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드라마 <쾌도 홍길동>의 성유리


성유리가 안방극장으로 돌아왔다. <눈의 여왕> 이후 꼭 1년만이다. 지난 2일 첫 전파를 탄 K-2TV 수목드라마 <쾌도 홍길동>에서 사내아이 같은 ‘허이녹’ 역을 맡아 기존의 요정 이미지를 벗고 망가지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가수에서 연기자로 진로를 바꾼 지 6년. “욕먹고 돌아가더라도 어려운 캐릭터를 먼저 소화해 실력을 쌓겠다”는 성유리는 생각보다 야무진 배우로 성장 중이다.

잘 알려진 대로 성유리는 가수출신 연기자다. 인기여성그룹 ‘핑클’멤버로 활동하다 2002년 S-TV <나쁜 여자들>, M-TV <막상막하>에 출연하며 탤런트로 변신했다. 이후 예쁜 외모와 인기에 힘입어 <천년지애>, <황태자의 첫사랑>, <어느 멋진 날>, <눈의 여왕> 등의 여주인공을 맡았다.

경력은 화려했지만 대다수 가수출신 배우들처럼 연기력 논란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계속되는 연기지적에 의기소침하지 않을까 싶지만 의외로 그는 담담하다. “작품을 할 때마다 꼬리표처럼 연기력 논란이 따라다닐 것 같아” 마음을 비웠단다.

그렇다고 연기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실제 성격과 다른 캐릭터만 맡은 탓에 ‘닮은 역을 하면 더 빨리 칭찬 들을 텐데’ 싶다가도 아직은 배우고 도전해야 할 시기란 생각에 색다른 역할에 눈을 돌린다는 그녀다.

“지금 여러 캐릭터에 적응해두면 나중엔 어떤 역할이 주어져도 잘할 것 같아요. 그래서 멀리 돌아가고 욕을 먹더라도 자신 없고 어려운 역할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공보다 캐릭터에 충실한 게 우선인거죠. 정말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인정받을 거라고 믿어요.”

자신을 닮은 ‘말 없고 소심한 여대생’ 역보단 즐겁게 연기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캐릭터에 끌린다는 성유리는 퓨전사극 <쾌도 홍길동>의 ‘허이녹’에게 매력을 느꼈다.

극중 이녹은 병조판서의 외동딸이지만 신분을 모른 채 떠돌이생활을 하다 의적 홍길동(강지환), 대군이었던 이창휘(장근석)와 인연을 맺는다. 편하다는 이유로 남자 옷만 입고 먹을 것에 희로애락을 느끼는 단순함과 아이처럼 해맑은 성격을 지녔다.

대중은 ‘요정’ 성유리와 ‘왈가닥’ 이녹을 쉽게 연결 짓지 못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 눈치다. 코믹하고 톡톡 튀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재미에 푹 빠진 탓이다. “아기 강시와 처녀귀신으로 분장한 내 모습이 신기하고 실제 성격과 달리 말을 직선적으로 할 수 있어 속 시원하다”며 맑게 웃는 성유리.

그러고 보니 이녹 의상을 입고 칼 휘두르는 모습이 꽤나 잘 어울린다.

코믹함이 지나쳐 소위 말하는 ‘망가지는 모습’까지 보여주는데도 신경 쓰지 않는다.

“주변 분들이 망가짐에 대한 걱정을 하는데 핑클 때도 쇼프로그램에서 굉장히 많이 망가져서 거기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어설프게 망가져서 재미도 못 주고 ‘굴욕’이 될까봐 걱정이죠.(웃음) 그냥 캐릭터에 충실한 걸로 봐주셨으면 해요.”

운동을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그는 이녹 역을 위해 액션연기에까지 도전했다.

촬영 전 한달 반 동안 액션스쿨에 다니며 하루 평균 5시간, 주말엔 8시간 이상 체력훈련과 무술수업을 받았다. 땀이 식으면 몸에 소금기가 보일 정도로 힘든 훈련에 ‘내가 작품을 잘못 택한 것 아닌가’라는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촬영 때마다 액션신이 기다려졌고 웬만한 남자배우들도 힘들다는 와이어액션까지 멋지게 소화해냈다.

“너무 즐겁게 촬영한 탓에 무술감독님이 어려운 액션을 자꾸 시킨다”, “와이어 촬영 때 속옷이 꽉 조여 브래지어 버클에 살이 찢어졌다” 등 귀여운 투정을 부리지만 성유리 얼굴에선 힘든 과정을 이겨낸 이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눈의 여왕> 이후 출연하려던 몇몇 작품이 무산된 뒤 만난 드라마라 <쾌도 홍길동>에 유난히 애착이 크다는 성유리는 연기호흡을 맞추는 강지환과 장근석에 대한 애정도 잊지 않았다.

생각보다 낯을 많이 가리지만 말보다 행동으로 챙겨주는 든든한 오빠 강지환과 틈만 나면 장난을 치는 귀여운 남동생 장근석이 큰 힘이 돼준단다.

여러 편의 드라마와 어려운 캐릭터를 거치며 내공을 쌓은 탓일까.

성유리는 같은 퓨전사극이지만 <천년지애>와 <쾌도 홍길동> 촬영에 임하는 자세는 180도 다르다고 잘라 말한다.

“<천년지애> 땐 시험 공부하듯 머리를 이용해서 배운 대로만 연기하려 했는데 이번엔 대사나 말투가 이상해도 신경 쓰지 않고 감정이 가는대로 해요. <천년지애> 때랑 비교하면 180도 변한 것 같아요.”

그는 “이제야 연기가 일이 아닌 즐거움이 됐다”는 고백과 함께 “드라마 속에서 ‘성유리가 아닌 이녹이 보인다’는 댓글이 달리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어떤 작품들보다 즐겁게, 열심히 촬영한 만큼 <쾌도 홍길동>의 흥행예감이 좋다는 성유리. 노력으로 갈고 닦은 그녀의 ‘예상보다’ 날카로운 연기가 시청자들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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