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족한 설은커녕 장 보기 두렵다’

소비자, “이번 차례상에 전(煎) 종류 빼야 할지도…”
판매자, “5만 원 미만 상품 판매 98% 차지”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민족 명절 설을 앞두고 국내 유통업체들이 본격적인 설 준비에 들어갔다. 대형 마트들은 오른 물가에 맞춰 선물세트 사전 예약 할인 행사를 예년보다 앞당겨 진행한다.

이와 함께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 맞춰 5만 원 미만 상품구성을 선보이는 등 자구책 마련의 양상이 눈에 띈다. 하지만 대형마트를 찾은 소비자들은 선물세트 구매는커녕 장보기도 겁난다는 반응이다.

전통시장은 더욱 심각하다. 오른 물가로 그나마 찾던 소비자들의 발길도 끊겨 힘겨운 겨울을 나고 있었다.

지난 10일 오후 3시경 찾은 서울 성동구의 한 대형 마트에는 저녁거리를 준비하는 주부들로 북적였다. 대다수의 주부들은 야채나 과일 고기 등을 눈여겨봤지만 선뜻 장바구니에는 담지 못하는 눈치였다.

주부 A씨는 “매일 장을 보러 와서 그때마다 필요한 것만 사는 편인데, 요새는 조금만 사도 10만 원이다”라며 “특히 우리 집은 아이들이 계란을 좋아해 요새도 한 판에 9000원 가까이 하는 걸 사먹는데, 과일이며 채소며 덩달아 다 비싸져서 참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통계에 따르면 한 달 전 계란 1판(30개) 가격은 5873원이었다. 하지만 지난 6일 기준 2배가량 올라 8960원을 넘어섰다.

몇몇 채소의 경우도 두 배 가량 올랐다. 무는 1개 가격이 지난 6일 기준 3096원으로 지난해 1295원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배추는 1포기에 지난해 2220원에서 올해 4354원으로 올랐고, 양배추 1포기는 5578원으로 지난해 2407원에서 1년 만에 3171원이 치솟았다.

깐 마늘, 대파 등 주요 양념류도 평년대비 30% 이상 올랐고, 콩나물 가격도 17%나 급등했다.
훌쩍 오른 물가는 설 명절까지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소비자들은 다가올 명절 음식 장만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명절마다 제사를 지낸다는 소비자 B씨는 “제사를 안 지낼 순 없으니, 오르면 오른 대로 지내야겠지만 준비할 음식 양을 줄이든지 대체 품목을 찾든지 해야 될 거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면 우리는 제사상에 항상 굴비를 올리는데 굴비 값이 만만치 않게 올랐더라. 굴비를 빼고 다른 생선을 준비할까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조상님이 노하셔도 별 수 없다”며 “지난해까지는 무리해서라도 차렸는데 올해는 아무리 예산을 짜도 답이 안 나온다”라고 덧붙였다.

선물 친척끼리 생략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설 선물세트 또한 사전예약을 통해 할인 판매해도 반응이 뜨겁진 않다. 마트 곳곳에 예년보다 5일 앞당겨 진행하는 설 선물세트 사전예약 광고가 대대적으로 붙었지만 선물세트 진열 코너에서 구경하는 사람은 1시간이 지나도 한두 명뿐이었다.

설 선물세트 사전예약 코너 담당 직원은 “한우, 홍삼 등은 확실히 예약손님이 많지 않다”며 “하지만 2~3만 원대 제품들의 경우는 꾸준히 잘 나가는 편이다.

특히 햄, 참치 같은 가공 식품류가 치약, 칫솔 품목으로 구성된 세트보다 잘 나간다”고 답했다.

설 선물세트를 구경하던 한 소비자는 “올해는 친척들끼리는 주지도 받지도 말자고 했다”며 “지인에게 보낼 것을 보고 있는데 이전보다 확실히 싼 품목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3대 대형마트가 준비한 이번 설 선물세트 구성에서 5만 원대 미만 제품들의 비중은 이마트는 90%에 달하고 홈플러스도 전체 85%인 220여 종, 롯데마트는 54.1% 다.

그럼에도 업계 관계자들은 유통가가 김영란법이 첫 실시된 지난 추석보다 이번 설에 만전을 기했지만 물가 상승과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AI)여파로 명절 특수를 노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전통시장은 어느 때보다 고된 명절이 될 것 같다는 분위기다. 지난 11일 방문한 서울시 성북구의 한 전통시장엔 적막이 돌았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는 오후 5시인만큼 장을 보는 주부나 일찍 퇴근한 이들로 북적거려야 할 시장이 한산했다.

시장 입구에서 나오는 한 주부는 “저녁 찬거리를 사러 잠깐 나왔는데, 시금치 몇 단이랑 콩나물 좀 샀더니 가지고 나온 현금이 바닥났다”며 “계란은 마트 가서 사야겠다. 시장은 한판에 만 원이 넘는다”라고 말했다. 

전통시장은 더 어려워  

시장에서 채소가게를 운영 하는 한 상인은 “우리도 요새 물건(채소) 가져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무며 배추며 당근이며 안 오른 게 없다. 이러다 명절 장사도 놓칠까 무섭다”고 말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양모씨도 “우리 같은 소상인이 아무리 싸게 판다 해도 대형 마트들보단 못하니 이런 대목에 물가까지 올랐으니 진짜 죽을 맛이다”며 “그래도 명절 때면 재래시장을 찾는 이들이 꽤 있어 한철 장사가 됐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전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시장에서 가장 힘든 건 자신일 것이라고 한탄했다. “계란 값이 올라 잠시 문을 닫아야 하나 하는 고민도 해봤다”며 “이번 명절에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해마다 오는 단골손님까지 떨어질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통시장 8곳을 대상으로 한 한국물가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전통시장에서 설 차례상 비용을 장만할 경우 가격이 지난해보다 5.2%로 증가할 것이다.

4인 기준으로 했을 때 20만6020원으로 과일, 견과, 나물 등 29개 차례상에 올라가는 품목에 대한 예상 가격을 합계한 가격이다.

이처럼 물가상승과 김영란법으로 영세상인들이 힘들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나오자 정계에서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8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경북 기자간담회에서 김영란법이 시행된 후 영세상인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어 농·수·축산물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도 “관계 부처와 협업해 법 시행 이후의 사회·경제적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변화되는 상황에 공동 대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성비 높은 제품들이 많이 출시된 장점도 있다며 소비자들은 반대하는 눈치다. 특히 국내 정세가 관료비리와 비선 실세의 비리로 어려운 현 상황에서 법 개정은 안 된다는 의견도 다수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