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로열패밀리’ 등 탈북자 암살시도 계속해 와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씨 피살 소식으로 국내외가 떠들썩하다. 김정일의 장남인 김 씨는 북한 권력과 거리를 둔 채 생활해 왔지만 결국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게 됐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망명에 이어 김정남까지 피살되자 북한체제 붕괴가 더욱더 심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특히 엘리트층의 탈북이 더욱더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번 피살 사건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북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탈북·망명인사의 피살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망명·귀순자들이 북한 실상 외부에 알리는 것 우려
인터뷰 등 신문·방송에 노출된 탈북자들 안전 위험


김정남 씨 피살로 인해 국내에 거주 중인 망명·탈북자의 안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경찰청은 15일 국내 거주 중인 주요 탈북인사들에 대해 경호 인력을 추가 배치하고 이들 주거지의 방범 순찰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특히 신변 위협이 우려되는 인사들을 추려 거주지를 옮기는 등 신변 보호 방안을 추가로 마련할 방침이다.

관할경찰서 보안과 소속 경찰관 2명 이상이 24시간 밀착 경호하는 ‘가급’ 탈북 인사는 수십 명으로 알려졌다. 태영호 전 공사와 북한 외교관 출신으로 1991년 망명한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고영환 부원장 등이 여기 포함된다. 

경찰은 주요 탈북 인사의  피살 가능성 등에 따라 가·나·다 세 등급을 나눠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망명한 북한 고위급 인사나 안보상 보호 필요성이 큰 탈북자는 주로 ‘가’와 ‘나’ 등급으로 분류해 경호한다. 

성혜림 조카 이한영 피살
남파간첩이 권총 살해


김정남이 살해된 2월 15일,  그로부터 20년 전인 1997년 2월 15일, 국내에서는 김정일의 아내이자 김정남의 모친인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 씨가 피살됐다. 

‘로열패밀리’로 불렸던 이 씨는 1982년 스위스에서 한국대사관을 통해 귀순했다. 당초 이 씨는 김영철이라는 가명을 사용해 1982년 9월 28일 오전 9시 50분께 스위스 제네바 주재 한국대표부에 전화를 걸어 귀순 의사를 밝혔다. 

9시간 뒤 서울 외무부에 ‘몽블랑 보고’란 비밀전문이 타전됐고 “북하 공작원 김영철로부터 귀순 요청을 받았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한영의 귀순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프랑스, 벨기에, 독일, 필리핀, 대만 등 5개국을 거쳐 같은해 10월 1일 김포공항에 도착하면서 남한 땅을 밟았다. ‘한영(韓永)’이라는 이름은 이후 ‘한국에 영원히 살고 싶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씨는 귀국 후 방송 등에서 북한 체제를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하지만 1997년 2월 15일 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현대아파트에서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권총을 맞아 뇌사상태에 빠진 뒤 10여일 만에 숨졌다. 
<뉴시스>
  당시 수사당국은 수개월 동안 범인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었다. 그러다 약 9개월의 시간이 지난 1997년 11월 20일 당시 안기부가 이 씨 피살사건은 북한 공작원의 소행이었음을 발표했다. 

안기부는 북한이 성혜림의 모스크바 탈출을 계기로 김정일 등 북한권력층의 실상을 언론에 폭로해 온 이 씨를 제거할 목적으로 사건 한 달 전 사회문화부소속(현 문화교류국) 20대 테러전문요원 2명으로 구성된 특수공작조를 남파했다고 밝혔다.

이 공작조는 ‘순호조’로 불렸는데 당시 공작원 중 최순호라는 이름을 가진 공작원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공작원들은 사건 당일 심부름센터를 통해 이 씨의 행적을 파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당일 밤 9시 52분경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현대아파트에 나타난 이 씨를 권총으로 살해했다. 

안기부 발표에 따르면 공작원들은 범행 후 곧바로 북한으로 귀환했고 영웅칭호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향후 재남파에 대비해 얼굴 성형수술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안기부가 이 씨의 피살 전모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검거된 최정남-강연정 부부간첩 사건 덕분이었다. 부부간첩단이 북한의 공작지도부로부터 “특수조가 심부름센터를 이용한 것이 탄로났으므로 이번에는 대상자 접촉 시 심부름센터를 이용치 말라” “비상시에는 특수조가 귀환 전 신림동에 묻어둔 공작장비를 발굴0104사용하라”는 등의 지시를 받았던 것을 확인하고 간첩들이 사용했던 공작장비를 찾아냈다.

안기부 수사관들은 실제 해당 장소에서 독침 10개와 당시 1월 20일자 생활정보지 ‘교차로’로 싼 무전기 등을 발견했다.

간첩에 의한 이한영 씨 피살 사건은 당시 큰 화제가 됐다. 비밀리에 북한의 공작원이 우리나라에 침투했다는 점과 권총으로 살해한 대담함에 시민들도 크게 놀랐기 때문이다.  

황장엽 비서 노린
탈북 위장 암살단도


망명자 중 최고위 직책을 갖고 있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도 항상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1997년 망명한 황 비서의 경우 그를 암살하라는 지시를 받고 탈북자로 위장해 들어온 암살단 김명호·동명관(2010년 4월), 이동삼(2010년 10월)이 테러 실행 직전에 검거되었다. 

대북 전단살포 등의 반북 활동을 하고 있는 박상학씨의 경우 지난 2011년 9월 독침 테러를 당할 뻔했다. 당시 그에 독침 테러를 시도한 탈북민 안학영은 체포됐다. 이듬해 9월 박 씨를 제거하기 위해 침투했던 보위성 간첩 김영수도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중국에서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집단 탈북 한 4월 이후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북·중 접경지역에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한 테러단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은 식당종업원 집단귀순에 대해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테러단 파견을 지시, 우리 국민에 대한 위해를 시도했다”라며 “북한 공작기관들은 고위급 탈북민 및 반북 활동을 전개하는 주요 탈북민을 제거할 목적으로 실제 테러를 감행한 사례가 있다”라고 말했다. 

당시 통일부 당국자는 2016년 7월 15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렸다고 밝힌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 “어린이 유괴에 가담했다”고 자백한 탈북민 출신 고현철 씨 등 3명이 최근 납치된 것으로 정부가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편 김정남 씨 피살 사건으로 일반 탈북민들도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동안 신문·방송에 꾸준히 얼굴이 노출돼 온 탈북민들의 근심과 걱정은 더 크다. 김 씨 피살 사건 직후 여러 언론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이들을 인터뷰 하다 보니 이들의 집이나 직장 등이 노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