 노 대통령이 에둘러 말했으나 재신임과 관련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이란 결국 ‘재신임과 4·15 총선의 연계’라는 것을 양식 있는 국민들은 이미 꿰뚫어 보고 있다.사실 국내 정치 여건상 대통령의 임기 중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결국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제 1당이 되면 ‘재신임’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그러나 노대통령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국회와 협력의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정치권 한 인사는 “야당이 장악하고 있다고 국회를 포기하는 것은 극한 대립만을 초래하게 된다”며 “야당을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협력하여 국민에 대한 ‘책무감’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관계복원은 쉽지 않아 보인다. 청와대는 ‘정략적’ 탄핵불가 및 정면 대응입장을 견지한 채 사실상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국회 채널을 가동하며 야권의 탄핵발의 추진 상황을 주시하는 한편 여론전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민정수석실내 법무비서관을 중심으로 대통령 직무범위 변화 등 탄핵안이 가결될 경우까지를 상정한 법률적 검토에 나서는 등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섰다. 이처럼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야당의 ‘탄핵카드’에 대해 ‘정면돌파’ 방법을 택한데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기대하는 민심에 기대보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여론 지지도는 바닥이지만 재신임에 관해서 만큼은 유독 높은 찬성의사를 표시했던 국민 심리의 이중성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민주당이 탄핵 정국을 앞장서 주도하는 이유는, 고착화되어 가는 열린우리당 대 한나라당 양강 구도로 고사위기에 처한 현실에서 탄핵카드가 반노전선을 형성하는 결정적 소재라는 시각 때문이다.

그럴 경우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도 다시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벌써부터 “탄핵시기는 조절할 수 있다”며 후퇴기류를 보이고 있고, 당내 소장파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더욱이 사실상 1년 전부터 ‘노대통령 탄핵’을 논의해 왔던 한나라당은 다소 소극적인 모습이다. 지난해 재신임 발언을 ‘덥썩’ 물었다 낭패를 본데다 소장파와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서 탄핵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 쉽게 결정을 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나라당은 탄핵발의에는 찬성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데는 주저하고 있다. 결국 두 야당의 ‘탄핵카드’는 사실상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일단락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두 야당이 탄핵소추에 필요한 재적의원 3분의 2(271명중 182명) 이상의 의석(한나라당 147석, 민주당 62석)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권한행사 정지가 실제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한편 노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은 입당을 계기로 더욱 강화되고 더 나아가 선거운동도 본격화될 전망이어서 ‘대통령의 관권선거’ 시비는 총선 내내 계속될 전망이다. 열린우리당 역시 그동안 미뤘던 ‘노대통령 입당’문제를 3월내로 마무리 짓고 야당의 ‘대통령 흔들기’에 맞서 ‘노무현 지지층’ 총결집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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