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 있어도 강한 남자 강원래 직격인터뷰

강원래와 구준엽이 함께 결성한 클론이 활동을 재개한지 어느덧 4년이 지났다. 강원래는 지난 2000년 11월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중 중앙선을 넘어 불법 유턴하는 차에 치여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다. 건강은 회복됐지만 늘 합병증 우려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고 휠체어는 그의 다리가 됐다. 다시 태어난 강원래는 사고전의 클론 때처럼 팬들에게 펄펄 나는 모습은 보여줄 수 없었지만, 사회적 메시지를 다양한 곳에서 전달하며 그만의 활동을 재개했다. 지난 8월 29일 KBS에서 라디오 생방송을 마친 강원래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강원래의 올해 나이 39세. 클론으로 이름을 알린지도 10년이 넘었다. 지금의 강원래는 날렵했던 클론 시절에 비해 10kg 가량 살이 쪘고, 벌써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강원래는 시종일관 차분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하며 그간의 이야기를 성의껏 들려주었다. 인터뷰 도중에도 강원래는 지나가는 많은 선후배 연예인들, PD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바빴고 방송국을 방문한 학생들이 멀리서 다가와 인사를 꾸벅 하기도 한다.

가수 김원준은 멀리서 달려와 “형은 최고”라며 기자에게 강조하기를 잊지 않는다. 휠체어에 조용히 앉아 있지만 강원래의 ‘포스’는 멀리까지 전해지는 것일까.

다음은 강원래와의 일문일답이다.

- 최근 근황을 소개해 달라.
▲ 라디오, KBS ‘사랑의 가족’ MC, 강릉에서 클론댄스 학원원장, 나사렛 대학교 겸임교수, 교통사범들에게 사고의 심각성을 알리는 명예보호감찰관, 그리고 클론으로 활동 중이다. 가수활동을 계속 하는 것이 내 나름대로의 장애 인식 개선 사업이다. 장애인 이동권과 ‘화장실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 보다도 휠체어 타고 세상을 잘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 90년대 후반 창창했던 클론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무엇이 가장 많이 달라졌는가.
▲ 클론 때는 하루를 1년같이, 지금은 하루를 한시간처럼 살고 있다. 그 때는 멋모르고 살 때였고 뭐든 내일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무슨 일이든 오늘 하자는 생각이다.

- 내면이 많이 변하고 성숙한 모습이다.
▲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완벽한 어른은 아니다.

- 말투가 낮고 차분하게 바뀌었는데.
▲ 라디오 진행을 하다 보니 말투가 조용해졌다. 사실 강원래는 실제 재미없다. TV에서만 재미있다. 구준엽은 나와 반대다.(웃음)


강원래의 일과 일상

- 술은 좀 마시는지.
▲ 술 마시는 것 정말 좋아한다. 아니, 술자리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클럽이든 포장마차든. 그런데 한번 끊어보려고 안마신지 한달이다. 사람들과 같이 취하는 것도 좋지만 안취하고 구경하는 것도 재밌더라.

- 자주 모이는 술자리 멤버는.
▲ 고등학교 때는 같은 학교의 속칭 날라리들이었다. 구준엽은 한잔만 마셔도 취했다. 그 이후에는 같이 춤추는 멤버들이었고, 최근에는 장애인들이다.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면 기분 좋다.

- 장애인 친구들과의 만남이 더 위로가 되는가.
▲ 서로의 힘든 점을 이야기안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잘 된 친구가 있으면 더 좋고 아프면 위로해준다. 예전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위로해주면 도움이 안됐다. ‘원래 오빠 힘내!’라고 하는데 힘내서 뭐하라고. 인생의 목표가 없는데…. 지금도 가끔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힘들다.

- 그들을 만나면 주로 어디서 술잔을 기울이는지.
▲ 포장마차에 많이 간다. 휠체어 때문에 야외가 편하다. 요즘 술 안주는 정치이야기다. 몸에 대해서는 이야기 잘 안한다.

- 요즘 힘든 점은 뭔가.
▲ 얼마 전 장모님이 암으로 돌아가셨다. 송이는 나 때문에도 힘든데, 참 기구한 운명이다. 장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방송출연을 했었다. 장모님이 힘을 내는 계기도 되고 완쾌됐을 때 추억도 되라고 방송을 허락했다. 그런데 방송 끝나고 돌아가셨다. 길 가던 아줌마들이 내게 와서 장모님이 암이라더니 돌아가셨냐고 웃으면서 물었다.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했더니 ‘누가 TV에 나오랬냐, 지 까짓 게 연예인이라고’ 말하더라. 내가 병원에 있을 때도 못 걷는 것을 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직까지 못 걷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 2003년 방송에 복귀했다.
▲ 뭔가 하고 싶었다. 앉아서만 할 수 있는 직업을 골랐지만 라디오 DJ란 직업에 대한 매력은 몰랐다. 맨날 뛰어다니기만 했으니. DJ가 된 후 음악을 많이 듣고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여러 사람을 이해하는 노력을 많이 했다.

- 라디오 DJ가 적성에 맞나.
▲ 또 다른 인생이다. 준비 많이 하고, 조심해서 하고, 실수하면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한다.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방심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 경기고 동문 중에 문화 인사들이 많은데 이유가 뭘까.
▲ 학교가 강남이었고 유행에 민감하던 세대다. 마이클잭슨, 브레이크댄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일까 동문 중 PD들이 많다. 당시 야간자율학습이 없었다. 교장선생님이 특이해서 4시면 다 끝났다. 우린 나이트클럽 갔고 공부할 애들은 도서관 가고, 과외를 했다. 그래서 공부 할 애들은 더 잘된 것 같다. 난 반에서 꼴등했는데도 강릉대 장학생이었다. 준엽이도 장학생이었다. 단, 준엽이는 졸업을 했고 나는 중퇴다.

- 기억나는 선생님이 있나.
▲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우리의 인생을 바꿨다. 날라리가 적성에 맞으면 날라리로 먹고 살라 하셨다. 그게 제일 행복한 삶이라고 제일 인정받는 날라리가 되라고 했다.

- 강단에서의 강원래는.
▲ 나사렛 대학교에서 춤을 가르친다. 수강신청 기간에는 80명이었는데, 공부나 레포트로 성적 얻을 사람 나가라니깐 바로 160명이 됐다.(웃음) 요즘 젊은이들이 연예인들을 우습게 보지만 음반을 준비하기까지는 많은 연습과정이 있다. 아이들은 노래연습, 안무, 성형까지 너무 쉽게 평가한다. 학생들에게 그만큼 엉터리로 하는 대학생활을 한 뒤 사회에 나가면 어려움에 처하기 십상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솔직한 성격 때문에 오해를 샀던 일도 있는데.
▲ 네티즌 중 한 명이 싸이월드에서 내가 달았던 리플 중 나쁜 것만 캡쳐해서 유포해 내가 비난을 받았다. 나는 싸이월드를 하며 2년 정도 리플을 달았고, 보는 사람들은 굉장히 나를 좋아했다. 어느 날 포장마차를 갔는데 어떤 취객들이 나보고 몸도 불편한 사람이 왜 술 마시러 왔냐, 물 흐린다고 하더라. 술 취하면 그런 말 할 수도 있지만 불쾌했다. 그날 저녁 미니홈피에 보니 한 장애인 친구가 방명록을 썼더라. 그래서 나도 왜 물 흐리게 왔냐고 댓글을 달았다. 진심이 아니라 사람들 시선에 대한 반어, 풍자였다. 학생친구가 오토바이 탄다고 하면, 너 언젠간 사고난다, 휠체어 타는 법 알려준다 이런 식으로 남기는 거다. 싸이에 대한 것은 언젠가는 자세히 이야기 할 생각이다. 당시 사과의 글을 썼지만, 해명자료는 아직 가지고 있다.


인생의 두 동반자

- 구준엽과는 얼마나 자주 만나나.
▲ 85년 고1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의 우정이다. 요즘은 자주 만나지는 않는다. 매일 왜 만나나.(웃음)

- 평생 친구, 구준엽은 어떤 사람인가.
▲ 최고의 베스트프렌드가 준엽이지만, 나한테 자극을 주는 라이벌이다. 항상 내가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준엽이는 잘생겨서 인기가 많았고, 내가 준엽에 대한 콤플렉스로 춤 연습을 많이 했다

- 구준엽의 내면은.
▲ 마음이 약하고 어릴 때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다.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운동도 열심히 하고 강하게 다지는 것 같다. 클론 때는 내가 클론을 이끄는 아버지, 준엽이가 엄마였다. 댄스팀과 다 같이 움직일 때 우리의 역할이다.

- 아내 김송씨의 근황은.
▲ 송이는 집에 있다. 요즘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박미경과 음악활동하면서도 집안일을 잘한다.

- 강아지를 좋아하나.
▲ 나와 송이 둘 다 좋아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지만 치료견 사업도 생각하고 있다. 장애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으면 힘들다. 나도 두 달 정도 정신과 치료를 받았었다. 그런데 강아지를 키우면 심리치료가 된다. 실어증 아이가 강아지를 키우면서 12년 만에 말을 했다. 나도 마음을 열었다.

- 남편의 활동을 부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 처음에는 많이 따라다녔지만 지금은 혼자 다닌다. 매니저 없이 웬만하면 혼자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힘들기는 하다. 그래도 내가 혼자 다녀서 장애인도 여건이 되면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 아내가 걱정하지 않나.
▲ 처음에는 걱정 많이 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인데 와이프와 같이 다닐 수는 없다. 그래도 벌써 사고난지 7년이다. 많이 익숙해졌다.

- 김송과 함께 한 시간.
▲ 고3때 처음 봤다. 본격적으로 사귄 것은 91년이다. 군대에서 연애편지 나누면서 모든 여자를 정리하고 송이와 사랑을 키웠다. 내 마누라 송이, 내 사랑 송이로 항상 편지를 시작했다. 500통을 보냈다.

- 김송은 강원래의 어떤 매력에 일편단심일까.
▲ 나름대로 내가 매력이 있었나보다. 춤추는 모습과 스타일이 좋았고 항상 이끌어갔던 성격이 좋다고 한다. 강압적이다.(웃음)

- 아내가 아이를 원했다는데.
▲ 시험관 수술을 네 번까지 했는데 거의 포기 수준이다. 정상인도 힘든데 내가 몸이 많이 안 좋다. 천천히 생각해 볼 것이다. 대신 송이의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강아지를 키우는데 송이가 아침에 강아지 데리고 운동도 나가고 집안이 활기차졌다.

- 앞으로의 소망이 있다면.
▲ 장애인을 위한 공연단을 내 이름을 걸고 만들고 싶다. 장애아동시설에 가서 가수 한명, 코미디언 한명, 마술사 한명 이렇게 구성된 작은 공연단이 하루만 화끈하게 놀아주고 오는거다.

- 요즘 연예계 어떤가.
▲ 어느 날 지나가는데 아이들이 “와, 연예인이다” 이런다. 옛날에는 가수다, 탤런트다, 정우성이다, 이런 식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가수도 연기를 하고 연기자도 가수를 하고 가수가 엠씨를 한다. 통합됐다. 다재다능한 사람이 인정을 받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아이들의 말 한마디로 느꼈다.

- 요즘 가장 즐거운 일은.
▲ 운전, 부모님 용돈 드리기, 강릉의 학원에서 아이들 춤추는 것 보는 것이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누구나 올 수 있는 작은 학원이고, 아주머니들도 오신다.

- 하고 싶은 말은.
▲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와 장애인이다”하면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요즘 아이들은 교육을 받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이엄마는 그런 아이들을 때리면서 “너보고 병신이라고 하면 좋겠느냐”고 혼낸다. 장애인은 병신이 아니다. 그런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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