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대표적인 브레인으로 알려진 ‘386측근’들이 무너지고 있다. 노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386실세’인 안희정·이광재씨가 ‘대선자금’과 관련해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이로써 ‘노무현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고, 당선 이후 청와대 등 권력핵심의 주류를 이루며 막강 파워를 발휘했던 ‘386핵심 참모’들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노 캠프의 대선 승리 1년’, 영광과 좌절을 함께 맛보고 있는 ‘386참모’들의 명암을 들여다봤다.노 대통령의 브레인으로는 인권변호사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이후 만난 운동권 출신 ‘386’들이 꼽히고 있다. 특히 청와대 비서진의 경우, 운동권 출신의 386보좌진들이 핵심참모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노무현 대통령의 386참모진들은 청와대 등 권력핵심의 주류를 이루며,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것이 사실. 이 때문에 최근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혼란에 빠지면서, 그 비난의 화살은 386참모들에게 향하고 있기도 하다.386참모의 핵심은 안희정 전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과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이들은‘좌(左)희정, 우(右)광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다. 하지만 안희정·이광재씨가 최근 ‘불법대선자금’에 연루돼 검찰조사를 받음으로써, 386참모들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386참모들이 젊음과 깨끗한 정치를 앞세워 내년 총선에 출마하려던 계획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우선, 안씨의 경우 지난 14일 11억 4,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수감됨으로서 총선 출마의 꿈을 접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한 안씨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의 리더로서, 군부독재정권에 맞섰다. 지난 86년에는 이른바‘건국대 사태’의 배후인물로 지목돼 구속되기도 했다. 노 대통령과는 꼬마민주당 시절인 90년 이철 전의원의 비서로 일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어 93년 노 대통령이 설립한 지방자치연구소의 사무국장을 맡았고, 이후 사실상의 노 대통령의 핵심보좌관으로 일해왔다. 또 지난 99년에는 노 대통령과 함께 ‘오아시스 샘물(장수천)’을 인수, 사장을 맡기도 했다.지난 대선 과정에서 안씨는 노 대통령이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 ‘총무’를 맡았고, 민주당 선대위에서는 정무팀장으로 뛰면서 선거활동 프로그램과 정무보좌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이 때문에

안씨는 지난해 대선때 노 후보의 캠프에서 대선자금 ‘창구’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선 당시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총무본부장이었던 이상수 의원이 공식적인 대선자금의 모금 창구였다면 안씨는 비공식적인 창구 역할을 맡아 대선자금 모금에 관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실제로 안씨는 검찰조사결과 이 전실장으로부터 받은 썬앤문 자금 1억원 외에 공여자를 밝히지 않은 5억9,000만원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으로부터 4억5,000만원을 받는 등 모두 11억4,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안씨는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수사와 관련해서도 불법자금 3억9,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두 차례 영장 기각 끝에 지난 6월 불구속기소됐다.이런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안씨는 총선 출마를 통해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현재 열린우리당 충남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아 충남 논산·금산에서 자민련 이인제 의원과 일전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하지만 이번 ‘불법 대선자금’수수 혐의로 구속됨으로써 정계입문의 꿈을 접어야 하는 것은 물론 사법처리되는 비운을 맞고 있다.안씨와 함께 노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던 이광재 전실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전실장이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87년. 당시 대학 재학중이던 이 전실장은 경찰의 수배를 피해 부산으로 내려갔다 처음 노 대통령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지난 88년 노 대통령이 여의도에 입성하자 이 전실장은 비서관으로 활동했다. 노 대통령의 최초의 국회의원 보좌관인 셈이다.이후 노 대통령이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 기획실장을 지내기도 했다. 지난 95년에는 조순 서울시장 선거대책위에서 기획팀장을 맡아 일했고, 지난 96년에는 신한국당 대권후보 경선 당시에는 김덕룡 의원 캠프에서 일하는 등 잠시 노 대통령을 떠나 있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98년 노 대통령이 종로 보궐선거에 출마하자 다시 노무현 캠프에 합류했다.지난 대선에서 안씨가 ‘자금’을 맡았다면, 이 전실장은 ‘기획’분야를 총괄했다. 이는 이 전실장이 오랫동안 고락을 함께 했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었고, 뛰어난 기획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선거기간 중 ‘노무현의 눈물’, ‘기타치는 대통령’ 등 기발한 TV광고의 기획도 그의 작품이다. 이와 같이 대선때 공로가 인정되면서, 그는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 전실장이 정권의 실세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인수위 당시부터 이 전실장은 당선자 비서실 기획팀장을 맡으며, 참여정부의 틀을 짜는데 실질적으로 주도했다.청와대 비서진은 물론 새정부의 장관 조각에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인사에서 막강한 파워를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정권초기부터 ‘노무현 사단’내부의 견제는 물론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급기야 지난 10월 열린우리당의 천정배·신기남 의원 등이 이 전실장을 겨냥해,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천 의원은 당시 “청와대 보좌진 등에 국정경험이 부족하고 책임감이 결여된 사람들이 핵심 요직에 있다”며 이 전실장을 정면으로 거론했다. 이로 인해 이 전실장은 지난 10월 중순 “저에게 이 자리(국정상황실장)는 권력이 아니라 의무이고 사명감이었다. 열심히 그리고 바르게 해보려고 노력했다”며 “대통령에 누가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깨끗이 물러나는 길을 선택하겠다”고 밝히며 전격 사표를 제출했다.노 대통령의 오른팔로 권력의 핵심에 들어간 지 8개월여만에 퇴장하는 비운을 맛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번 검찰의 ‘대선자금’수사로 또 한번의 곤욕을 치르고 있다.이씨는 문병욱 썬앤문 회장으로부터 불법대선자금 1억원을 받아 안희정씨에게 전달했다는 혐의를 받으며, 그 수난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씨는 고향인 강원 영월·평창이나 강릉에서 17대 총선에 도전, 명예회복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출마 여부가 다소 불투명해졌다. 한편, 안씨와 이씨 외에도 이호철 민정비서관과 윤태영 대변인, 천호선 정무기획비서관, 서갑원 정무비서관 등 386참모들이 아직 청와대에 남아 있다.이호철 민정비서관은 지난 81년 발생한 ‘부림사건’으로 수감된 후 이듬해 옥중에서 당시 변호사였던 노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노 대통령은 법정에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이 비서관의 기백에 놀랐고, 이런 과정을 통해 노 대통령은 민주투사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이 비서관은 선거때마다 노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며 그를 도왔고, 이를 계기로 청와대에 입성했다.윤태영 대변인은 청와대 내부에서도 노 대통령의 마음을 읽고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호선 정무기획비서관은 대선과정에서 ‘인터넷 선거’를 주도, 노 대통령을 당선시킨 숨은 공로자 중 하나다. 네티즌을 대상으로 대선전을 치러, 이회창 진영에 완승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서갑원 정무비서관은 지난 92년 노 대통령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10여년간 노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좌하고 있다. 특히 서 비서관은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맹활약, ‘노풍’점화에 핵심 역할을 했다. 이와 같이 386참모들은 참여정부 탄생에 크게 기여했지만, 국정이 흔들릴 때마다 국정을 ‘전횡’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들 386참모들이 어떤 방식으로 무너진 도덕성을 회복하고, 정치적인 길을 모색해 나갈지 자못 궁금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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