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은 정치 9단으로 불린 김종필이 주도한 자유민주연합 이후 국내 정당사에서 가장 강력한 제3당이다. 안철수라는 유력한 차기주자를 보유한 것은 물론 호남이라는 강력한 지역기반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원내 의석 38석에 불과하지만 국민의당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거대 여야 정당을 누르고 정치적 주요 고비 때마다 결정적 역할을 했다. 최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행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제 3당으로서 존재감 과시는 집권 여당으로부터 더불어민주당의 이중대라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다. 제1야당과 선명성 경쟁을 해야 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의 정치 현실을 짚어봤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제 3당 존재감 과시vs 제1야당 이중대 비난
- 국감파행 정국서 새누리당, 더민주, 정세균 ‘물타기’ 전략

국민의당은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에서 제3당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새누리당도 더민주도 국민의당의 도움 없이는 김 장관 해임건의안의 가결 또는 부결이 불가능했기 때문. 이는 원내 의석 분포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은 국회법 규정에 따라 재적의원(300명)의 과반(151명) 찬성이 있어야 한다. 새누리당 129석, 더민주, 121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6석이라는 의석 분포를 감안하면 국민의당의 선택에 따라 해임건의안 처리의 향방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20대 국회 전반기 원구성 협상에 이어 국민의당이 다시 한 번 여의도 정치무대의 주연으로 떠오른 것이다.

여야 대충돌 국민의당, 김재수 운명 갈라

9월 23·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는 김재수 장관 해임안을 놓고 정면충돌했다. 20대 국회 시작과 더불어 여야가 그토록 강조해왔던 협치는 완전히 실종됐다. 국회선진화법의 여파 탓에 과거와 같은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한동안 사라졌던 막장국회가 그대로 재현된 것.

새누리당은 김 장관의 해임안을 막기 위해 의사진행을 지연시키면서 다양한 전술을 활용했다. 특히 국무위원들의 식사시간 보장을 촉구해 ‘필리밥스터’(무제한 반대토론인 필리버스터+밥)라는 신조어까지 낳았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은 이에 개의치 않고 야3당 공조를 성사시키며 여소야대의 위력을 한껏 과시했다.

주연배우는 국민의당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강경 대치였지만 국민의당의 선택에 따라 김 장관의 운명이 결정됐기 때문. 해임건의안 무기명 투표에서는 새누리당 소속 의원 129명이 전원이 불참한 가운데 찬성 160표, 반대 7표, 무효 3표가 각각 나왔다. 가결에 필요한 재적 과반수인 151표를 훌쩍 넘어섰다.

이는 국민의당에서 30표 안팎의 찬성표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오리무중이던 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국민의당의 막판 몰표로 헌정사상 6번째로 가결된 것이다. 국민의당의 입장 선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북핵사태와 관련, “대화를 위해 준 돈은 핵 개발 자금이 됐다”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도한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발언이 나온 게 결정적이었다. 

국민의당의 스탠스 변화는 새누리당의 상반된 태도에서 잘 나타났다. 새누리당은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이 김재수 장관의 해임안에 대해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며 반대 입장을 밝히자 “담대한 용기”라고 극찬했다. 황 의원의 발언과 당내 일부 반대 여론 고려할 때 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부결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기 때문.

염동열 수석대변인은 “여야를 떠나 국회의원 모두가 귀감으로 삼아야 할 양심의 정치”라면서 “당과 정파적 이익을 넘어, 국민을 향한 아름다운 울림이라고 할 것”이라고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극찬은 오래가지 않았다. 국민의당이 결국 더민주와의 공조를 선택,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에 찬성표를 던지자 맹비난에 나섰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김 장관의 해임안 처리와 관련, 정세균 국회의장과 더민주의 행태를 비난한 뒤 “국민의당이 더 한심하다”며 “국민의당이 정치개혁의 정체성을 버리고 더불어민주당의 대선전략에 이중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새누리, 극찬했다가 ‘이중대’ 맹비난 왜

새누리당의 극찬과 맹비난은 국민의당이 확보한 제3당으로서의 위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야 모두 원내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의당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서는 팽팽한 대치상황에서 그 어떤 합의점도 만들 수 없다. 다만 거대 양당 사이에서 지나친 줄타기와 오락가락 행보는 향후 국민의당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이다.

국민의당의 존재감은 김재수 장관의 해임건의안 처리 때뿐만 아니라 이후 국정감사 파행정국에서도 빛났다. 여야의 강대강 대치와 새누리당이 불참한 반쪽국감이 지속되면서 적극적인 중재 역할에 나선 것.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대화채널은 해임안 통과의 후폭풍으로 완전 단절됐다.

새누리당은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의 원천무효와 정세균 국회의장의 의장직 사퇴를 촉구했다. 더민주는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의 수용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촉구하면 새누리당의 국감 복귀를 거듭 설득했다. 양측의 접점은 없었다.

두 정당 사이의 공백을 메운 것은 국민의당이었다. 정국파행을 해소하기 위해 새누리당, 더민주, 정세균 국회의장을 다각도로 접촉하면서 정국타개를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김재수 해임안 제출 과정에서는 불참했지만 표결에는 찬성하는 광폭행보로 한껏 높인 존재감을 국감파행 정국 타개 과정에서도 선보인 것.

여야의 극한대치 속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며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강경여론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맡았다.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비판한 것은 물론 특정 정당의 편을 들지 않고 합리적인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수권 정당의 면모까지 과시한 것이다.

김재수 해임안 정국에서 국민의당은 존재감을 드높였지만 차기 대선을 내다보면 고민이 없지 않다. 좋게 말하면 거대 양당 사이에서 존재감을 과시한 것이지만 나쁘게 보면 갈지자 행보다. 특히 주요 정치적 고비에서 이러한 오락가락 행보는 차기 대선과 연관지어 볼 때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국민의당은 김재수 장관 해임안 처리와 국감 파행 정국에도 정치적 위상을 드높였다. 20대 총선 이후 홍보비 파문 등의 여파로 지지율 정체를 겪었지만 양당 사이의 중재역할로 차별성을 드러내는데 성공했기 때문. 특히 새누리당이 친박 패권주의, 더민주가 친노·친문 패권주의로 귀결되면서 국민의당의 활동 공간은 더욱 커졌다.

차기 대선과 연결시켜도 상황은 나쁘지 않다. 야권 안팎의 단일화 압박에도 독자행보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것. 20대 총선에서 호남 석권과 비례대표 정당득표율 2위를 기록하며 38석 대약진을 이뤄낸 신화의 재현이다. 국민의당은 그동안 진보·보수 양극단 세력의 배격하고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를 아우르는 제3지대 중심론을 설파했다. 김재수 해임안을 둘러싼 후폭풍 정국에서 아무래도 거대 양당보다는 국민의당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정세균 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 이정현 대표와 관련, “국회의장이 나갈까요? 이정현 대표가 죽을까요? 그래서 국민은 양극단세력을 배제하고 제3세력 국민의당을 주목한다”고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차기 대선전 독자노선과 연대 사이 고민

다만 존재감 부각을 위한 지나친 오락가락 행보가 장기적으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당의 텃밭인 호남에서는 여전히 새누리당에 대한 거부감이 크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더민주와의 선명성 경쟁에서 밀리면서 한국정치사에 명멸했던 제3당 몰락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정주영의 통일한국당, 정몽준의 국민통합21, 문국현의 창조한국당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악의 경우 지난 20대 총선 과정에서 야권통합 논의를 둘러싼 정체성 시비가 재현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독자노선으로 정리했지만 차기 대선을 앞두고 비슷한 논란은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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