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조기 대선이 가시화됨에 따라 여야 잠룡들의 대권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의 최근 행보가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지지율 하락에 고심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문 전 대표를 ‘청산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공동 경선·촛불 공동정부’라는 ‘막판 뒤집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문재인 전 대표의 ‘구원투수’에서 최근엔 ‘선발투수’로 전향, 친노·친문 세력과 거리두기를 시도하곤 있으나 ‘문재인 호위무사’라는 기존의 ‘포지셔닝’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문재인 때리기’의 시작을 알렸던 이재명 성남시장은 최근 문 전 대표와의 ‘서울시장 밀약설’이 불거지면서 문 전 대표를 향한 칼날이 무뎌졌다는 지적이다. 여권의 잠룡으로 평가받는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는 대권 출마와 지사직 유지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조기 대선을 맞는 5개 광역·기초단체장들의 엇갈린 운명을 들여다봤다.

- 선두 탈환 시도하는 野 잠룡
- 안희정 ‘우클릭’ 이재명 ‘타협’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더불어민주당 내 잠룡들의 최우선 과제는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를 뛰어넘는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야권의 승리가 점쳐지는 상황에서 문 전 대표를 넘어서는 것은 곧 대선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부겸 의원은 지난 18일 ‘개방형 공동 경선’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당 지도부를 작심한 듯 비난했다. 박 시장은 이날 “소수 정파가 당을 장악·지배·독식하고 배타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당 지도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文만 뛰어넘으면
왕좌에 앉을 수 있다!

박 시장은 당내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와 연일 각을 세우는 이유에 대해서 “경선 흥행을 위한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박 시장의 속내엔 결국 문 전 대표만 뛰어넘으면 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즉 ‘공동 경선·촛불 공동정부’ 카드가 촛불민심을 받들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엔 이것이 박 시장이 생각하는 ‘막판 뒤집기 카드’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시장의 ‘필승카드’는 당 안팎의 싸늘한 반응으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촛불 공동 경선’이라는 이름으로 야권이 단일한 후보를 내세워 대선을 치르자는 제안이지만, 야권 내 유력 주자들은 이에 동조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엔 광장에서 무작위 ‘원샷 경선’을 치르자는 주장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이 절대적이다.

뿐만 아니라 박 시장은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하락을 면치 못하더니 결국엔 후보군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박 시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지율 2%에서 시작했다”며 “경선은 이제 시작이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더불어민주당 내 상황이 박 시장에게 녹록지만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구원투수’, ‘선발투수’, ‘호위무사’…
안희정의 선택은?

또 다른 더불어민주당의 대권 잠룡 중 한 명인 안희정 충남지사 역시 대선 출마 공식 선언 시기를 저울질하는 가운데 문재인 전 대표와의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안 지사는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함께 참여정부 당시 ‘좌희정 우광재’로 불릴 만큼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알려졌다. 이에 안 지사는 지금까지 문 전 대표의 ‘대안 카드’, ‘구원 투수’, ‘페이스메이커’ 정도로만 인식됐다.

그러나 안 지사는 최근 각종 현안과 정책에 대해 문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선발 투수’로의 전향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영장 기각에 대해 안 지사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는 입장을 갖는 것이 법치의 엄격성과 법치의 정의를 지키는 길”이라며 다른 야권 잠룡들과 ‘대척점’에 섰다. 당내 경선을 앞두고 사실상 승부수를 띄운 모양새다.

안 지사 입장에선 문 전 대표의 그늘에만 갇혀 있게 되면 잃는 것이 많다. 일단 문 전 대표의 대통령 당선은 아이러니하게 안 지사의 대권 가도엔 빨간 불이 켜지게 됨을 의미한다. 국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그대로 계승한 문재인 전 대표의 손 까지는 들어줬을지 몰라도 차차기에서 또다시 친노 인사를 뽑아줄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문 전 대표가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다 해도 문 전 대표의 ‘호위무사’인 안 지사로서는 1988년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가 야권의 이합집산을 틈타 당선된 과오를 그대로 반복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고심이 깊은 안 지사이지만 그가 위와 같은 이유로 문재인 전 대표와 대척점에 설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안 지사가 문 전 대표와 함께 엮여 있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을 것이다”라며 “국민들에게 안 지사는 친노의 적자라는 선입견이 뿌리 깊게 심겼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탄핵 정국의 ‘최대 수혜자’로 평가받으며 ‘문재인 때리기’의 선봉에 섰던 이재명 성남시장은 최근 문 전 대표를 향했던 칼끝을 거둬들인 모양새다. 문재인 전 대표 측근이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경우 서울시장직을 약속했다는 ‘밀약설’이 정가에 나돌면서부터다.

이에 이 시장은 “이런 것이 바로 청산되어야 할 구태·공작 정치”라며 “민주 정당에서 선출직 공직의 내락은 불가능하다”고 일축했지만 이 시장이 문 전 대표에게 굳이 날을 세우진 않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당 내 경선은 문재인·안희정·이재명 vs 박원순·김부겸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함에 따라 여권 내 잠룡들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이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선주자를 내세우지 못하자 비박계가 중심이 된 바른정당에선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띄우기에 나서며 반 전 총장 견제에 나섰다.

바른정당은 유승민 의원이 제안한 ‘육아유직 3년법’을 1호 법안으로, 남경필 경기지사가 제안한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을 2호 법안으로 채택했다. 두 대선 주자의 정책을 부각해 흥행몰이에 나서겠다는 의중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승민, 남경필 두 후보 모두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그치고 있어 초반 흥행에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뿐만 아니라 남경필 지사와 원희룡 지사의 경우 다른 광역단체장들과 마찬가지로 대선 출마를 위해서는 지사직을 내려놓아야 하기에 이들이 ‘무리수’를 둬 가며 대선을 완주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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