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값에 땅 팔겠다면 의심부터…”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바람·돌·여자가 많다고 소문난 제주에 최근 사기꾼들이 들끓고 있다. 제주지역 땅이 인기를 끌면서 구매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제주도의 11월 말 기준 토지거래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6만8221필지(9359만9000㎡)가 거래된 것으로 조사됐다. 하루 평균 206필지(283만6000㎡)의 땅이 사고 팔렸다. 지역별로는 면적 기준 제주시는 애월읍, 서귀포시는 제2공항 예정 부지인 성산읍 토지가 가장 많이 거래됐다. 토지거래가 잦다 보니 황당한 사기 사건도 많다. 제주에서 벌어졌단 땅 사기 사건을 찾아보자. 

70대 총책 황 씨 ‘동종전과 3범’ ‘2008년 출소’
경찰 발각 대비 범죄 수익금은 현금으로 배분

지난 22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황기태(74·가명)씨, 이태걸(50·가명)씨, 김태민(72·가명)씨를 구속했다. 공범 정무성(51·가명)씨는 도주했다. 혐의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제주도 제주시 연동에 있는 1만3220㎡(약 4000평) 규모의 임야 소유주 김종찬(가명)씨로 이름을 개명한 후 자신의 것인 양 속여 매매하는 수법으로 땅을 팔았다. 

땅 주인 이름으로 개명
주민등록증·초본도 위조

총책 황 씨는 제주시 연동의 임야가 부동산 등기부등본상 주민등록번호 없이 김종찬 씨 이름만 등재돼 있는 사실을 알고는 이 씨와 범행 계획을 짰다. 부동산 거래를 해본 적이 없는 일반인들은 이같은 사실을 잘 알지 못해 쉽게 사기에 걸려들었다.

이 씨는 지인인 김태민 씨를 꼬드겨 김종찬으로 이름을 개명하게 한 뒤 공시지가인 40억 원보다 싼 값에 땅을 팔겠다며 피해자들을 구슬려 계약금을 받아냈다. 이 씨 등은 피해자들을 안심시키려고 주민등록 초본과 김종찬 씨 이름으로 개설된 계좌까지 보여줬다.

땅을 매매하러 온 사람들은 이름이 같으므로 안심하고 이들과 계약을 맺었다. 이렇게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29일까지 사기당한 사람은 총 7명이다. 이 사기단은 이들로부터 총 12억4000만 원을 가로챘다.

이들의 사기 행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완전한 범죄를 위해서 주민등록증과 초본도 위조했다. 사기단은 김 씨가 개명 후 발급받은 주민등록증 사진을 바꿔치기 하는 수법으로 정 씨가 주민등록 초본과 계좌를 위조했다. 

사기단은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범행 시 대포폰을 사용했다. 한마디로 작정하고 친 사기행각이었다. 

범죄 수익금에 대한
질문에는 ‘모르쇠’

총책 황 씨는 70대 고령이었지만 토지거래와 관련된 지식이 뛰어났다. 1984년 7월 이전에는 부동산 등기를 신청할 때 주민등록번호 입력이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일부 등기부등본에는 이름과 주소만 기재돼 있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경찰은 수사 중 황 씨가 동종 전과만 3범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가장 최근 전과는 2008년이었다. 당시 황씨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복역한 뒤 만기 출소했다. 

경찰에 따르면 황 씨와 김 씨는 안면도 없는 사이라고 한다. 유일하게 이 씨만이 황 씨와 김 씨를 알고 있었다. 이들은 범죄 수익금 등 내용에 대해서는 일절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얼마씩 나눠 갖기로 했는지 범죄 수익금을 어디에 뒀는지조차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범죄 수익금의 경우 계좌를 통하지 않고 현금으로 나눠 가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직까지 이들의 계좌에서는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에는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이영태(48·가명)씨가 “제주 동부지역에 알짜배기 토지가 있다. 억 원을 투자하면 두 달 안에 1억 원을 벌 수 있다”며 정유진(48·가명)씨에게 권유해 5억 원을 송금받아 횡령한 사건이 발생했다.

공인중개인 통할 것
송금 시 계좌명 꼭 확인

이 씨는 정 씨가 송금한 돈 5억 원으로 땅을 사려 했으나 매매가 잘 이뤄지지 않아 결국 토지를 구매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 씨는 이 돈으로 서울에 있는 상가를 매입해 버렸다. 명의는 이 씨 이름이었다.

정씨는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 다행히 경찰은 횡령 등의 혐의로 이 씨를 붙잡아 구속했다.  

지난해 8월에는 홍순실(60·가명)씨가 “친한 부자 재일교포가 땅을 팔려고 하는데 싸게 살 수 있다”며 4명을 속여 계약금 등 3억 3000만 원을 가로챈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수사결과 홍 씨는 부동산 중개 자격증도 없던 상태였다. 홍 씨는 2010년 1월부터 2012년 2월까지 2년여에 걸쳐 총 4명에게 사기를 쳤다. 홍씨는 위임장 등을 허위로 작성해 다른 사람 소유 건물에 근저당을 설정, 경매로 넘긴 혐의도 받고 있다.

홍 씨는 피해자들의 독촉이 심해지자 경남으로 도주한 후 수년간 공사장에서 일하며 떠돌이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홍 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채를 써 제주에 있는 토지에 투자해 중개 수수료를 받아 사채를 갚을 목적이었다”고 진술했다.

제주도가 관광지·거주지로 각광 받으면서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이주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젊은이들도 제주에서 취업 등을 하며 제주에 정착을 준비하는 게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기도 했다. 

하지만 날로 교묘해지는 부동산 중개 사기수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가급적 공인중개인을 통해 토지를 매매하거나 집을 구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또 “거래 시 중개인 등이 다른 사람 명의의 계좌로 송금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철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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