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엘리트 사회 속 빛나는 청렴의 아이콘

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대한민국이 ‘투명 사회’로 가기 위한 첫발을 내딛었다. 지난달 28일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청탁금지법’, ‘반부패법’, ‘부패방지법’ 등으로도 불리는 이 법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패 문화를 청산하기 위해 도입됐다. 현재 이 법으로 사실상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일상이 변화를 맞고 있다. 이 법을 처음 고안한 김영란 전 대법관(60·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이 몰고 온 변화다.

“이 법은 우리의 오래된 관행과 습관, 문화를 바꾸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단순히 형사법적인 처벌문제에 집착하기보다 근본적으로 부패문화를 바꾸는 데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법을 처음 제안한 김영란 전 대법관은 김영란법의 취지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그가 제안한 이 법으로 우리 사회는 ‘청렴 사회’로 가기 위한 시험대에 올랐다. 최근 김 전 대법관의 남편 강지원 변호사(67)는 법 시행 이후 언론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있는 김 전 대법관을 대신해 법 시행 관련 소회와 입장을 전했다.

강 변호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전 대법관이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 같다”며 “분명히 가다가 언제 거꾸러질지, 어디서 어떤 방해세력이 나타날지, 그래서 엎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 전 대법관이 법과 관련된 발언을 자꾸 하게 될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에 기도하고 지켜보는 것이 옳은 자세라고 판단했다”며 “현재 법을 둘러싸고 여러 논란이 있지만 집단지성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여성 최초’ 3관왕

김영란 전 대법관은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유명하다. 서울대학교 법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여성 최초로 대학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1년에는 서울시 종로구에서 최초의 여성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그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1978년만 해도 여성 검사는 아예 없었으며, 여성 판사 역시 극소수였다. 당시는 사법고시에 여자 합격자가 나오면 일간지 사회면 톱기사로 나던 시절이어서 그의 합격 소식은 단연 화제가 됐다.

이후 판사로 법조계에 입성해 수원지방법원과 서울지방법원, 대전고등법원 등에서 부장판사를 지냈다. 2004년에는 만 48세의 젊은 나이로 대법관으로 임명돼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사법연수원 11기 출신인 김 전 대법관은 당시 사법연수원 2, 3기 출신 60여명의 선배들을 제치고 임명된 파격 인사의 주인공이었다.

대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여성이나 아동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신장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으로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찬성과 사형제·호주제 반대 등이 있다. 때문에 ‘소수자의 대법관’이라는 수식어도 생겼다.

대법관 임기 6년을 마친 김 전 대법관은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 다시 한번 사회를 놀라게 했다. ‘전관예우’가 판치는 법조계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당시 한 일간지에서는 ‘100억’을 포기했다고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2011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민의 권익보호와 부패 행위 예방을 주업무로 하는 기관의 수장이 됐다.

위원장을 맡던 중 남편인 강지원 변호사가 2012년 대선 후보로 출마하게 되자 장관급 공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스스로 물러났다. 공무원의 이해 충돌 방지를 우려해 자진 사퇴한 것이다. 본인의 삶이 ‘청렴’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자칭 ‘평범한 아주머니’

스스로를 ‘평범한 아주머니’라고 표현하는 그는 강지원 변호사와 1982년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국내 최초의 판검사 부부로 알려져 있다. 남편인 강 변호사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해 사법시험에 수석합격한 후 검사를 지냈다. 김영삼·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 초대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대외활동을 이어가다가 김영란 전 대법관이 여성 최초로 대법관이 되자 공직에서 물러났다.

이들 부부는 슬하에 딸 둘을 두고 있다. 이들의 독특한 자녀교육론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리자’로 유명하다. 이는 김 전 대법관이 고교 시절 이과였으나 학교가 ‘서울대 법대 합격자를 많이 내야 한다’며 김 전 대법관에게 진로 변경을 압박(?)했던 일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두 딸 모두 대안학교(기존 공교육과 다른 인성 특성화 학교)에 보냈다. 김 전 대법관은 “부부가 전형적인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서 아이들은 자유로운 학교에 보내서 개성을 살려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판사 시절부터 반부패법 꿈 꿔

그는 30년 가까이 공직에 있으면서 수많은 청탁 요구를 경험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부장판사들이 친한 변호사들에게 밥과 차를 얻어 마시고 룸살롱에 드나드는 것을 보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김 전 대법관은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라는 저서에서 “판사시절 초기부터 어떤 명목으로든 돈을 못 받도록 금지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2010년 무렵 금전·향응·청탁으로 얼룩진 ‘스폰서 검사 사건’, ‘벤츠 여검사 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공직 기강을 바로잡는 법의 필요성도 커졌다. 2012년 8월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그는 공직사회의 집단주의·연고주의를 깨고 부패 방지 척결을 위한 김영란법 발의를 제안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 이미 형법상 처벌 근거(뇌물죄) 존재 ▲ 과잉 규제 가능성 ▲ 공무원과 일반인을 차별 등을 내세우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에 김 전 대법관은 “선진국 문턱에 있는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법”이라며 “이 법을 통해 부패를 넘어 신뢰라는 시스템으로 작동되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법을 제안한 지 2년 8개월이 지난 2015년 3월 국회 본회의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다. 올해 5월에는 이른바 ‘3·5·10(식사·선물·경조사비)’ 등 구체적인 시행령이 만들어졌고, 지난달 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논란 여전…‘우선 지켜보자’

현재 초기 상황을 보면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장삼이사 사이에서도 이 법에 대한 관심이 심심찮게 오간다. 또 ‘초기 시범 케이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분위기도 보인다.

하지만 볼멘소리도 나온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 기준이 아리송하고, 실물 경제의 위축을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금품’ 부분에선 예외가 없지만 ‘청탁’ 부분에선 국회의원 등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데 대해 예외 조항을 둬 국회의원만 빠져나간 것 아니냐는 논란도 있다.

하지만 ‘투명 사회’를 위한 법의 본래 취지를 환영하는 사람이 더 많은 형세다. 전문가들은 애매한 사회 상규 등 곳곳에서 나오는 우려는 시간이 흐르고 판례가 쌓이면 점차 해결될 거라고 전망한다.

김영란 전 대법관도 자신의 저서에서 이 법의 요체를 밝혔다. “모든 일에는 행동강령이 필요해요. 이 법이 누구를 처벌하기 위한 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군가 청탁을 하면 이런 식으로 거절하라고 행동강령을 만드는 거예요. 소수의 악당이 아니라 다수의 선한 사람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라면 그걸 통제하는 방법이 중요해요. 체포 가능성을 높이고 처벌수위만 높여가지고는 해결될 수 없다는 거죠. 오히려 도덕적인 규범을 머리에 떠올리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태도를 바꿀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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