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창회에 갔다가 예전에 인기가 많았던 여학생을 만났다. 그녀는 학창 시절 많은 남학생의 마음을 설레게 할 정도로 미모가 수려했다. 그런데 그 미모에 대한 집착이 지나쳤던지 지금의 모습은 성형 부작용 때문에 약간은 흉측하게 느껴졌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다. 그녀를 보면서 오히려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모습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그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다른 나라에서 전혀 시행하지 않는 제도를 너무 쉽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그 배경에는 경쟁적으로 법안 발의를 해서 이름을 떨치고 싶어 하는 국회의원들의 공명심과 포퓰리즘에 너무 쉽게 넘어가는 가벼운 국민성도 한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김영란법을 도입했다. 도입 당시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지만 도덕적 해이감이 만연한 한국에서는 어쩔 수 없는 극약처방이라는 대세가 힘을 얻었고, 그런 분위기 에서 헌재에서도 합헌 결정을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떤가? 지금 자영업자들은 거의 파산 직전이고 목숨을 끊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다. 과연 그들에게 3만 원짜리 밥이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렇게 힘든 현실을 견뎌야 할까?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란 말이 있다. 독일의 철학자인 옐리네크(Jellinek) 가 한 말인데 필자가 법대 1학년 법학개론 시간에 들은 내용이다. 우리는 법을 도덕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닌가? 세상에는 도덕적인 부분도 필요하지만 도덕적이지 못한 부분도 우리의 민낯의 일부 아닐까? 비도덕적인 것이라도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해가 되지 않는다면 때로 세상이란 거대한 수레바퀴를 돌리는 데 필요한 윤활유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식당, 치킨집, 동네 술집, 꽃집, 노래방 등이 과연 이 시대의 거악(巨惡)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소악을 척결하여 거악의 뿌리가 과연 뽑힐까? 최순실 같은 사람들이 과연 김영란법을 무서워할까? 혹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워먹는 것은 아닐까? 서민들에게는 너무 어렵고 먼 얘기일지도 모르는데 정작 왜 그들이 피해를 입어야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형법과 공직자윤리법 등으로 부족해 김영란법을 제정한 것이 혹시 과유불급의 우를 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법은 거미줄이란 말이 있다. 힘 없는 곤충은 잡을 수 있지만 힘 있는 새는 뚫고 지나간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애꿎은 서민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법이라면 재고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면 적어도 대폭 손질을 하여 현실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어느 의대 교수와 만나 차 한잔을 했다. 그는 김영란법 때문에 교수들이 외국에서 행사하는 컨퍼런스에 참석할 수가 없다고 한다. 통상 그런 회의는 외국 기업에서 참여할 교수들의 여행경비까지 부담해주는 것이 세계적인 통례인데 우리나라 교수들만 김영란법의 족쇄 때문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소연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학술 발전에도 분명 저해요소가 될 수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망신거리이다.

다른 OECD 국가들은 그럼 다 민족성이 좋거나 선천적으로 윤리적이어서 김영란법이 필요하지 않은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세계 일등 국가인 미국의 경우 세계 온갖 민족들이 잡탕밥처럼 어우러졌고, 문맹률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그런 나라에서조차 김영란법 같은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라고 깨끗하고 청렴한 것이 좋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이 규율하는 분야와 도덕이 규율하는 분야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작년 여름 필자가 평소 친분 있는 미국대사관의 고위공직자 집에 놀러간 적이 있다. 마침 그는 본국으로 송환된 상태라 짐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한국 그릇 한 세트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그 가격이 약 6만원 상당인데 그 공직자는 그것을 대사관 측에 신고하면서 자신의 이사짐에서 빼는 것이었다. 필자가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었더니 내부 규정 때문에 그런다고 하면서, 만약 이를 어기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지켜본 필자는 우리나라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공직자들의 부조리를 규율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코 서민들의 경제에 영향을 끼치지 아니하면서 공직자의 윤리는 내부적으로 조용하게 규율할 수도 있는데 우리의 경우는 너무 요란하고 국민 전체에 불편을 주는 것 같다.

자연스러운 얼굴에 적당히 영양을 주고 피부마사지만 해도 충분히 탄력 있는 피부와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도 있을텐데 단기간 내 예뻐지려는 지나친 욕심에 필러와 보톡스를 심하게 맞을 경우 성형부작용이라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최근에는 대선후보자들이 너도나도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고위공직자수사처라는 제도 도입을 운운한다. 그 경우 검찰과 특검에 이어 세 개의 검찰이 동시에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한 나라의 근간이 되는 제도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토론 속에서 무겁게 정착되는 것이지 다른 나라에서조차 검증되지 않은 제도를 미봉책으로 너무 쉽게 도입하는 것은 성형 부작용 이상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민구 변호사 이력>
 
[학력]
▲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 미국 노스웨스턴 로스쿨 (LL.M.) 졸업
▲ 제31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21기)
▲ 미국 뉴욕주 변호사 시험 합격
 
[주요경력]
▲ 법무법인(유) 태평양 기업담당 변호사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부 검사
▲ 법무부장관 최우수검사상 수상 (2001년)
▲ 형사소송, 부동산소송 전문변호사 등록
▲ 現) 부동산태인 경매전문 칼럼 변호사
▲ 現) TV조선 강적들 고정패널
▲ 現) SBS 생활경제 부동산법률상담
▲ 現) 법무법인(유한) 진솔 대표변호사
 
[저서]
▲ 형사전문변호사가 말하는 성범죄, 성매매, 성희롱 (2016년, 박영사)
▲ 부동산전문변호사가 말하는 법률필살기 핵심 부동산분쟁 (2015년 박영사)
▲ 뽕나무와 돼지똥 (아가동산 사건 수사실화 소설, 2003년 해우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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