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의미나 환상은 섹스의 본질이 아니다”


“우리가 쓰는 물건은 그 원래의 용도에 따라 그에 알맞은 용법으로 적절하게 쓰임 받는 것이 옳다.

잘못된 지식은 사실을 왜곡 할 수 있으며, 잘못된 사용은 부작용을 낳고, 때로는 원치 않는 낭패를 볼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들어 놓으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그 모든 창조물에 대해 이름 짓기 훈련을 시키셨다. 아담의 후예인 우리 인간들은 그래서 이름 짓기를 좋아하는 속성을 타고 태어났다. 세상 무엇에든 기어코 이름을 지어야만 직성이 풀리고, 기필코 그래야만 해결이 되는 인간들에게는 우리 일상 속의 ‘섹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온갖 구실로 말미암은 수 만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화려하고 현란한 환상의 색을 칠해대는 것이다. 인간은 이 땅에 탄생하는 그 날부터 섹스를 하고 번성하며 살도록 지음 받았다. 그렇게 번성의 수단으로 부여받은 섹스는 그냥 섹스일 뿐이다. 다시 말해 본질적(동물학적)인 ‘섹스’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음식을 먹고 배변을 하듯이 생리현상의 한 일환으로 종족번식의 수단일 뿐이다. 그 어떤 의미나 환상의 이름도 섹스의 본질이 될 수 없으며, 잘 못 지어지는 이름은 매우 위험하고 그 본질마저 훼손시킬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지식의 올바른 깨달음은 사물의 진정한 본질과 현상을 명확히 하는데 있다. 그리고 우리가 쓰는 물건은 그 원래의 용도에 따라 그에 알맞은 용법으로 적절하게 쓰임 받는 것이 옳다. 잘못된 지식은 사실을 왜곡 할 수 있으며, 잘못된 사용은 부작용을 낳고, 때로는 원치 않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최근 나라가 온통 ‘김길태 사건’ 이야기다. 학교에서, 국회에서, 청와대에서, 골목골목 집집마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난리다. 13살 여자 아이를 성폭행하고 살해, 유기한 사건은 가히 경악할 일이다. 아직 조사 중에 있고 사건의 내막은 밝혀지진 않았다. 하지만 한 사람의 한순간 잘못 붙여진 의미와 환상으로 인해,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인간의 잘 못된 생각이 얼마나 끔찍하고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2002년에 김택원 감독에 의해 만들어져 수편의 속편을 내며 시리즈로 탄생된 일본영화 <완전한 사육>은 여자를 납치 감금해놓고 사육하는 납치범 이야기로, 예술성으로나 완성도로나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관심을 끌만한 영화적 요소는 충분히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평범한 우편배달부 사가와 마쯔오(오자와 가츠요시분), 그는 혼자 사는 대학생 스즈키(사쿠라이 마유미분)를 납치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사전에 모든 우편물을 체크해 신변을 파악하고, 어느 날 집배원 차림으로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 그녀를 납치 한다. 그는 자신의 아파트에 그녀를 감금을 하고는 일방적으로 ‘룰’을 만들어 놓고 지킬 것을 강요한다. 그녀는 노심초사 놈의 허점을 노리고 기회를 엿보지만 매번 허사로 끝나고 만다. 그런데 그러는 중에도 그녀는 어느 때부터인가 자신이 마쯔오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 이야기는 흔히 있어왔던 이야기고, 흔히 있어왔던 설정이며 구조다. 완성도 높은 스타시스템 영화도 아니고 엄청난 물량을 투입한 화려한 비주얼의 블록버스터도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10여년에 걸쳐 계속해서 영화의 속편이 만들어져 나오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분명히 영화 속에 있다. 또 필자가 이야기 하고자하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이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지만 영화 속 이야기엔 관심이 없다. 그렇다. 애당초 ‘이야기’는 영화의 ‘이름’도 ‘본질’도 아닌 ‘현상’에 불과한 배경일 뿐이다. 매번 달라지지 않는 반복된 단순 구조임에도 영화를 보며 긴장할 수 있는 것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 속에 살아 움직이는 우리 인간의 이중적 이상심리, 바로 ‘위험한 환상’ 그것이었던 것이다. 환상은 사실이 아니다. 환상은 비현실의 위험한 몽타주다.

인간은 관습의 동물로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길들여진다. 막다른 상황에 그녀는 “이젠 전쟁이다” 라고 결사의지를 갖지만 몸 따로 마음 따로다. 그리고 “그녀는 분명 나를 기다리며 점점 나를 좋아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그는 상상을 넘어 위험한 환상을 바라본다. 잘못된 환상은 두렵고 위험하다.

범죄행동분석요원(프로파일러)들은 이번 여중생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의 성장환경과 성격, 과거 범죄형태 등 장시간의 면담을 통해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그는 사이코 패스(Psycho-path·반사회적 성격장애)가 아니며, 범죄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되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범죄의 형태가 사이코 패스와는 거리가 있고, ‘납치·성폭행·감금’의 룰이 깨지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으며, 성욕 충족과 애정결핍의 성장을 보상받기위한 납치 감금이 목적으로 ‘묻지마 살인’의 사이코 패스와는 궤를 달리 한다는 것이다.

사이코 패스는 상대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데 쾌감을 느끼며 거짓말을 잘하고 죄의식이 없는 반면, 정상적인 생활을 못한 김길태는 9세 여아를 성폭행하려다 엄마에게 들키자 범행을 중단했고 감금했던 여성을 제 손으로 풀어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그는 그릇된 환상을 갖고 있으며 ‘감금한 피의자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여긴다 했다.

〈완전한 사육〉시리즈 속 남자 주인공들은 우체부, 미용사, 판매사원 등 모두가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 외형상 문제가 없는 멀쩡한 남자들이다. 그리고 납치 감금되어 성폭행 당하며 동물처럼 사육되는 여자들 또한 흠 없고 멀쩡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다. 그들 중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었고, 당황하는 쪽은 오히려 관객이다.

놈은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아무 죄가 없다” 그리고 그녀도 말한다 “그 사람 아무 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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