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쉬운 걸(girl)? 그건 편견이거든!


‘자동차 경주의 꽃’으로 불리는 레이싱모델. 모터스포츠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이들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볍고 쉽다(?)’는 색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활동 중인 인기 레이싱모델들에게 직접 묻고 들었다. 레이싱모델을 둘러싼 5가지 오해와 편견에 대해.

대다수 레이싱모델은 외모가 ‘된다’. 170cm가 훌쩍 넘는 키에 S라인 몸매는 기본, 얼굴까지 예쁜 경우도 적지 않다. 연예인이 되기 위한 기본 요건을 두루 갖춘 셈.


연예계 데뷔? 제의 받아!

여기에 오윤아, 김시향 등 레이싱모델 출신 연예인이 속속 등장하면서 ‘레이싱모델=연예계 등용문’이란 인식까지 생겼다.

하지만 이에 대한 레이싱모델들의 대답은 “NO”다. 최근 활동을 시작한 레이싱모델 중엔 연예인 지망생이 있지만 대다수는 데뷔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방송 경력이 있는 5년 차 레이싱모델 A씨는 “방송사나 기획사에서 먼저 연락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실제 데뷔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전했다.

A씨를 비롯한 여러 레이싱모델들은 레이싱모델 경력이 연예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충고도 한다. 관심을 얻는 데는 유리하지만 편견 때문에 활동 폭이 좁아지기 쉽다는 것. 그는 “기획사도 대부분 섹시한 이미지만 원하고 데뷔 후에도 그런 콘셉트를 벗어나기 힘들다”며 “지적인 매력을 인정받고 있는 오윤아는 보기 드문 케이스”라고 전했다.


성인화보? 찍으면 손해!

레이싱모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레이싱모델 출신 OOO’라는 타이틀이 붙은 모바일화보도 지속적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그 중에선 노출 수위가 높은 일명 ‘성인화보’도 있다. 이로 인해 ‘레이싱모델은 쉽게 노출한다’는 편견이 더 강해진 게 사실.

하지만 레이싱모델들은 억울하다. 성인화보의 주인공 중 상당수가 레이싱모델이 아니거나 1~2번 모터쇼에 참석한 게 전부인 신참이라는 것.

유명 레이싱팀의 전속 레이싱모델 B씨는 “필드에서 활동하는 레이싱모델들은 성인화보를 촬영한 레이싱모델을 거의 모른다”며 “화보에 붙일 이름이 없으니 레이싱모델 타이틀을 붙이는 건데 어이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뿐만 아니라 섣부른 노출은 레이싱모델 경력에 마이너스라고 귀띔했다. 대우가 좋은 레이싱 팀과 전속 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이미지 관리가 필수라는 것.

B씨는 “보통 레이싱 팀과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데 대중의 반응이 좋지 않거나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면 재계약이 어려워진다”며 “수위 높은 모바일화보도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제의를 받아도 안 한다”고 못 박았다.


노출증? 작업복이야!

일부 사람들은 말한다. 노출에 대한 대중의 편견이 그토록 싫다면서 왜 아슬아슬한 유니폼만 입느냐고.

레이싱모델들의 대답은 간단하다. “직업이니까.”

레이싱모델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자동차를 부각시키고 기업명이나 제품명을 사람들 머리에 각인시키는 것.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노출 유니폼’을 입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유니폼 가슴 부위엔 기업이나 제품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다. 이처럼 작업복(?)을 입을 뿐인데 레이싱모델들은 노출증 환자라는 오해를 받거나 노출을 강요받는다.

CJ레이싱 팀 소속의 레이싱모델 육지혜씨는 “차량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출하는데 우리가 좋아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일상복도 얌전하게 입으면 실망이라고 하는데 평소엔 수수하고 편하게 입는 레이싱모델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레이싱모델을 둘러싼 편견 중 가장 심한 게 ‘화려한 남성 편력’이다. 노출 심한 의상을 입는데다 늘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보니 자연히 이같은 오해가 생기는 것. 예쁜 외모와 솔직한 성격도 편견을 만드는데 한 몫 한다.


남성 편력? 사람 나름!

물론 실제는 다르다. 수 백 명의 레이싱모델이 존재하는 만큼 남자관계가 복잡한 사람도 있겠지만 전체를 ‘가벼운 여자’로 몰아가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것.

레이싱 선수들과 자주 사귄다는 ‘루머’도 레이싱모델들은 “사실무근”이라며 발끈했다. 드라이버와 레이싱모델이 서로 호감을 가지는 경우가 드물고 있다 해도 연인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것.

실제 관계자들에 따르면 레이싱모델과 드라이버는 레이싱 경기 때 외에는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어 친분을 쌓기 쉽지 않다. 레이싱경기를 전문으로 취재하는 사진기자 역시 “선수가 레이싱모델에게 호감을 표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커플로 발전하진 않더라”고 전했다.

인기 레이싱모델 C씨는 “한 사람과 몇 년씩 교제하는 레이싱모델이 의외로 많다”며 “오히려 남성편력이 심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차인다”고 전했다. 이어 “솔직히 가끔은 레이싱모델에 대한 편견 때문에 시집도 못가는 건 아닌지 걱정될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편해 보여? 허리 끊어져!

얼핏 레이싱모델은 편한 직업으로 보인다. 예쁘게 꾸민 뒤 차 옆에서 멋진 포즈만 취하고 있으면 수입이 생기니까. 한 레이싱모델에 의하면 활동에 따른 편차가 크지만 인지도 있는 레이싱모델의 경우 한 달 평균 400~500만원의 수입은 어렵지 않다. 그야말로 ‘땡기는 직업’이다.

하지만 레이싱모델들은 “모르는 소리”라며 손사래 친다. 굽이 10cm가 넘는 구두를 신고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고통을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는 것. 사진기자들과 관람객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항상 미소를 지어야 하는 탓에 고통은 두 배가 된다.

레이싱 경기장에서 활동할 경우에는 신경 쓸 일이 더 많다. 사진촬영과 홍보 활동은 물론 드라이버까지 보조해야 한다. 비와 눈에 자신은 젖어도 드라이버는 우산으로 지켜(?)줘야하는 게 레이싱모델의 운명. 한 여름과 한 겨울에 여린 속살을 드러내고 야외 경기장을 누비는 건 기본이다.

육지혜씨는 “높은 구두를 신는데다 보다 날씬하게 보이도록 배를 비롯한 몸 구석구석에 힘을 주고 있어야 한다”며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녹초가 된다. 무릎,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레이싱모델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레이싱모델도 하나의 전문직인 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다. 대중들도 편견을 갖지 않고 대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2006년, 한국모델협회 산하에 ‘레이싱모델 분과’가 개설됐다. 이후 이렇다 할 활동이 없던 레이싱모델분과는 지난 8월 28일 운영진을 재편하고 본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레이싱모델의 권익 보호는 물론 국내 모터스포츠 활성화에도 이바지하겠다는 것.

레이싱모델 분과를 중심으로 레이싱모델에 대한 인식이 하루 빨리 재정립되길 모터스포츠 팬들은 바라고 있다.


#레이싱모델이 뽑은 ‘피곤한 관람객’

지난 9월 21일. 경기도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CJ슈퍼레이스 챔피언십’ 5회전에서 만난 레이싱모델들은 시원한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솔직담백했다.

레이싱모델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했다. 평균 2~3년 이상 활동한 탓에 웬만한 돌발 상황에도 놀라지 않는 그들이지만 당혹스러운 관람객이 없진 않다고. 레이싱모델들이 꼽은 ‘곤란한 관람객’ 유형을 살펴본다.


-휴식 방해하는 사람

레이싱모델의 주요업무 중 하나는 사진촬영이다. 기업과 제품을 알리기 위해 관람객들의 요구에 따라 포즈도 취하고 농담을 받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쉬는 시간, 식시시간까지 이런 요구를 한다면 곤란하다.

레이싱모델들은 “계속 서 있다 보니 앉아서 쉬는 시간이 무척 소중한데 와서 말 걸고 양해도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다. 자제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정부위는 왜 찍어!

카메라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레이싱모델을 찍는 사진 애호가들도 부쩍 증가했다. 팬들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레이싱모델을 카메라에 담는다.

문제는 이상한(?) 취미를 가진 일부 관람객. 느끼한 눈빛과 야릇한 표정으로 무장한 이들은 가슴, 다리 등 신체 일부만 찍어 레이싱모델들을 기분 나쁘게 한다.

레이싱모델들은 “요즘은 덜해졌는데 예전엔 신체 특정부위만 찍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사진을 인터넷에서 보면 화가 난다”며 “사진 촬영 때도 기본 예의를 지켜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스킨십? 절대 안 돼!

무식할(?) 정도로 용감한 일부 관람객은 은근슬쩍 스킨십을 시도하기도 한다.

물론 레이싱모델들은 이에 분노한다.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촬영을 하는 것과 일방적인 신체접촉은 분명 다르기 때문.

이런 행동도 일종의 성희롱이라는 사실을 인지했으면 하는 게 레이싱모델들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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