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도 좋으니 2~3달은 살아달라”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함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농어촌 국제결혼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남성 가운데 외국인 여성과 국제결혼한 비율이 22.7%에 달했다. 해당 기간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남성의 결혼건 수는 5년간 총 2만5374건이며 이 가운데 22.7%인 5764건이 국제결혼이다. 현재 연평균 1100여 명에 달하는 외국인 새댁이 생기고 있다. 또 미모의 외국인 여성들이 TV프로그램 토크쇼·예능 등에 출연하면서 ‘결혼적령기를 넘어 어쩔 수 없이 국제결혼을 한다’는 등의 인식은 많이 달라진 상황이다. 하지만 국제결혼을 빙자해 사기행각을 벌이는 사례는 줄지 않은 실정이다.

“나이 많은 한국 남성, 젊은 외국인 여성 만나려는 마음이 문제”
국제결혼, 돈으로 되는 것 아냐… “중개업자, 양심적 사업해야”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지난해 12월 28일 질병이 있는 사실을 남성들에게 알리지 않고 국제결혼을 중개한 혐의로 국제결혼중개업체 대표 윤모(58)씨 등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윤 씨 등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국내 남성들을 대상으로 국제결혼을 중개하면서 피해자 A(40)씨 등 10명에게 결혼 대상 여성의 혼인 경력·건강 상태 등의 신상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피해를 준 혐의를 받았다.

성병·하반신 마비 등
질병 사실 알리지 않아…

경기도에 사는 A(40)씨는 2014년 4월 지인으로부터 소개받고 한 국제결혼중개업체를 찾았다.

중개업체 대표 윤 씨는 20대 초반 여성 20여 명의 사진을 늘어놓고 “마음에 드는 여성을 고르면 된다. 누구를 택하든 100% 결혼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결혼적령기를 넘어선 A씨는 곧바로 한 여성을 선택했으며 중개비로 1천500만 원을 건넨 뒤 베트남으로 향했다. 베트남 현지에 있는 에이전시를 통해 상대 여성과 그 가족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결혼을 하는 데에는 고작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첫날밤을 보낸 A씨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귀국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A씨는 신체에 이상한 낌새(?)를 느껴 병원에 방문했다. 비뇨기과 의사는 성병 진단을 내렸고 A씨는 당황했지만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 황당한 일은 그 이후에 발생했다. 혼인신고를 마친 아내가 한 달도 안 돼 가출을 해버렸다.

B(42)씨도 같은 중개업체를 통해 베트남 여성(28)을 소개 받았다. 신혼 5개월이 지날 무렵 아내가 하체 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병원에 방문했다. B씨는 그곳에서 의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아내의 질병은 하반신 마비증이었다.

중개업체서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터라 충격이 컸다. B씨는 아내의 치료비로만 2000여만 원 이상을 썼다.

이 밖에도 윤 씨 등의 중개로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여성 일부는 외국인등록증을 취득한 뒤 이혼을 요구하고 가출하는 등 국내 이민 목적을 두고 허위 결혼을 했던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혼 4일 만에
내연남과 도망친 아내

1만1702명가량의 온라인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국제결혼피해센터’는 국제결혼 사기를 당했던 피해자가 직접 만든 단체다. 국제결혼피해센터 안재성 대표는 2007년 우즈베키스탄 결혼 사기 업체에 속아 가정·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성을 소개받았다. 그 결과 단 몇 개월도 살아보지 못하고 5천만 원 이상의 경제적 피해를 당했다. 당시 스트레스로 쓰려져 죽음의 문턱도 경험했다.

국제결혼피해센터 회원들은 이혼·사기·성매매 범죄 유도 등 다양한 피해를 겪고 있었다.

국제결혼피해센터 회원인 C 씨는 2014년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베트남 여성을 소개받았다. 이후 베트남을 2번 방문, 결혼이 성사됐다. 생리 중이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첫날밤을 못 치렀던 C씨는 4일 만에 아내를 잃었다. 아내는 국내에 있던 베트남 내연남과 도망을 쳤다. 알고 보니 결혼정보업체, 업체를 소개해준 사람, 아내까지 모두 사기범이었고 C씨는 3000만 원가량의 금전적인 피해를 입었다.

D씨는 지난해 7월 베트남 현지에서 결혼한 뒤 귀국해 2차 전통 결혼까지 진행했다. 혼인신고까지 마친 D씨는 아내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던 중 초혼이라던 아내의 결혼사진을 발견했다. 이후 아내에게 추궁했고 사실대로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D씨의 아내는 “마을 남자하고 결혼했는데 한 달 정도 살고 결혼 생활을 그만뒀다”라고 실토했다. D씨는 바로 결혼정보업체에 항의를 했으나 “몰랐던 사실”이라는 답변뿐이었다. D씨는 혼인무효를 진행하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으나 법적 제재가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제 일어날 것 알면서
속이는 경우 허다하다”

국제결혼피해센터 안재성 대표는 중개업자를 통한 국제결혼을 비판했다. 안 대표는 “1만 명 정도의 국제결혼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상담해본 결과 1만 명 중 70% 이상이 ‘중개업자로 인한 피해’로 드러났다. 나머지 30%는 지인 소개, 가족 소개, 본인 교제 등 기타사항이다. 중개업자들은 결혼 중개 전문가다. 관상만 보더라도 문제가 일어날 것을 알면서 속이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가장 큰 문제점은 소개를 받는 서로 간의 부조화다. 50~60세 정도의 한국 남성들이 젊고 매력 있는 19~25살 외국인 여성을 원하는 상황부터가 문제다. 하지만 중개업자들은 중개비만 바라보고 고객을 상대하기 때문에 피해를 겪는 사례가 줄지 않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또 안 대표는 “중개업자들은 고객들이 피해를 겪고 법적으로 문제삼을 경우 미리 방지해둔 방패(?)들이 많기 때문에 현재로서 사기행위 척결이 힘들다. 일부 중개업자들은 결혼 상대 외국인 여성에게 ‘도망가도 좋으니 2~3달은 살아줘라’는 지시를 내린다. 법적으로 문제가 됐을 때 가정법원에서 ‘부부간의 결혼생활을 입증’ 받을 수 있어 부부의 문제로 넘겨진다. 이후 중개업자들은 발을 뺄 수 있기 때문”이라며 “현재까지도 중개업자들의 국제결혼계약서에는 ‘외국인 신부를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인도할 시 즉시 계약이 종료된다’는 조항을 가지고 여러 사기행각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들이는 행위로 성사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살펴보고 교제를 거쳐 결혼까지 이어지는 것처럼 국제결혼 또한 최소 2년 이상 의사 소통하며 서로 간의 정보를 얻고 결정해야 한다”며 “중개비를 받으며 행하는 국제결혼중개업 자체가 해외에선 전부 불법이다. 러시아, 중국에서는 중범죄로 여기고 감옥까지 보낸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합법으로 여겨지는 만큼 국제결혼중개업자들은 사업성공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개해 만난 부부가 자녀를 낳고 잘 살 수 있도록 양심적 사업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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