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제조하기 생각보다 쉽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훌쩍’, ‘에취’… 겨울에 접어들며 감기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인들은 미미한 감기증상으로도 약국이나 병원을 찾기 일쑤다. 2015년 한국존슨앤드존슨이 국내 20~50대 남녀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이 생활통증 보고서’에 따르면 감기증상이 있을 때 약을 복용한다는 응답자가 90%, 그 중 2가지 이상 약을 복용한다는 사람은 총 41.9%였다. 이는 다수의 사람들이 감기증상이 나타나면 약을 흔히 복용한다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병원에 방문하지 않고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종합감기약 대부분에 마약으로 쓰일 수 있는 성분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그런 가운데 일부 종합감기약에 들어있는 성분을 이용해 마약을 제조한 사건까지 벌어져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감기약 성분 이용해 마약 제조한 일당 검거

“보건당국, 불법 마약 판로 방관 중이다”

지난 11월 서울지방경찰청은 특수 장비를 설치한 마약공장에서 필로폰을 만들어 팔던 일당을 붙잡았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경기도 화성시에 차린 공장에서 지난 9월부터 지속적으로 필로폰 200g을 만든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유통한 것으로 밝혀졌다. 필로폰 200g은 한 번에 6천 명 이상이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불법시세 판매가는 6억 원 이상이다.

경찰은 이들이 덜미를 잡히지 않았다면 필로폰 2kg, 즉 최대 60만 명분까지 제조가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이 세운 공장은 축사 옆에 위치해 노출 위험률을 줄인 데다가 ‘악취제거기’와 ‘공기정화기’등의 특수 장비까지 설치해 필로폰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악취를 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필로폰을 제조하는 데 이용했던 것은 감기약이었다. 감기약 내 일부 성분을 추출해 마약을 만들었으며, 이용했던 감기약은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돼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비닐하우스에서 양귀비 등을 재배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이런 식으로 공장시설을 갖춰놓고 감기약을 이용해 마약 제조를 하다 걸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마약 대체재로

사용되는 감기약들

종합감기약 대부분에 함유된 ‘덱스트로메토르판’은 신종마약 ‘러미라’로 알려진 진해거담제와 동일 성분이며 아편 계열 알칼로이드다. 기침을 진정시키는 진해작용으로 30년 이상 종합감기약 등에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1회 일정량 이상 복용을 하면 환각효과가 나타나고 LSD(걍력한 환각 마약)와 유사해 마약 대체재로 악용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도 이 성분이 함유된 의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해 남용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덱스트로메토르판은 2003년 항정신성 의약품으로 지정됐으나 현재 유통되고 있는 덱스트로메토르판 함유 의약품 231개 중 3개를 제외하고는 처방전 없이도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단일제제나 1일 복용량 60mg을 초과하는 복합제제에 대해서만 항정신성 의약품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마약성분 든 감기약

구매·수량 제한 없어

덱스트로메토르판 단일제제·함유 약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약을 제조했던 일당이 주목했던 감기약의 성분은 ‘슈도에페드린’이다.

국내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종합 감기약에 덱스트로메토르판과 마찬가지로 슈도에페드린이 포함돼 있다. 슈도에페드린은 교감신경흥분제로 주로 코 막힘 완화제나 각성제로 사용된다.

이 성분이 든 감기약은 시중에 309개가 유통되고 있다. 120mg 이하 함유 제품은 일반의약품으로 유통되고 있다. 시중에 풀린 309개 가운데 일반의약품이 246개, 전문의약품이 63개로 밝혀졌다.

기자가 덱스트로메토르판, 슈도에페드린이 함유된 약들을 구매하기 위해 여러 약국을 방문한 결과 처방 없이 개당 2000~3000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동일한 약을 다량으로 구입을 했음에도 약사가 용도에 대한 질문조차 없었고, 현재 겪고 있는 질환에 대한 의문, 복용 방법에 대해서도 일절 설명이 없었다.

기자는 실제 아무 제재 없이 약들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범죄자들이 이를 악용해 여러 약국을 방문한다면 출처를 남기지 않고 마약을 제조할 수 있는 원료가 함유된 약품을 대량 구매 할 수도 있다.

법적 조치 시급

청소년도 구매 가능

종합감기약을 20년 이상 복용해온 장모(54·남)씨는 “코 막힘, 가래, 기침 등 미미한 감기증상에도 종합감기약을 구입해 복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장 씨에게 감기약에 마약 성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물었다. 이에 그는 “나만 해도 약국에서 종합감기약을 다량으로 구입해 복용하고 있는 입장으로서 약사들은 돈만 받을 뿐 복용방법에 대해서 공지가 거의 없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시력이 많이 안 좋아졌는데 약에 공지된 성분, 복용방법들은 너무나 작은 글씨로 돼 있어 약사가 말해주지 않으면 보지 않고 나만의 방법으로 복용하는 편”이라며 “안 그래도 약사들의 잘못된 행동(복용방법 미공지 등)과 사회적으로 종합감기약에 대한 제재가 거의 없어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악용해 마약을 제조한다면 엄청난 문제”라고 우려했다.

또 그는 “일부 마약성 성분 60mg 초과 제품들만 전문의약품으로 바꾼다? 이것은 소량으로 들어 있는 약품들을 다량으로 구매하면 전문의약품과 똑같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가. 단순히 마약 사건 발생에 노출됐던 약품들만 전문의약품으로 지정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청소년이 이를 접하고 악용하는 순간 보건당국은 불법 마약의 판로를 마련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문제 삼은 약들을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게 되면 약한 감기증상만 있어도 모두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또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함에 따라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늘어나는 등 문제도 있어 일반의약품 저 용량에 대한 전문의약품 전환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를 심각한 상태로 받아들여 일반의약품일지라도 마약 성분이 들어간 약일 경우 약사가 직접 환자를 보며 진단·설명 후 판매하거나 신분증을 제시해야 구매할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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