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부모의 삐뚤어진 인식 ‘독립체가 아닌 소유물로’
학대 방지 위한 인프라 및 전문인력 처우 ‘열악’
자식 죽여도 40%는 3년 미만 솜방망이 처벌
본질과 무관한 자극 보도 쏟아내는 언론 지적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아동학대는 구겨진 종이뭉치와 같습니다.” 아동학대에 대한 경찰의 신고 안내메시지다. 한 번 구겨진 종이는 잘 펴지지 않듯 아동학대도 한 번 당하면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구겨진 종이뭉치’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류정희 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아동학대로 사망한 사건만 11건에 이른다. 이번달에도 친모가 4살 딸아이를 28시간 굶긴 것도 모자라 몽둥이와 철제 옷걸이로 폭행해 숨지게 했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목을 조르고 ‘물 고문’을 시켜 3살 조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다. 구겨지다 못해 찢겨 버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4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초에 4000여 건이던 학대 신고 접수가 2014년에는 1만8000여 건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2015 현황보고서’(잠정치)를 봐도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1만9200여 건으로 재작년보다 늘었다. 이 중 60%가 넘는 1만1700여 건이 아동학대 사례로 판정받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수치가 ‘빙산의 일각’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아동보호체계는 ‘신고조사’를 기반으로 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되고 조치판정을 받은 아동의 수만이 학대피해아동으로 집계되기 때문이다. 위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제2, 제3의 피해 아동이 많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피해아동 발견율’이 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아동 1000명 당 피해아동 발견율은 1.1명(2014년 기준)으로 미국(9.1명)이나 호주(17.6명)와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류정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아동복지연구팀장은 지난 23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아동학대 관련 토론회에서 “우리나라의 학대 피해아동 발견율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인 데다가, 아동 보호체계가 신고조사를 기반으로 한 체계인 탓에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피해 아동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고의무자에 의한 아동학대 신고비율도 저조하다. 초·중등 교사나 아동복지 및 보육 시설 종사자 등에 의한 신고비율은 미국의 경우 61.6%, 호주 51.3%인 반면 한국은 29.0%에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 여중생이 부모 학대로 사망한 후 1년 가까이 지나도록 발견되지 못했다. 교육 당국 등의 무관심과 신고 의식 부재 속에 방치된 것이다. 여중생은 부모에게 무차별적으로 맞아 숨진 뒤 미라 상태로 방치되다 11개월이 지나서 발견됐다. 
▲ 출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2014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
학대가해자 80%가 부모
 
아동학대 80%는 가정에서 발생하고, 아동학대 가해자 5명 중 4명이 ‘부모’로 밝혀졌다. 학대행위 주체가 부모인 탓에 만약 학대를 발견하더라도 그게 훈육인지 학대인지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서울 광진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이모(34)씨는 “가끔 아파트에서 한 어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거칠게 말을 하고 팔을 잡아당기며 때리는 모습을 봤는데 조금 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부모니까 교육 차원에서 그랬겠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남의 가정사에 개입하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체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관대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학대 방관자’가 주위에 넘쳐난다는 것이다. 류정희 팀장은 “한국에서는 훈육과 아동 학대의 경계가 모호하다”며 “이는 아동학대 발견이나 피해 신고로 쉽게 이어지지 않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또 부모들이 ‘네가 뭔데 남의 집 일에 상관하느냐’는 식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아 아동보호전문기관 종사자들이 현장에서 신변에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2010년 전남에서 자녀를 격리시킨 여성 상담원이 불만을 품은 친부에게 망치로 머리를 맞아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상담원의 머리는 두개골이 보일 정도로 심하게 찢어졌고, 손가락 근육과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심한 중상을 입었다.
 
학대의 대물림 ‘악순환’
 
아동학대 발생 원인은 학대행위자의 80%를 차지하는 부모에서 찾을 수 있다. ‘2014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를 보면 부모의 부적절한 양육태도, 양육지식 및 기술 부족이 전체 33.1%를 차지해 가장 높았다.
 
보통 자식을 학대한 부모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계속 울어서’, ‘말을 안 들어서’, ‘잘못을 고쳐 주려고’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잦다. 학대행위자는 아동의 행동이나 욕구를 이해하지 못해 아동학대를 쉽게 저지르고, 아동양육에 대한 지식부족으로 아이를 키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제적 어려움·실직 등 사회·경제적인 스트레스나 고립을 경험하는 경우가 20.4%, 가정불화가 10.0% 순으로 높았다. 실제 올해 1월 ‘부천 초등생 토막살해 사건’의 가해자 친부는 변변한 직업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고, 3월 ‘부천 2개월 딸 학대 사망 사건’의 가해자 22살 동갑내기 부부도 둘 다 뚜렷한 직업이 없었다.
 
아동학대 사례 유형을 보면 정서학대가 40%로 신체학대 36.9%보다 높았다. 김준호 고려대 명예교수는 ‘아동학대의 실태 및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아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아동학대 유형은 직접적인 신체학대보다 흔히 학대라고 생각하지 않는 언어·정서적 학대”라며 “아동에게 무심코 던지는 욕설이나 습관적인 구박이 오히려 정서적 상해를 입히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유발시킨다”고 밝혔다. 
▲ 출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2014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
아동학대는 부모의 삐뚤어진 인식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최규련 수원대학교 아동가족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5월 연세대에서 열린 학대가정 관련 학술대회에서 “부모들이 아동을 이해하기보다는 소유물로 생각하고 아동에게 복종을 강요하며 체벌로 훈육해야 한다고 인식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아동을 함부로 대하는 점을 학대 발생 주요 이유로 꼽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어릴 적 학대 받은 경험이 있는 부모는 자신이 받았던 학대를 자신의 자식에게도 대물림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학대의 대물림’을 받으며 자란 사람은 나중에 강력 살인사건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희대의 살인마 강호순(47·장모와 처 포함 여성 9명 살해)과 유영철(46·여성 21명 살해)의 공통점은 어려서 부모에게 심한 학대를 당했다는 점이다. 또 한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탈주범 신창원(49)은 옥중 편지에서 “내가 만난 재소자 90%가 부모의 따뜻한 정을 받지 못했거나, 가정 폭력 또는 무관심속에서 살았다”고 쓴 바 있다.
 
인프라 매우 열악
 
아동학대가 발견되면 가장 시급한 조치는 가해자로부터 아이들을 격리시키는 것이다. ‘보호시설’은 피해가 더 진행되는 것을 막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필수시설이다. 이를 위한 예산은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학대아동피해쉼터’와 같은 보호시설을 늘리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아동 학대 관련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더 줄었다. 김은정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기고한 ‘아동 학대 현황과 예방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 학대 관련 예산은 252억4700만 원이었다. 하지만 올 예산은 185억 6200만 원으로 줄었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기획재정부에 요구한 503억8800만 원의 36.8%에 불과한 수준이다.
 
2019년까지 확충하기로 한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 100곳 가운데 실제로 설치된 곳은 57군데에 불과하다. 학대아동피해쉼터는 더 열악하다. 목표 100곳 중 설치된 곳은 38곳에 그친다.
 
예산이 줄다 보니 ‘인력 부족’에도 시달린다. 전국아동보호전문기관은 각 개소 당 최대 11개 시군구를 관할하고, 상담원은 1인당 연간 325명을 보호해야 하는 지경에 놓여 있다. 제대로 된 아동보호서비스가 작동할 수 없는 환경인 것이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한 언론에서 “급증하는 아동학대 신고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관련 인프라와 인력 확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학대 후 신고접수됐다가 다시 학대가 발생하는 ‘재학대’ 사례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어 보호시설의 확충과 전문인력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나치게 가벼운 처벌
 
법적 처벌 수준도 아동학대에 대한 국민 법감정에 뒤처진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전히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이다. 지난 6월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팀이 공개한 논문 ‘아동학대 사망사건 판결의 양형 분석’에 따르면 지난 15년간 학대가해자 40%가 3년 미만의 가벼운 처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존속(부모)살해의 평균 선고형량이 9.77년, 살인이 8.83년에 비해 매우 낮은 형량이다.
 
정익중 교수는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대한 양형은 아직까지 지나치게 낮은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판사의 주관적 성향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 있는 요소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자극적 보도, ‘설상가상’
 
아동학대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행태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언론은 아동이 피해자인 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할 아동학대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본질과 무관한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지난 23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한국소통학회와 함께 ‘아동학대사건보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세미나’를 열고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표창원 의원은 “최근 아동학대 언론보도는 피해자의 처참한 모습, 가해자의 악마 같은 특성들을 상품화하고 소비하고 그런 부분을 통해서 시청자 수, 구독자 수, 클릭 수를 높이는 데 열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지난 3월 평택에서 발생했던 ‘원영이 사건’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뻔뻔한 악마계모’, ‘노래방도우미 계모’, ‘게임중독자’, ‘욕실 감금에 락스 붓고’ 등 계모를 강조하며 고정관념을 확산시키고, 본질과 무관한 정보에다 지나친 묘사로 자극적인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세미나에 참석한 정의철 상지대 언론광고홍보학부 부교수는 “가정에 불화가 있거나 친부모가 아니라고 해서 범죄로 이어지는 건 아니고, 그들이 게임을 했다는 건 사건 본질과 무관하다”며 “계모, 계부에 대한 이 같은 보도가 과연 국민의 알 권리가 맞는지, 아니면 단순히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언론의 이러한 행태를 ‘경마 저널리즘’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한국 언론의 현 주소는 남보다 앞서 보도하는 것을 중시한 나머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하면서도 그에 대해 자성할 시간은 갖지 않는 경마 저널리즘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다른 참석자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아동은 보호의 대상이자 독립된 인격체로서 기본권을 가진 주체임에도 언론은 이들을 흥미로운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소재로 여기는 경향이 크다”며 “이들이 겪는 문제점과 대안 마련을 위한 노력,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결방안 등을 보도해 제도적 보완장치에 대한 고민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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