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이 정국을 뒤흔들면서 대구·경북 민심도 요동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으로 정권 탄생에 크게 기여했다는 자부심에도 커다란 생채기를 남겼다. 그동안 대구·경북 민심은 각종 악재 속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간절히 바랐던 지역인 만큼 실망감이 분노를 넘어 연민을 지나 패닉(공황) 상태다. 게다가 ‘포스트 박근혜’로 부를 만하고 구심점 역할을 할 큰 인물도 부재해 더욱더 혼란 속으로 빠지고 있다.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워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찍힌 유승민 의원을 바라보는 TK민심은 ‘착잡’하기만 하다.

 - ‘콘크리트 지지층’ 붕괴 중심 잃은 TK
- ‘목소리 커진’ 유승민에 반대 진영 ‘착잡’

우병우 민정수석의 부동산 부당거래 의혹으로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세는 최순실 연설문 개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폭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박 대통령은 10월24일 ‘개헌’이라는 카드로 정국 돌파를 꾀했지만 같은날 ‘박 대통령 연설문을 최순실씨가 수정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민심은 더 악화됐다.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중차대한 사안을 ‘최순실 게이트’를 덮기 위해 정략적으로 활용했다는 역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결국 박 대통령은 10월25일 처음으로 최씨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면서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했다. 박 대통령은 “선거 때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며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 홍보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조언을 받았음을 인정했다.

‘개헌카드’ 역풍에 최씨  옹호 ‘사과문’ 악재

나아가 박 대통령은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며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에는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 및 보좌체제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시인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저로서는 (국정을)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끝을 맺었다.

박 대통령의 이런 사과는 오히려 대다수 국민들뿐만 아니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던 대구경북 민심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박 대통령이 최씨와 관련해 ‘어려울 때 도와준 고마운 사람’,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면서 최씨를 옹호하고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사과드린다’며 허겁지겁 대국민 사과를 한 모양새를 취했기 때문이다. 더욱 TK 지역민들을 착잡하게 만든 것은 최씨가 외교·안보와 인사 등 국정 전반에 걸쳐 깊숙이 개입했으며, 그것도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는 증언이 여기저기서 나왔기 때문이다.

대통령 당선인 시절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 시나리오에서부터 외교 사절 면담, 대통령 업무보고, 국무회의 자료에 이르기까지 영역 구분이 없이 최씨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TK민심조차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능력을 걱정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무엇보다 대구.경북 민심의 자존감을 상실케 한 것은 최씨의 존재감이다. 친인척도 아닌 최씨가 문고리 3인방(정호성, 이재만, 안봉근)까지도 수족처럼 부리면서 사실상 ‘상왕정치’를 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사실상 ‘정윤회 문건 파문’의 당사자이자 비선 실세로 지목됐던 최씨의 남편 정씨도 부인의 힘으로 호가호위하다 ‘팽(이혼)당한 게 아니냐’는 소문도 확산되고 있다.

결국 잘못된 정국 전환용으로 꺼낸 개헌카드와 마지못한 사과문으로 박 대통령 지지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지지율의 폭락은 전국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그동안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분류돼온 대구·경북, 부산·경남, 60대 이상, 보수층, 새누리당 지지층이 붕괴되면서 10월 26일 일간 지지율은 17.5%까지 떨어졌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매일경제 의뢰로 2016년 10월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전국 15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10월 4주차 주중집계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 지지도는 전주 대비 7.3%P 하락한 21.2%로 4주째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반면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 역시 8.6% 폭등한 73.1%로 전주 64.5%를 경신하면서 처음으로 70%선을 넘어섰다. 영남권을 보면 부산·경남·울산에서 긍정평가 20.6%, 부정평가 72.5%로 가장 큰 폭으로 지지층이 이탈했고, 다음으로 박 대통령의 핵심 지지 지역인 대구 경북을 보면 긍정평가 35.4%, 부정평가 61.7%로 부산·경남·울산 다음으로 큰 낙폭을 보였다.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은 TK지역 출신 여야 정치인과 시민단체도 들고 일어나면서 TK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대구 수성갑에 새누리당 후보로 나섰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10월22일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대통령께서는 독일로 출국한 최순실을 조속히 입국시켜 국민들께 진실을 밝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대구 수성갑) 역시 “대구를 지역구로 둔 저 역시 착잡하다. 대구 시민들이 저에게 전화해 안타까운 심정을 말씀하신다”며 “내각 총사퇴와 청와대 전면 개편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대구 민심을 전했다. 김 의원은 정부와 청와대 전면개편 없이는 대통령의 정치적 뿌리인 대구·경북과 합리적 보수층까지 등을 돌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구에 뿌리를 둔 시민단체들도 나섰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와 대구경북진보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10월26일 대구 2.28기념공원에서 “진짜 대통령은 최순실인가”라고 공격했다.

기자회견장에는 80여명의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모였고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도 관심있게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평소 같으면 ‘돌멩이’와 ‘욕설’이 날아올 집회와 구호지만 이날만은 분위기가 엄숙했다는 게 참석자의 전언이다. 또한 경북대 교수와 총학생회 역시 시국선언에 나서기로 한 만큼 대구경북 민심은 더 요동칠 전망이다.

이에 대해 대구 북갑의 정태옥 새누리당 의원은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전만해도 ‘대통령이 불쌍하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이젠 다들 망연자실한 분위기”라고 대구·경북의 민심을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구·경북에서 새누리당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최순실 파문으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대구 방문을 취소하고 당 행사도 줄줄이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이 대표는 당초 10월28일부터 30일까지 대구경북을 방문하기로 했지만 취소했다. 이 대표는 취임 후 처음으로 경주와 청송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이 대표의 방문 취소로 대구시당은 당원 단합 체육대회를 무기한 연기했고 경북도당 역시 10월29일 개최할 도당 주요 당직자 임명식을 잠정연기하고 당원 교육도 취소했다.

한편 박 대통령 이후 허탈감에 빠진 대구경북 민심을 달래줄 큰 인물도 없다는 점도 대구·경북의 아픈 현실이다. 현재 새누리당 대구·경북 출신으로 대선 주자급으로 분류하자면 김관용 경북지사, 최경환·유승민 의원 정도다.

최경환 의원은 친박 핵심으로 분류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차기 대권주자로 가는 길에 발목이 잡힐 공산이 높다. 개헌을 통해 분권형 대통령제로 권력 구조가 바뀌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새누리당으로 출마하는 것을 전제로 ‘반기문 대통령-최경환 핵심총리’ 시나리오는 가능할 수 있다. 충청-TK조합이지만 현재 박 대통령 지지율과 당 지지율에 비춰볼 때 실현가능성은 낮다. 김관용 경북 지사 역시 마찬가지다.

50대 기수론으로 유승민 의원이 그나마 ‘키워볼 만한 인물’로 꼽힐 수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대구·경북 민심은 착잡하다. 이미 지난 국회법 파동으로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워 ‘배신의 정치인’으로 지목돼 탈당한 바 있다.

지난 총선에선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돼 복당했지만 박 대통령과 화해는 물 건너간 상황이다. 대구·경북 민심이 아무리 박 대통령에게 실망해도 현직 대통령이고, 유 의원이 박 대통령을 밟고 큰 꿈을 펼치는 것에 동의할 정도로 악화된 것은 아니라는 게 지역 정가의 분위기다.

특히 유 의원이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이 터지자 박근혜 정부에 재차 날선 공격을 하고 있는 모습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고 있다.

대통령 ‘배신의 정치’ 유승민 ‘어떡하나’

현재 반기문 총장이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차기 대선에서 ‘충청-TK 연대론’도 수정해야 한다. 지금 상황이면 내년 대선에서 TK지역민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얘기다. 현 정권을 탄생하는 데 큰 기여를 한 대구 경북 지역민이다. 그만큼 박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오명속에서도 꿋꿋하게 지지해왔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자부심이 무너졌다. 내년 대선에 내놓을 마땅한 인물도 없다. TK 지역민들을 달래줄 큰 어른도 안 보인다. 대구 경북이 충격과 분노의 늪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올지도 사뭇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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