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 없음.
경기도의 한 지역에서 치정 문제로 얽힌 남녀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40대 남성이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이유로 내연남과 아내를 차례로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이 같은 ‘치정 살인’이 잇따르면서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해마다 46명가량이 연인의 손에 목숨을 잃고 있다. 이른바 ‘데이트 폭력’부터 치정 살인에 이르기까지, 남녀 간의 사랑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20일 경기 화성의 한 아파트에서 남녀 시신 3구가 발견됐다. 이날 오후 2시 10분경 A(42)씨는 화성 동탄신도시 내 자택에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아내와 내연남을 살해했고, 나도 곧 따라 죽으려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해당 아파트에 출동해 안방 화장실 안에서 A씨와 부인 B(39)씨가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명 모두 목에 흉기 상흔이 있었다.
 
경찰은 또 지하 주차장에 세워진 B씨 명의의 차량 조수석에 이불로 싼 또 다른 남성 C(39)씨의 시신을 찾아냈다. 이 남성도 흉기로 목이 찔려 숨진 상태였다. 사인은 흉기 상흔에 의한 과다출혈이었다. 경찰은 전날 오전 11시께 A씨가 아내 명의의 차를 타고 아파트에서 나와, 낮 12시 20분께 서울 마포구 모처에서 C씨와 만나 차 안에서 C씨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오후 1시 40분께 자신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도착해 집으로 올라간 뒤 112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A씨가 C씨를 만나러 가는 동안 B씨가 C씨에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던 점 등으로 미뤄 A씨가 B씨를 먼저 살해한 뒤 C씨를 만나러 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씨 부부의 시신이 있던 화장실 안에서는 범행에 사용된 흉기도 발견됐다. 화장실 안에 A4용지 절반 크기의 메모지 6장에 “아내가 내연남을 만나고 있었고, 둘을 살해한 뒤 따라 죽으려 한다. 남은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경찰은 A씨가 남긴 유서 내용을 토대로 치정에 얽힌 살인 사건일 가능성이 큰 셈이다. B씨와 C씨는 지난달 직장에서 만나 서로 알게 된 사이로 조사됐다.
 
지난해 이와 유사한 사건이 전남 고흥에서도 발생했다. 지난해 8월 9일 새벽 D(68)씨는 같은 한센인 마을에 거주하는 E(60)씨와 F(65)씨를 차례로 살해하고 자해를 시도했다. D씨는 응급 수술을 받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경찰에서 D씨는 “F씨가 (사실혼 관계의) E씨를 자주 만나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D씨는 2010년 한 병원에 입원하고 이 마을에 거주했으며 E씨와는 사실혼 관계였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F씨와의 관계를 의심해 자주 다툰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이 일어난 날 새벽 D시는 인근 여성 거주지에서 홀로 살고 있는 E씨의 집을 찾아 이 문제로 다투다가 E씨의 집에 있는 흉기로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곧바로 F씨의 집을 찾아갔고 때마침 외출 중인 F씨를 집에서 기다렸다. 외출하고 돌아온 F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자신의 배를 찔렀다. F씨의 집 앞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D씨를 목격한 마을 주민이 경찰에 신고했고, D씨는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밖에도 지난 5월 충북 청주에서 두 남녀가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대전에서, 2015년엔 울산과 여수 등에서도 치정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남녀 간의 애정 문제는 스스로 풀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막을 수 있는 사건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치정에 얽힌 살인 사건의 경우 대다수가 이른바 ‘데이트 폭력(연인 간 폭력)’으로 시작된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인 간 폭력 사건으로 입건된 사람은 8367명으로 집계됐다. 2015년 7692명보다 8.8% 늘어난 수치다. 이 가운데 구속된 사람은 449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연인을 살해하거나 미수에 그쳐 검거된 사람은 52명에 달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233명이 연인에 의해 숨졌다. 해마다 46명가량이 연인의 손에 목숨을 잃는 셈이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각 경찰서에 ‘데이트 폭력 근절 특별팀’을 운영하는 등 데이트 폭력에 엄정히 대응하고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연인 간의 치정 문제는 개인의 원한, 채무관계와 함께 주요 살인 범죄 동기 중의 하나”라면서 “순간적인 배신감과 절망감이 조절되지 못해 극단적인 폭력으로 이어진 범죄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이어 “연인 간의 갈등은 상대에게 갑자기 큰 충격을 주지 말고 단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주변 사람에게 문제를 알리고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과 논의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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