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40% 넘은 이회창도 ‘대세론’ 못 지켰는데…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조기 대선 정국에서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는 ‘문재인 대세론’의 결말이다. ‘대세론’의 미래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길과 이회창 전 총재의 길이다. ‘이명박 대세론’은 예상대로 결말이 났지만 ‘이회창 대세론’은 반전으로 끝났다. 문 전 대표 측은 ‘이명박 대세론’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10년 좌파 정권에 대한 피로감이 ‘이명박 대세론’을 만든 것처럼, 10년 우파 정권에 대한 염증과 ‘최순실 게이트’ 후폭풍이 ‘문재인 대세론’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 전 대표를 ‘비운의 황태자’ 이회창 전 총재와 비교하는 시각도 만만찮다. 최순실 씨의 국정 논단 사태 이후부터 지속돼온 ‘문재인 대세론’이 과거 1997년과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몇 년 동안 지속돼온 ‘이회창 대세론’의 피로감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 일요서울은 ‘문재인 대세론’의 현주소를 심층취재 해봤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文, 2007년 이명박에 비해 훨씬 약한 후보”
대항마 없음에도 지지율 30% 박스 탈출 못해… 왜?


‘대세론’을 등에 업고 독주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향후 운명을 놓고 추측이 무성하다. 문 전 대표가 2007년 대선 당시 당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누르고 본선까지 ‘대세론’을 이어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길을 밟을지, 2002년 대선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다 거센 ‘노풍(盧風)’에 꺾인 이회창 전 총재의 길을 밟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朴 정권 심판,
‘정권교체 10년 주기설’

 
문 전 대표 측은 메가톤급 파문을 일으킨 ‘최순실 게이트’가 문재인을 청와대로 견인하고 있다며 ‘문재인 대세론’이 과거 ‘이명박 대세론’과 닮았다고 말한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48.7%의 표를 얻어 26.1%의 득표율에 그친 여권의 정동영 후보에 압승했다. 진보 정권 10년에 대한 피로감과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 여론 속에서의 무난한 승리였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계기로 시작된 2017년 대선 정국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2007년 대선 당시와 비슷한 게 사실이다. 박근혜 정권 심판을 외치는 ‘촛불 세력’은 연일 광화문에 집결하고 있다. 정치권에 떠도는 ‘정권교체 10년 주기설’도 이를 거든다.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노태우·김영삼 보수 정권 10년→ 김대중·노무현 진보 정권 10년→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10년을 겪은 만큼 권력이 다시 진보 정권으로 넘어갈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순실 게이트’ 이후 대선후보 선호도와 정당 지지도 등 모든 지표에서 민주당이 범(凡) 여권을 압도한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을 합쳐도 민주당의 정당 지지도에 못 미친다. 그 중심에 문재인 전 대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반대의 가능성, 즉 이회창 전 총재의 길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정치권은 말한다. 이회창 전 총재는 ‘11개월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었다. 심지어 ‘대통령 자리를 예약했다’는 평가까지 들었다.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선 당내 경쟁자들이 “총재님”이라고 깍듯이 대하는 모습을 연출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는 ‘독이 든 성배’였다. 사실상 본선 무대로 직행한 이 후보는 아들의 병역비리 논란 등 상대 진영의 혹독한 검증에 시달렸다. 결국 대세론에 안주해 있던 이 후보는 ‘노풍(盧風)’을 일으킨 노무현 후보에게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이미 대통령 됐다는 ‘착각’,
이회창과 ‘판박이’
 

문 전 대표의 최근 행보를 살펴보면 이회창 전 총재와 똑 닮아 있다. 심지어 문 전 대표는 주변의 ‘대통령 대접’을 넘어서서 본인 스스로가 ‘이미 대통령이 됐다는 착각’에 취해 있는 모습이다.

문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 9일 이미 대통령이 된 듯 주한 미국 대사관을 통해 트럼프 당선인에게 축전을 보냈다. 한 술 더 떠 문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20일 “완전한 형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어떤 분들이 함께 국정을 수행하게 될지에 대한 부분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적절한 시기에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갈수록 문 전 대표의 ‘착각’이 심해지는 듯하자 같은 당 김부겸 의원마저 지난 1월 10일 “문재인 전 대표가 대권주자들을 차기 정부 국정운영에 참여시키겠다는 말을 했다. 너무 앞서 나간 얘기”라며 “오만하게 들릴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 역시 “이회창 후보는 1997년과 2002년 대선을 앞두고 40%대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갔음에도 막판 여러 변수로 우위를 지키지 못했다”며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은 그에 못 미치지 않는가. 착각은 그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여러 호재에서도 30% 초반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 직후 여론조사에서는 20%대로 급락하기까지 했었다.

이에 정치권은 뚜렷한 대항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상승하지 못하는 것은 문 전 대표의 최대 약점 중 하나인 ‘확장성 부재’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문 전 대표의 ‘확장성 부재’는 ‘제3지대 형성’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반(反) 문재인 정치세력들은 개헌 등을 고리로 ‘빅 텐트’로 불리는 연대를 추진, 문 전 대표를 ‘제2의 이회창’으로 만드는 데 몰두하고 있는 중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이회창 후보를 꺾은 ‘드라마’를 재연하겠다는 것. 이 같은 ‘제3지대 형성’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세론’을 본선까지 이어가며 당선된 2007년 때는 없었던 현상이다.

또한 ‘절대 찍지 않겠다’는 비호감도가 높은 것도 문재인 전 대표와 이회창 전 총재의 닮은 점이다. 문화일보의 설 특집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전 대표는 호감도(46.&%)와 비호감도(46.%)가 거의 팽팽하게 나왔다.

그러자 바른정당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이런 (탄핵정국) 상황에서 지지율이 고작 30%대”라면서 “2007년 이명박에 비해 훨씬 약한 후보”라고 직격탄을 날리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그의 지지율이 30% 초반에 머물러 있는 점은 문 전 대표가 돌발 변수에 취약함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정치권은 평가한다. 이회창 전 총재는 40%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한순간에 무너졌다. 또다시 나온 이 전 총재의 아들 병역 문제와 함께 민주당 전국 순회 경선 과정에서 불어 닥친 노풍(盧風)으로 인해 이 전 총재는 본선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 전 총재에게 아들의 병역비리가 ‘아킬레스건’이었다면 문 전 대표는 안보 이슈가 그의 최대 약점이다. ‘대북 결재 의혹’과 “당선되면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그의 발언으로 인해 일각에서 그의 ‘안보관’을 의심하는 눈초리도 생겨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거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DD·사드) 배치 등이 주요 이슈로 부각되면 이념 갈등이 증폭되면서 문 전 대표의 ‘대세론’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이후 ‘보수층의 결집’도 문 전 대표에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의 탄핵 인용이 보수층 결집의 촉매제로 작용, 그동안 숨죽였던 ‘샤이 보수층’이 빠르게 결집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만약 박 대통령의 탄핵안이 기각된다 하더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이 “기각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자진 하야 하겠다”라고 한다면, 오히려 박 대통령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있는 TK지역을 중심으로 보수층의 결집은 더 빨라질 수도 있다는 게 중론이다.
 
새누리당 내 ‘보수 결집’
분위기 ‘솔솔’

 
그러자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새누리당 내에선 이미 ‘보수 결집’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기각돼야 한다는 주장이 새누리당 지도부에서 최초로 제기됐다. ‘태극기 집회’에도 이미 복수의 보수진영 대권 후보를 포함한 새누리당 인사들이 참석했다.

지난 4일 광화문 집회엔 김문수 전 지사와 김진태, 윤상현, 전희경, 조원진 의원 등이 참석했다. 여기에 앞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인제 전 최고위원도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새누리당에선 이인제·원유철·안상수 의원 등이 이미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홍준표 지사와 김관용 지사 측 움직임도 심상찮다. 이런 식으로 새누리당이 최대한 많은 대선후보를 내 당내 경선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이후 지지세 결집을 꾀한 후 황 권한대행과 단일화된 본선 후보를 낸다면 대선 직전 바른정당 등 범여권 세력과의 ‘보수대연합’도 꿈만은 아니게 된다고 정치권은 말한다.

실제로 이들이 ‘보수대연합’을 명분으로 재결집한다면 막판에 보수-진보 양강 대결 구도를 만들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최근 지지율이 급상승한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면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같은 이유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전 대표가 이회창 전 총재의 길을 밟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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