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외국의 문물을 처음으로 받아들여 동서양의 문화가 사이좋게 혼재하는 곳. 동시에 원폭이 투하되어 많은 아픔을 받아낸 곳. 하지만 과거의 영화와 굴욕은 잊고 이제는 평화가 밀물처럼 스며드는 곳 나가사키. 나가사키는 때때로 안식이란, 이런 곳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은 알렝 레네의 영화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성공했다.
 
히로시마에 온 프랑스 여배우와 일본인 건축가 사이에서 흐르던 짧은 무언의 사랑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내내 종결되지 못한 채 유폐돼 쓸쓸히 떠돌았다. 나가사키라고 히로시마와 다를까. 전쟁이라는 시대의 굴곡을 함께 온몸으로 받아낸 나가사키였으니 이 북규슈 땅 서쪽 끝에서 바라보는 나가사키의 모습은 히로시마와 다르지 않거나 다른 여행지와는 환기 지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나가사키 반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 환기를 걷어간 후 나지막하게 이런 글씨를 남겼다. 평화, 그것이 바로 나가사키의 원래 이름이었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운젠
운젠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크게 익숙한 지명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곳저곳 많은 관광자원이 개발되기 전, 운젠은 모든 일본의 신혼부부들에게 신혼여행의 유일한 선택지이자 이상향이었다.
 
규슈는 물론, 도쿄나 오사카 같은 본토와 멀리 삿포로에 사는 사람들도 이곳에까지 와서 그들의 신혼여행을 즐기곤 했다. 지금의 유후인이나 벳부 등은 아직 운젠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시절이었다. 운젠이 이처럼 신혼여행지로 유명세를 탔던 이유는 아무래도 온천에 있다.
 
시내 곳곳에 분화의 흔적이 남아 있어 현재도 끊임없이 온천 증기가 뿜어 나오는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퍼지는 기운과 같다 하여 지옥이라고도 불린다.
 
지옥 주변에는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어 연못 지옥과 아비규환 지옥 등 30여 개의 지옥을 산책하듯 둘러볼 수 있다. 나가사키에서 운젠까지 자동차로 굽이굽이 산을 돌아 한 시간. 청정한 공기 속에 빽빽한 숲을 한참 지나면 휴식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으며 동시에 구름이 신선이 되는 곳, 운젠에 닿을 수 있다.
 
<tip>  후겐자야
일본식 디저트와 식사를 판매하는 전원풍 식당. 키자라라고 불리는 작고 둥글게 만든 하얀 경단에 설탕과 꿀을 섞어 내는 디저트로 유명하다.
운젠관광호텔
 
운젠관광호텔은 1935년 10월 10일 창업한 역사 깊은 호텔로 운젠 시내에서는 시설과 모든 면에서 최상위급이다. 입구에 도열해 있는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고풍스러움이 반기고 내부에는 레스토랑과 바는 물론,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과 모던한 당구장, 앤티크한 도서관과 기프트 숍까지, 디테일한 배려를 더한다. 그들이 정성스럽게 내는 가이세키 정식 또한 일품이다.
비드로 미술관
 
비드로는 유리의 예전 이름으로 포르투갈어이다. 나가사키는 일본 유리의 발상지로 에도시대 때부터 유리와 관련된 일을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비드로 미술관에는 당시의 유리 공예품들과 19세기 보헤미안 글라스 등의 앤티크 유리를 전시하고 있으며 도자기, 회화뿐 아니라 고풍스러운 가구와 희귀 오르골 등도 계절에 맞게 콜렉팅하고 있다. 관람 동선의 마지막 지점에서 만나는 인상적인 유리 공예품은 바로 ‘HORIZON(수평선)’이라는 작품으로 1960년 대 미국에서 시작된 ‘Studio Glass Movement’의 창시자 리벤스키와 브리슈토바의 찬란한 걸작이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수평선은 그야말로 오묘한 느낌. 1층에는 각종 유리 만들기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공방도 병설돼 있으며 기프트 숍에서 관련 기념품을 판매한다.
<info> 홋토훗토 105 족욕탕
운젠에서 내려오면 바로 오바마라는 작은 어촌마을로 이어지는데 이곳에 105도의 원천이 솟아나며 길이 105m로 일본에서 가장 긴 족탕 HOT HOT 105가 있다. 타치바나만에 지는 석양을 보며 다양한 족탕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요금은 무료. 부근에 싱싱한 품질을 자랑하는 수산물 판매점이 많다.
나가사키 음식
 
쇄국시대인 에도 1603~1867 시기, 나가사키가 대외로 문호를 개방한 이래 바다 건너 다양 한 나라들의 방문 러시가 있었다. 그들의 음식 문화는 자연스럽게 나가사키 땅에 이식됐고 그 결과 독창적으로 나가사키만의 음식이 자생적으로 발전해 왔다. 나가사키에서 꼭 먹어봐야 할 나가사키 소울 푸드.
카스텔라 ‘분메이도’

카스텔라는 일본의 개항기에 포르투갈로부터 전해져 이제는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로 완전히 자리매김을 했다. 분메이도는 나가사키 3대 카스텔라 중 하나이며 1900년에 창업해 다소 후발주자이지만 꾸준하게 역사와 전통을 잇고 있는 곳으로 오리지널과 초콜릿 그리고 녹차맛 등 세 가지의 카스텔라에 집중하고 있다.

인공 첨가물이 없어 유효기간이 짧으므로 오히려 믿음이 가며 바닥에 붙은 얇은 종이를 뜯어내면 설탕의 결정이 촘촘히 박혀 부드럽고 달달한 맛을 이끌어 낸다. 카스텔라의 신세계를 보여주는 곳.

카스텔라 ‘소오켄’

나가사키에서는 집에 손님이 방문하면 차와 카스텔라를 낸다고 할 정도로 실생활 깊숙하게 내린 전통과 같은 음식이다. 후쿠사야, 분메이도와 더불어 나가사키 3대 카스텔라를 형성하고 있는 쇼오켄. 쇼오켄의 창업 연도는 무려 1681년으로 이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본점 2층은 앤티크한 카페로 돼 있어 가볍게 들러 카스텔라를 즐길 수도 있으며 치즈 케이크와 메이플 카스텔라 등 다양한 빵을 취급한다. 분메이도가 달달하다면 쇼오켄은 깊고 진한 맛. 카스텔라계의 왕이라 칭할 만하다.
나가사키 짬뽕

1899년에 화교였던 천핑순이라는 사람이 가난한 중국 유학생들을 위해 만들었던 음식으로 닭뼈나 돼지뼈로 우려낸 크리미한 국물에 각종 해산물과 채소가 푸짐하게 들어있는 면 요리다.
쫄깃한 면발과 시원한 육수가 특징이며 튀긴 면 위에 걸쭉하게 만든 소스를 끼얹어 내는 나가사키 사라우동은 나가사키 짬뽕의 색다른 버전. 후추를 뿌려 먹거나 라유(고추기름)를 곁들여 먹는 것도 풍미를 살리기 위한 방법이다. 시내의 많은 식당들에서 메뉴를 갖추고 있지만 아무래도 중화 거리의 식당들이 더 가까운 맛을 낸다.
 
도루코라이스
섞어먹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일본에서 이 도루코라이스는 조금 색다른 음식이다. 원 플레이트에 서양식 볶음밥인 필라프와 스파게티 그리고 돈카츠 같은 덴푸라 류에 채소, 수프 등이 함께 나온다.

도루코는 터키의 일본식 발음. 나가사키 데지마 부두에 있는 애틱(Attic) 레스토랑은 항구를 바라보며 저물어가는 나가사키의 선셋과 야경까지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아주 괜찮은 선택이다. 한국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커피 향 카스텔라인 ‘데지마 커피 카스텔라’도 애틱의 주요 메뉴. 사카모토 료마 커피로도 유명한 집이다.

<tip> 사카모토 료마
일본 에도시대의 무사로 실질적으로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인물. 많은 일본인이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는다.
 
콜라겐 짬뽕

오바마 지역에 위치한 호텔 운젠소의 콜라겐 짬뽕은 나가사키의 어느 음식보다 꼭 먹어봐야 할 메뉴.

국물부터 재료까지 완벽함을 잃지 않는 콜라겐 짬뽕은 싱싱한 채소와 함께 상어 지느러미인 후카히레, 닭 날개, 족발 껍질에 가리비와 새우 등 해산물까지 완벽하게 들어 있어 진정 최고의 맛을 선사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지만 특히 여성들에게 대 인기, 한 그릇에 1500엔의 가격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이다. 족욕탕에서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며 1일 한정 판매로 예약은 필수.
 
카페 올림픽
나가사키 시내의 유명한 쇼핑거리인 하마노마치 아케이드에 위치한 카페 올림픽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르페의 천국이다.

가게 이름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유래했으며 매장 안에는 파르페들이 실물크기의 모형으로 전시돼 있다.

파르페는 30센티미터부터 점보 사이즈인 1.2미터까지 무려 50종류, 아이스크림과 디저트 종류도 다양하며 특히 이 집의 시그니처 디저트인 1.2미터의 파르페 ‘나가사키 드림 타워’는 TV와 잡지 등 미디어에 많이 소개돼 일본 전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도전자가 방문하기 도 한다. 연중무휴로 운영.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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