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권력의 채권단… 경영권 쥐고 흔들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김철년 성동조선해양 사장(사진)이 지난달 24일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했다. 2015년 12월 1일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1년3개월여 만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구조조정 성과 미흡과 수주 부진 등의 문책성 인사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스스로 사표를 제출해 물러난 것이지만, 채권단 측의 무언의 압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현재 수출입은행은 후임 사장을 물색하고 있지만, 누가 후임으로 오든 임기를 다 못 채울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채권단과 자율협약 이후 임기를 채운 사장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김 전 사장 취임 당시 성동조선해양은 조선 산업 경기 악화, 파생상품 부채 및 시설투자로 인한 금융비용 부담 등 재무구조 악화로 인해 같은 해 말 기준 1650억6100만 원의 순손실이 발생했다. 유동부채는 유동자산보다 1131억2800만 원, 총부채는 총자산보다 1조3705억9700만 원이 각각 많은 상황이었다. 악화된 대외 환경에서 사업구조나 수익구조 모두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었던 셈이다. 경영개선 실적은 5년 연속 최하등급을 기록할 정도로 부진했다.
 
삼성중공업 출신인 김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이제 채권단으로부터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며 인위적 구조조정보다는 전 종업원이 각자 10%씩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며 일을 더 하는 ‘텐·텐·텐’ 운동을 제안하는 등 전사적인 노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번 김 전 사장의 사임이 미흡한 구조조정 결과에 대한 책임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해석이다. 일부에서는 문책성 인사가 아니었겠느냐는 추측도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성동조선에 대한 한국수출입은행의 경영관리 부실을 지적했다. 성동조선의 지분 70.6%(최대 주주)를 보유한 수출입은행이 6년째 자율협약 상태에 있는 성동조선에 1조8000여억 원의 자금을 쏟아붓고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서다.
 
수출입은행은 현재 성동조선의 신임 사장을 물색 중이다. 성동조선은 당분간 오은상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와 최한일 조선소장(부사장)이 직무권한대행 체제로 운영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후임 사장이 누가 됐든 임기를 다 못 채울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지난 회사가 자율협약에 들어간 이후 임기를 채운 사장이 거의 없다는 게 이유다. 성동조선은 조선경기 침체와 경영 부실 등의 이유로 2010년 4월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하고 관리를 받고 있다. 2011년 취임한 하성용 전 사장이 유일하게 임기가 만료돼 물러났다.
 
하 전 사장의 뒤를 이은 김연신 전 사장 역시 임기 중간에 물러났다. 영업본부 부사장이었던 김 전 사장은 2014년 6월 사장으로 승진한 지 1년2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그의 사임은 전년 말 예정됐던 출자전환이 무역보험공사의 반대매수권 청구로 지연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무역보험공사 측이 출자전환을 앞두고 실시된 성동조선해양 실사 내역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며 채권단에서 이탈함에 따라 출자전환이 지연됐다.
 
김 전 사장이 사임한 뒤 공백은 정광석 전 생산총괄사장이 메웠다. 하지만 정 전 사장도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그는 임기 6개월 만에 돌연 사임했다. 정 전 사장은 취임 이후 성동조선해양이 회생하는 데 기여할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실제로 구조조정과 대규모 수주에 잇달아 성공하는 등 경영 정상화에 점점 속도를 내던 차였다. 2014년 44척을 수주하는 데 성공, 2조6000억 원 규모의 수주실적은 연초 목표를 초과 달성한 바 있다. 그럼에도 당시 그가 사임한 배경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때문에 채권단에 집중된 경영 권한에 대한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업계에서는 인사권 행사 등 전문경영인으로서 활동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회사 의사결정에 관한 모든 사항은 채권단 결정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간 성동조선의 대표이사들은 조선업계에 잔뼈가 굵었던 인물들”이라면서 “업종 특성상 성과가 1, 2년 안에 바로 나타나기 어려움에도 지나치게 단기적으로 경영진을 판단한 부분이 없지 않다”고 밝혔다.
 
수출입은행 등 금융권 출신 임원들이 조선업계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에 경영 정상화에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앞서 수출입은행 출신 임원 2명이 2013년 은행 퇴직 다음 날 성동조선의 감사와 사외이사가 되기도 했다.
 
수출입은행은 지난 2015년까지 수출입은행 퇴직자 9명이 성동조선해양에 취업했고 올해 2명이 추가로 입사했다. 이 퇴직자들은 대부분 성동조선해양에서 경영관리단을 맡았다.
 
이런 점이 논란으로 부각되자 이덕훈 당시 수출입은행장은 “성동조선해양에 외부 출신인 구조조정 전문가를 즉각 파견하고 수출입은행의 퇴직자가 재취업하는 행위를 금지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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