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40일이 지났다. 청와대와 정부는 급속하게 문재인 독주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10년 만의 정권교체인 데다 인수위 없이 바로 정권을 인수받았음에도 정권을 운영해본 경험으로 빠르게 권력을 이양받고 있다. 반면 권력을 잡았지만 비주류인 비문인사들은 ‘코드인사’로 점철되는 정부 인선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사가 추미애 당 대표와 박영선 의원이다. 두 인사는 문 대통령 당선에 일조했지만 주류에 밀려 비주류의 인사 설움을 겪고 있다. 겉으론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외치고 있지만 ‘문재인식 OK화법’에 당한 정치인으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박영선 측근, “이상돈 파동, 文 대통령 자택까지 방문했는데…”
- 추미애 측, “文정부 아닌 민주당 정부라더니…” 당 추천 인사 ‘찔끔’


추미애 당 대표와 박영선 의원의 정치 궤적을 보면 너무나 흡사한 면이 많다. 일단 여성 중진 정치인으로 추 대표는 5선, 박 의원은 4선이다. 고향도 영남 출신으로 박 의원은 경남 창녕, 추 대표는 대구 달성에서 태어났다. 또한 처음부터 친노·친문이 아니었다. 박 의원은 정동영계로 추 의원은 구민주계로 살아온 당내 몇 안 되는 대표적 비주류 출신이다.

하지만 박 의원은 19대·20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대통령 만들기 위해 공동선대위원장직을 맡아 힘껏 도왔다. 친문세력의 지지를 받아 당 대표에 오른 추 대표 역시 19대 국민통합위원장, 20대 대선에서 단독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정권 교체에 일조했다.

추-박, 문 대통령 ‘벙어리 냉가슴 중’

이뿐만 아니다. 박 의원은 MBC 기자 출신이지만 의정활동 내내 ‘재벌 저격수’, ‘검찰 저승사자’로 역할을 했다. 비법조인 출신으로 법사위원회 간사 및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반면 한양대 법대를 나온 추 대표는 사시를 통과해 판사를 지내다 정치에 입문했다.

연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를 마치고 산자위와 법사위원을 지냈고 당에서는 경제정의노동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두 인사 모두 경제와 사법 개혁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현재 차기 법무부장관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두 인사의 정치적 행보와 컬러가 비슷하다 보니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민주당 경선에서 처음으로 격돌했다. 결과는 박 의원이 추 대표를 물리치고 당내 후보가 됐다. 하지만 당시 ‘안철수 현상’으로 뜬 박원순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 경선에 패하면서 서울시장의 꿈은 무산됐다. 장관행이 무산될 경우 서울시장 경선에서 재격돌이 예상된다.

당내 요직을 거쳤다는 점도 비슷하다. 박 의원은 2014년 5월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경선에서 69표를 얻어 59표를 받은 친문 대표 주자였던 노영민 현 주중대사를 꺾고 원내대표에 올랐다. 반면 추 대표는 2016년 8월 친문 대표 주자가 부재한 가운데 치러진 당대표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문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표로 당선됐다.

두 인사의 공통점은 원내대표와 당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친문 인사들과 사사건건 부딪쳤다는 점이다. 또한 굵직굵직한 사건 전에 문 전 대표와 사전 조율이 됐다고 주장했지만 문 전 대표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당해야 했던 아픔을 갖고 있다.

박 의원은 원내대표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을 이끌 당시 두 사건으로 크게 친문들과 충돌하면서 사이가 멀어졌다. 하나는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두고 벌어졌다. 강한 원내대표 상을 기대했던 친문 강경파들은 박 원내대표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제외하자는 여당의 주장대로 합의해 특별법을 통과시키면서 마찰을 빚었다.

당시 박 원내대표 측근은 사전에 특별법 합의 관련 최대 주주인 문재인 전 대표와 사전에 협의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문 전 대표는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바로 세월호 농성장으로 가 단식농성을 하면서 책임론에서 벗어났다. 또 다른 사건은 7.30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패해 당 대표였던 김한길·안철수 두 공동대표가 물러나면서 박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직을 겸하게 되면서 발생했다.

이에 친문 세력들은 박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 겸직에 반대했고 이에 박 의원은 조국 현 민정수석을 비대위원장직으로 영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서울대에서 ‘휴직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놓으면서 조 수석은 고심 끝에 고사했다.

이에 박 원내대표 겸 비대위원장은 안경환 서울대 교수(낙마한 전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접촉했고 안 교수는 이상돈 중앙대 교수(현 국민의당 비례대표 의원)와 공동비대위원장직을 조건으로 승낙했다.

하지만 이 또한 친문 인사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친문 강경파들은 새누리당 비대위원 출신인 이 교수의 영입은 ‘당을 팔아먹는 행위’라고 공격했다. 정청래, 최민희, 김광진 등 당내 50여 명의 강경파 친노·친문인사들의 반대가 거셌다.

결국 박 원내대표 측은 “문 전 대표와 사전 조율된 인사”라고 반박했지만 단식농성 발언까지 나오면서 2014년 9월16일 한 달 만에 비대위원장에서 내려왔고 10월 초 세월호특별법 협상을 마무리하고 원내대표 자리도 사퇴했다.

당시 박 원내대표와 지근거리에서 일했던 한 당직자는 “애초 이상돈 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모셔올 당시 박 원내대표가 직접 통화를 했고 문 전 대표 역시 이 교수와 통화해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내가 알기로 친문 인사들이 하도 반대하고 문 전 대표가 ‘모르쇠’로 일관해 홍은동 자택까지 박 원내대표가 찾아가 문 전 대표를 만나 ‘오해 좀 풀어달라’고 말했지만 문 전 대표는 기존 입장과는 달리 ‘친문은 없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입법기관인데 어떻게 막을 수 있냐’며 다른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추미애 당 대표도 비슷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추 대표는 2016년 8월 당 대표에 오른 이후 그해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탄핵분위기를 무마하기위해 여야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추 대표는 야당중 유일하게 단독 영수회담 하겠다고 밝히면서 친문 인사들과 충돌했다.

최고위나 의총의 의견수렴 없이 이뤄졌다는 비판이 일었다. 급기야 추 대표는 오전에 ‘단독회담’을 언급했다가 오후에 ‘백기’를 들었다. 이 당시에도 추 대표 측에서는 문 전 대표와 사전 조율이 됐다고 말했지만 문 전 대표 측은 이를 부인했다.

추 대표와 친문 간 충돌한 또 다른 사건은 ‘인사추천위’ 당내 설치를 두고 발생했다. 문 대통령 후보 시절 공사석에서 추 대표에게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당 지도부와 인사와 정책을 공유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이에 추 대표는 당내 중앙위를 소집해 인사추천위를 당내 구성해 새정부 인사에 당이 인사를 추천할 수 있도록 시도했다. 하지만 당내 주류세력은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당·청 간 갈등으로 비쳐질 수 있다’고 중앙위 소집 자체를 반대해 무산됐다.

文 대통령과 ‘독대’한 사람들의 ‘한탄’

민주당에서 비주류로 전 고위 당직을 지낸 한 인사는 “안철수 전 대표를 비롯해 손학규, 박지원, 윤여준, 김종인, 이상돈 등 민주당을 떠난 사람들의 한결같은 지적이 ‘문 전 대표와 독대할 때는 반드시 녹음을 해야 한다’는 넋두리를 한다”며 “앞에서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천성 때문인지 모르지만 ‘알았다’, ‘좋다’고 해놓고 다른 입장을 내놓는 것은 리더로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국내정치에서는 통할 수 있지만 한미정상회담 등 국제적 행사에서 정상 간 단독회담을 할 때 ‘OK화법’은 구사할 경우 외교적, 경제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감을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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