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카페에 기본적으로 있는 커피메뉴는 아메리카노를 비롯하여 카푸치노, 카페라떼, 카페모카, 마키아또 그리고 각 카페 브랜드별 아이스메뉴까지 더하면 십여 가지에 이른다.

다양한 레시피로 만들어지는 이 커피메뉴들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재료가 있는데 바로 에스프레소다. 카페메뉴에 가장 기본이 되는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어로, ‘빠르다’ 란 뜻의 EXPRESS를 어원으로 두고 있으며 빠르게 추출해서 빠르게 마시는 커피이다.

커피를 빠르게 마시고 싶었던 이탈리아인들은 1906년 에스프레소 머신을 발명했고 그 이후부터 황금색 크레마가 올라간 에스프레소를 마시게 되었다. 에스프레소는 아주 오래된 패스트푸드인 셈이다.

에스프레소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보다 유럽에서 발달하여 확산되었다. 특히 이탈리아사람들은 이 에스프레소를 지독하게도 사랑한다.

이탈리아에선 아침에 빵과 함께 설탕을 살짝 넣은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즐기기도 하지만 보통은 스탠딩 테이블이나 바에 서서 짧은 시간동안 에스프레소를 즐기고 나선다.

대게는 카페에서 사서 마시지만 요즘은 집에서 모카포트로 직접 내리거나 가정용머신기로 에스프레소를 내려 마시기도 한다. 카페의 커피머신보다는 작지만 알차게 몇 잔 정도는 거뜬하게 나온다. 이렇게 이탈리아에선 하루에 3~4잔씩 에스프레소를 즐긴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이탈리아에선 온전히 커피의 맛을 즐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예전에 타국에 있던 이탈리아 친구의 허름한 역 근처 카페, 하루에 수 백 잔을 내리는 낡은 기계, 거기서 급하게 추출되어 나오는 고향의 에스프레소 한잔이 너무 그립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타국에 에스프레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국의 카페에서 마시는 한잔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우리가 쌀밥과 김치를 먹고 힘을 내듯이 이탈리아에선 파스타와 왁자지껄하게 마시는 에스프레소 한잔이 매우 중요한 하루의 에너지원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가장 많이 팔리는 커피음료는 아메리카노다. 미국식 커피프랜차이즈가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식 커피문화를 받아들였고 머그잔 가득 연한 커피를 즐겨마시게 되었다.

그러나 유럽여행 중 들어간 카페에서 아메리카노가 없다는 것에 다소 당황한 순간을 만나기 쉽다. 특히 이탈리아는 에스프레소의 종주국답게 아메리카노를 파는 카페는 찾기가 어렵다.

메뉴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기보다는 4~5개 정도의 메뉴가 전부인 곳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다양성을 추구하기보다 원두자체의 향과 쓴 맛 뒤에 오는 개운함과 달콤함을 즐기는 소박한 문화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에는 화려한 향과 맛을 가진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들의 진출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비록 빠르게 추출되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발명하였고 짧은 시간동안 즐기지만 완강하게 그들의 커피문화를 고수하는 이탈리아.

변화에 느리고 기본을 지키며 전통을 사랑하는 정신은 문화유산에서도, 음식문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가끔은 저런 보수적이고 느린 정신이 우리한테도 있었으면 한다. 특히 갑자기 붐처럼 일었다가 속절없이 사라지는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을 보면서 말이다.

이성무 동국대 전산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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