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 드라마맞대결

수목드라마 시장에 한판 전쟁이 벌어졌다. 사극과 현대극, MBC와 SBS의 자존심을 건 전쟁이다. SBS 대기획 <로비스트>와 MBC 퓨전사극 <태왕사신기>의 경쟁을 일컫는 말이다. 규모에서 스토리, 주인공, 제작진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요소를 가진 두 대작 중 ‘최후의 승자’는 어떤 작품이 될까.


지난 10월 10일 밤 10시. 드라마 팬들은 고민에 빠졌다. 9월 11일 첫 방송을 시작해 30%대의 시청률을 기록 중인 MBC의 <태왕사신기>를 볼 것이냐 이날 첫 전파를 타는 SBS의 <로비스트>를 볼 것이냐를 두고서였다.

그만큼 <태왕사신기>와 <로비스트>의 매력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각각 사극과 현대극으로 장르는 다르지만 엄청난 규모와 쟁쟁한 출연진, 흥미진진한 스토리 등으로 제작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다.

일단 두 드라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제작비를 자랑한다. <태왕사신기>의 경우 430억원이라는 전대미문의 제직비가 투입돼 기대감을 높였다. <태왕사신기>보다는 약하지만 <로비스트> 역시 120억원이라는, 드라마로서는 드문 제작비를 기록했다.


탁월한 영상미 쟁쟁한 출연진

풍부한 제작비를 바탕으로 두 드라마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영상미를 선보인다.

<태왕사신기>는 제주도 북제주군 인근 6만여평 부지에 190억원을 들여 ‘국내성 세트’를 조성했고 고구려의 광활한 느낌을 담기 위해 키르키즈스탄 로케이션 촬영도 진행했다. 최근 경기도 화성 경비행장 인근에서 촬영된 엔딩 전투신에는 1천명이 넘는 엑스트라가 동원돼 대작의 위용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하지만 <태왕사신기> 영상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컴퓨터그래픽(CG). 기존 드라마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양한 CG를 삽입해 판타지 장르의 매력을 살리고 재미까지 강화시키고 있다. 1회에서 환웅과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사신 이야기를 CG로 처리한 분량을 방영해 시청자들의 호감을 급상승시켰다는 평가는 빈말이 아니다.

<태왕사신기>의 영상이 판타스틱하다면 <로비스트>의 영상은 보다 리얼하고 긴장감 넘치는 느낌이다. 제작진은 로비스트들의 삶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로비스트 활동이 활발한 미국의 뉴욕과 워싱턴에서 촬영을 진행했고 총격전 등의 전투신은 키르키즈스탄을 배경으로 했다. 특히 키르키즈스탄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300~400점 이상의 실제 총기류와 차량 등이 투입된 전투신은 웬만한 액션영화 못지않은 스펙터클함을 자랑한다. 실제로 지난 10일, 긴박감 넘치는 총격신이 담긴 1회가 방송된 후 <로비스트>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액션신이 엄청나다” “액션영화 못지않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두 작품은 출연진도 쟁쟁하다.

<태왕사신기>는 대표적인 한류스타 배용준이 주인공 ‘광개토대왕’ 역을 맡아 이슈를 불러 일으켰고 영화배우 문소리의 첫 드라마 출연작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여기에 박상원, 최민수, 오광록, 김미경, 장항선 등의 관록 넘치는 배우들과 ‘수지니’ 역의 이지아, ‘각단’ 역의 이다희, ‘쇠두루’ 역의 민지오 등 주목받는 신인들이 동참해 완성도를 높인다. 유승호, 박은빈, 심은경 등 아역배우 캐스팅도 최고였다.

<로비스트> 캐스팅 라인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50%의 시청률을 기록한 국민드라마 <주몽>의 히어로 송일국과 6년 만에 안방극장에 컴백하는 장진영, 군 제대 후 연예계에 복귀하는 한재석이 중심을 이뤄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탄탄한 연기력을 겸비한 이미숙과 허준호, 성지루의 출연도 기대감을 모으기 충분하다.


새로운 이야기 ‘호기심 자극’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려나가는 제작진의 유명세도 막상막하다.

<태왕사신기>는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 등의 대박 드라마를 만든 ‘흥행 콤비’ 김종학PD와 송지나 작가가 다시 손을 잡았다는 점만으로도 팬들을 설레게 했다. <로비스트>는 <주몽>, <올인> 등의 대본을 쓴 최완규 작가와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주찬옥 작가가 공동 집필을 맡아 보다 짜임새 있는 구성을 약속한다.

진부한 소재를 탈피, 지금껏 어느 드라마도 다루지 않은 이야기를 선보인다는 점에서도 <태왕사신기>와 <로비스트>는 닮아있다.

<태왕사신기>는 북벌정책으로 역사상 가장 광활한 한반도 영토를 구축한 광개토대왕의 삶을 신화와 접목시켜 풀어낸다. 최근 들어 고구려 역사를 다룬 드라마가 빈번하게 제작되고 있지만 신화와 역사를 판타지 장르 안에 버무린 작품은 <태왕사신기>가 처음이라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특히 세계시장 진출을 목표로 한 만큼 컴퓨터게임 같은 재미와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라인을 추구하고 있다.

<로비스트> 역시 국내 드라마로는 처음으로 로비스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관심을 모은다. 린다 김과 최근 신정아 사건 등으로 국내에서는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세계 각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로비스트, 그 중에서도 무기 로비스트들의 화
려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삶을 다뤄 호기심을 자극한다.

많은 자금과 시간, 노력을 들인 만큼 초반부터 거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태왕사신기>와 <로비스트>. MBC와 SBS, 사극과
현대극의 자존심을 걸고 벌이는 두 작품의 ‘시청률 전투’가 어느 쪽의 승리로 끝날지 세간의 관심이 모아져 있다.



#<태왕사신기>&<로비스트> 배우들 열정

<태왕사신기>와 <로비스트>는 단순히 규모만 큰 작품이 아니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완벽하게 배역을 소화하려는 배우들의 열정도 엄청나다.

<태왕사신기>에서 담덕(광개토대왕) 역을 맡은 배용준은 촬영을 앞두고 거의 매일 승마와 검도, 전통 검술 연습 등에 매진했다. 자연스러운 캐릭터 표현을 위해 머리카락을 기르고 강인한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 체중까지 불렸다. 최근엔 전투신 촬영 중 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을 펼치다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로비스트>에서 국제적인 무기 로비스트로 분하는 송일국과 장진영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에서 진짜 총을 접할 수 없었던 송일국은 <무기연감>과 <국방백서> 같은 책을 보며 무기체계를 공부했고 장진영은 승마와 사격은 물론 대형 버스운전, 탱고까지 익히며 연기에 만전을 기했다. 뿐만 아니라 화려한 로비스트의 외면을 표현하기 위해 의상과 헤어스타일까지 손수 체크했다. 특히 장진영은 키르키즈스탄에서 강도 높은 액션신을 촬영하면서 단 한번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스텝과 동료배우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또 유난히 많은 영어대사를 소화하기 위해 송일국, 장진영, 한재석은 영어 공부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다. 함께 출연하는 중견배우 김미숙에 의하면 해외촬영 시 여유시간이 생겨도 세 배우는 영어공부를 위해 방에서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고.



##대작 사이서 ‘사육신’만 고통?

지난 10월 10일 1, 2회를 연속으로 방송한 SBS <로비스트>는 각각 12.6%와 12%의 시청률을 기록했다.(TNS미디어코리아 기준)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첫 방송 시청률로는 나쁘지 않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30%를 넘었던 <태왕사신기>의 시청률은 이날 25.9%로 하락했다. 하지만 시청률 하락으로 <태왕사신기>보다 더 큰 충격을 맛 본 드라마가 있으니 KBS 2TV <사육신>이 그 주인공.

이전에도 부진한 성적을 면치 못했던 <사육신>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3일 3%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가 <로비스트>와 <태왕사신기>가 맞붙은 10일 1.9%로 하락했다. 이는 2000년 이후 방송된 드라마 가운데 2번째로 저조한 시청률이다. <사육신>이 최초의 남북합작 드라마로 제작 당시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임을 감안하면 더 충격적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10월 말까지 방송되는 <사육신>이 <태왕사신기>와 <로비스트>의 경쟁으로 1.9%보다 더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지 않을까라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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