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불법 행위에 ‘최순실-삼성’ 연결고리 의혹까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화상경마도박장 입구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 둘러싼 갈등…주민들 4년째 농성

‘카드깡’ 통해 비자금 조성…시민단체, “조폭 수준” 일갈

최순실 딸 정유라에 특혜 지원 의혹…檢, ‘정유라 플랜’ 문건 확보

비난 여론 한층 거세질 듯…마사회, “사실 아니다” 여론몰이 일축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바람 잘 날이 없다. 한국마사회 얘기다. 국가공인 도박사업자인 마사회가 운영하는 화상도박경마장에 각종 불법 행위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비자금을 조성해 용산 화상도박경마장에 대한 찬성 여론을 조작하는 등 불법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이와 관련해 화상도박경마장이 위치한 서울 용산구의 주민들은 화상경마장이 주변 교육환경을 해치고, 운영 상 비위 행위가 드러났다며 4년째 천막투쟁을 벌이고 있다. 또 최근에는 ‘최순실 게이트’에 마사회가 연루돼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시민단체 등은 ‘비리종합세트’ 격인 마사회가 하루속히 화상경마장 문을 닫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막농성을 하는 용산 주민들은 벌써 세 번째 겨울을 맞았다. 학부모, 인근 학교 교사, 지역 주민들은 2일 현재 1046일째 농성을 하고 있다. 반대운동에 돌입한 지는 1311일이 됐다. 정방 ‘용산 화상도박경마장 추방대책위’ 공동대표는 “겨울은 너무 추워서 안에 있는 물이 더 얼고, 여름에는 모기도 많고 더워서 비닐하우스에 있는 느낌”이라며 노숙 농성의 고충을 토로했다. 주민들은 평일에는 대기하다 화상경마장이 문을 여는 주말이면 영업시간에 맞춰 시위를 벌인다. 학부모 김모씨는 “딸이 초등학생일 때부터 반대 모임에 참여했고 지금은 중학생”이라며 “내 아이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교육을 위해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용산 화상도박경마장은 지난해 5월 개장했다. 현재 지하 7층, 지상 18층 총 25층 가운데 5개 층만 경마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화상경마장(마권장외발매소)에서는 자동발매기에 자신이 지목한 말을 표시한 구매권을 집어넣어 마권을 구입한 뒤 서울과 부산, 제주 경마장 등에서 실시간 중계 화면을 보며 ‘돈 놓고 돈 먹는’ 게임을 한다.

특히 이 경마장이 사회적 갈등을 빚고 있는 이유는 사행시설이 다른 곳도 아닌 주택과 학교 밀집지역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반경 500m 이내에 6개의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가 있고, 불과 200여m 떨어진 곳에 성심여중·고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학교시설 반경 200m 이내는 학교정화 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유해시설이 들어설 수 없다.

마사회는 200m 이상 떨어져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사행시설의 광범위한 폐해를 감안하면 이 지역의 도박경마장 운영은 학생들의 교육환경과 주거환경을 짓밟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용산구 유치원 원장, 초·중·고 학교장으로 구성된 교장단은 “최근 청소년들은 물론 어린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 확대가 청소년들의 도박중독과 그로 인한 사회적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마사회가 교실에서 마주보이는 곳에 화상경마도박장을 세우고 운영하는 것은 과연 마사회가 국민의 공익을 위한 공기업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마사회, 국가 공인한 “건전 놀이문화”

화상경마 경기는 국가가 공인한 게임이며 건전한 여가 생활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마사회의 주장이다. 하지만 학교와 주거 밀집 지역에 들어선 데다 초기 추진과정에서 마사회가 논의와 설득 과정 없이 막무가내 식으로 밀어붙여 논란이 일었다.

대책위는 “도입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도 않았으며, 주민 몰래 공사를 진행했다”며 “지역주민뿐 아니라 교육청, 용산구청, 구의회, 서울 시장도 도박장 개장을 반대하는데 마사회는 개장을 강행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주민들과의 협의를 거쳐 개장하라는 국무총리 산하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도 무시했음은 물론 상급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에 학교 앞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인허가 과정을 진행해 2014년 경마장을 기습 개장, 지난해에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학생들과 학교 관계자들도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인근 여중을 다니는 최모(16)양은 “주말에 한번씩 용산역 근처 영화관에 갈 때 마사회를 지나가는데 주위에 있는 아저씨들을 보면 좀 무서워서 얼른 지나간다”며 “화상도박장은 유해시설로 아는데 학교 근처에 있는 것이 이해가 잘 안 간다”고 말했다.

성심여고 교장 김율옥 수녀는 한 언론에서 “1989년 처음 수녀회에 들어오고 나서 용산에 화상경마장이 작게 있는 걸 봤는데 그 때 도박으로 인해 영혼이 피폐해진 사람들이 학교 주변을 돌아다녀 불안했다”며 “이 동네에서 오래 살던 주민들은 그 당시의 학습효과가 있는데 이번 화상경마장은 그때보다 더 큰 규모이고 요즘은 여고생들이 공부하느라 밤에 하교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막아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화상경마장 폐쇄를 요구하며 시위하는 모습 <사진=대책위 페이스북>

불법 행위 적발…‘점입가경’

이에 대해 마사회 관계자는 “마사회는 경마뿐 아니라 말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콘텐츠를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가족공간이라는 커다란 프레임 안에 용산을 포함했다”며 “반대하는 주민들은 또 학생들이 학교로 등·하교할 때 이곳을 지나간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도로가 가로 막고 있어서 이곳 앞을 지나가는 학생들은 없다”고 밝혔다.

올 4월 드러난 마사회 각종 불법 행위는 논란에 불을 지폈다. 감사원이 용산 화상경마도박장에 대한 마사회의 운영 감사 결과를 보면 입장료 불법 인상 등 주의 8건·통보 3건, 총 12건의 위법·부당사항이 드러났다. 마사회는 법제처로부터 입장료 5천 원 이상 받을 수 없다는 법령해석을 받고서도 최대 4만 원까지 받아왔음이 적발됐다. 농림부 역시 감사원으로부터 마사회에 대한 지도·감독을 철저히 하라는 주의를 받았다.

또 마사회가 ‘카드깡’(카드로 돈을 결제한 후 현금으로 돌려받는 행위)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사실이 지난 9월 밝혀지기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마사회는 비자금을 조성해 경마도박장 입점 강행을 위한 찬성 집회를 열어 주민들에게 일당 10만 원을 줬다. 찬성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주민을 동원하고, 이들 명의로 찬성 현수막을 게시함으로써 조직적으로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 한 것이다.

게다가 찬성 집회 주도자의 외상 식비를 지원하고, 찬성 집회 동원한 주민이 폭행죄로 벌금형을 받자 벌금 100만 원을 대납까지 했다. 당시 박기성 본부장 등 마사회 관계자 4명은 지난 9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시민사회단체인 참여연대는 “경찰 수사 결과 밝혀진 것만 이 정도”라며 “이런 마사회를 더 이상 공기업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분통이 터진다. 조폭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같은 마사회의 불법 행태에 대해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지적이 잇따랐다. 마사회가 카드깡을 통한 비자금 조성 등 불법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어 현명관 마사회장이 약속한 경마장 폐쇄를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회장은 2014년 개장 당시 직접 출연한 홍보영상에서 “용산구 주민이 우려하는 피해가 발생할 경우, 용산화상경마장을 폐쇄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감에서 “전업주부와 학교 교사, 수녀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반대운동을 지속하는 이유는 마사회가 언젠가는 폐쇄 약속을 지킬 거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 회장은 “학습권이 침해되고 학생들 교육에 지장이 있으면 폐쇄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주민들이 화상경마장 폐쇄를 요구하며 시위하는 모습 <사진=대책위 페이스북>

마사회-최순실 연루 의혹까지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들썩이는 가운데 마사회가 최순실(60·구속기소)씨와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마사회가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의 2020년 도쿄올림픽 지원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만들었다고 알려졌다. 승마협회 사장사를 삼성으로 교체하고 608억 원의 예산을 들여 정 씨를 박세리, 김연아 선수 수준의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준근 전 한국마사회 승마교육원장은 2013년 상주 승마대회에서 정 씨를 2등으로 평가했다고 3년간 심판에서 제외됐다고 폭로했고, 정 씨의 독일 승마 현지훈련 지원을 위해 마사회 승마팀 감독이 파견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현명관 마사회 회장은 삼성그룹 비서실장 출신이고, 현 회장 부인 전영해 씨는 최순실 측근으로 알려져 이 인연으로 마사회장에 임명됐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정 씨에 대한 마사회의 특혜 지원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지난달 초 마사회, 승마진흥원을 압수수색했다. 이에 대해 마사회는 “‘정유라 특혜’는 없었다”며 잇따른 의혹을 일체 부인했다. 현 회장은 “최 씨 전화번호도 모르고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면서 삼성과 최 씨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미르재단, 최 씨 등의 존재와 내용을 TV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 관련 의혹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채널A는 지난 1일 현 회장이 직접 자필 서명한 ‘정유라 금메달 프로젝트’ 문건을 검찰이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6월 작성된 로드맵 문건에는 1560억 원의 예산 투입 계획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승마협회가 마사회의 로드맵을 검토하는 동안 삼성그룹이 정 씨의 주 종목인 마장마술에 186억 원을 후원하기로 했고, 또 현금 35억 원을 최순실 모녀의 독일 회사에 송금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 마사회는 “여론몰이”라면서 “공식적으로 ‘중장기 로드맵’을 작성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누차 강조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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