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家 3세 간판은 누구 굳히기냐, 시기상조냐

샘표·오뚜기 일찌감치 경영 참여 “선대의 정신과 원칙 이어받아”
SPC·대상 ‘1인자는 불확실’ 두 자녀 경쟁 시키며 평가 중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기업 승계로 들썩이는 곳이 있다. 바로 식품업계다. 창업 1,2세들의 타계로 본격적인 승계 작업을 마친 기업에서부터 차분히 후계자들을 경영 일선에 배치시키는 그룹까지 등장하고 있다.

박진선 샘표 식품 대표. <뉴시스>

일각에선 경영능력이 미비한 젊은 오너 등장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이기도 한다. 반면 젊은 피의 활약을 기대하는 곳도 있다. 일요서울이 승계로 바쁜 식품 공룡기업들의 면모를 들여다봤다.

지난 9월 국내 간장업계를 이끌어온 큰 별이 졌다. 고 박승복 샘표 명예회장이다. 그는 향년 94세, 노환으로 별세했다. 동시에 장남인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이사의 승계 작업도 마무리됐다.

박 명예회장은 고 박규회 샘표식품 창업주의 장남으로 55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그룹 경영을 이어받았다. 그럼에도 공무원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과 직원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샘표를 현 위치까지 올려놓은 인물로 평가된다.

박 대표도 아버지와 비슷한 절차를 밟았다. 그는 서울대학교를 나와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철학 강사로 활동했다. 1990년 40살이 되는 해에 아버지의 제의를 받아 샘표에 처음 입사하게 됐고 현재까지 차근히 승계 과정을 밟아왔다.

지난 7월 샘표식품은 지주회사 샘표와 자회사 샘표식품으로 지주사 전환함으로 후계 승계에 가속도를 낸 듯 보였다. 지주사 샘표의 대표는 박 명예회장이, 박 대표는 샘표식품의 이사로 임명됐다. 박 명예회장 타계 후 박 대표는 지난 10월 한 달간 공석이던 지주사 샘표의 임시대표 자리도 수락함으로 완전한 샘표의 주인이 됐다.

재계 일각에서는 무리한 경영권 강화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박 대표 단독대표 체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취임 당시 박 명예회장의 정신인 ‘구성원의 행복’과 ‘지역사회의 기여’를 이어받아 경영에 집중할 의사를 드러냈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 <뉴시스>

장남승계 구도 차근차근 밟아

지난 9월에 진 식품업계의 또 다른 큰 별은 고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이다. 함 명예회장은 오뚜기의 카레, 케첩, 마요네즈, 식초, 참기름, 수프, 당면 품목에서 가장 많은 1등 제품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오뚜기의 상품들은 창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높은 판매를 유지하는 제품들로 이런 함 명예회장의 안목은 업계에서 시대적 현안으로 평가 받아 왔다. 또 시식 코너의 직원들까지 정규직으로 뽑는 함 명예회장의 직원 사랑은 오뚜기를 착한 기업으로 인식시키는 데 기여했다.

오뚜기의 형식적 기업 승계는 함 명예회장의 타계 전 지난 2010년부터 이미 진행됐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은 함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2010년부터 정식으로 활동했다.

함 회장은 지난해 전체 비정규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아버지의 착한기업가 정신을 이었다. 경영 능력도 인정받았다. 그가 취임 당시 하락세를 보이던 오뚜기 매출을 취임 후 불과 1년 만에 성장세로 돌려세우고 영업이익 1000억 원 고지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함 명예회장의 타계 후 지난 10월부터 함 회장은 아버지 주식자산의 40% 가까이 물려받아 오뚜기의 본격적인 2세 경영 서막을 열었다.

허희수 SPC그룹 부사장. <뉴시스>

형제, 자매 나란히 승진 경쟁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차남 허희수 SPC그룹 전무도 지난 10월 31일 미국 수제버거 브랜드인 쉑쉑버거의 국내 론칭 실적을 인정받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재계에 따르면 이번 쉑쉑버거 사업은 허희수 부사장이 직접 5년간 미국 쉑쉑버거 본사를 찾아가 설득한 끝에 맺은 결실이다. 허희수 부사장의 이번 쉑쉑버거 도입 실적은 그룹 내 호평이 자자하다는 후문이다.

업계는 차남 허희수 부사장의 이번 성과가 장남인 허진수 SPC그룹 부사장의 후계 구도에 판을 흔들었다고 평가했다. 허 회장 역시 차남에서 현재까지 SPC그룹을 지켜왔기 때문에 장남 승계 원칙을 고수하진 않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허 회장은 아버지 고 허창성 삼립식품 창업주로부터 형 허영선 씨의 삼립식품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샤니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삼립식품은 1998년 부도가 났고 허영선 씨는 경영에서 물러났다. 그 후 샤니로 승승장구한 허 회장은 2002년 삼립식품을 되찾는 반전을 이뤄냈다.

현재까지는 허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허진수 부사장은 제과제빵 R&D 분야에서, 허희수 부사장은 마케팅과 외식분야에서 각각 경영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파리바게트 관계자는 “3세 경영이 시작됐다는 말은 아직 이르다. 허희수 부사장의 승진이 그룹 내에서 형제 간 경쟁 심화를 가져왔다 평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상그룹 역시 지난달 17일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두 딸인 임세령, 임상민 상무를 나란히 전무로 승진시켰다. 재계에서는 동생인 임상민 전무가 비중 있는 업무를 수행해왔고 승진 속도도 임세령 전무에 비해 빨라 경영능력을 더 인정받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는다. 지분 상으로도 지주사인 대상홀딩스의 지분 비율이 임상민 전무가 36.71%로 언니인 임세령 전무(20.41%)보다 높아 임상민 전무의 승계가 거론되고 있다.

임세령 식품BU(Business Unit) 마케팅담당전무는 2009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혼한 뒤 경영에 복귀해 장녀 승계설이 불거졌다. 사위경영에 대한 부담이 적은 임세령 전무가 훗날 후계의 정점에 올라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론칭한 외식업 브랜드 동남아시아 음식점 ‘터치 오브 스파이스’가 잇따른 폐점을 하는 등 아직 뚜렷한 경영 실적을 내놓진 못하고 있다.

임상민 식품BU·소재BU 전략담당전무는 입사 때부터 경영혁신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2010년 전략기획팀에서 실무를 담당해 그룹 중추 업무에서 잔뼈가 굵어 유력한 후계자로 점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임상민 전무가 지난해 미국 뉴욕의 사모펀드에 다니고 있는 국유진 씨와 결혼하면서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며 대상의 승계 구도는 또 다시 미지수가 됐다.

대상그룹 측은 후계구도와 관련해 아직 확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대상그룹 관계자는 “당분간 임 명예회장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계는 이번 식품업계 후계구도와 관련해 다양한 반응을 내놓는다. 기업 바통을 잇는 후계자들의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과 반대로 창업주 정신을 이어 더 나아갈 희망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켜보자는 입장이 우세함을 강조했다.

식품기업에 능통한 한 관계자는 “젊은 오너의 등장으로 활력을 얻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이른 후계구도 확정으로 회사의 근간이 위태로운 곳도 있다”며 “창업주 정신을 바탕으로 도태되는 기업이 없길 바라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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