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에나 쓸 수 있는 ‘적폐’ …정교한 언어 아냐
- 공무원 조직의 문제를 점검할 필요 있다!
 

해양수산부에서 ‘세월호 유골 은폐’ 의혹이 발생했다. 17일에 발견된 뼈를 21일에야 선체조사위원회에 보고하고 22일에야 국과수 감식을 요청했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보고된 시점은 20일, 미수습사 가족에게 관련 사실이 고지된 것은 22일이었다 한다. 23일엔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물론 이낙연 국무총리까지 대국민 사과를 했다.
 
공무원들이 무슨 생각으로 보고를 늦췄는지, 이 문제에 관해 김영춘 장관이나 현 정부가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직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세월호 참사 때 벌어졌던 일들을 다시 한 번 성찰해 보고, 우리가 바꿔 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 문제에 대해 현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가장 부각시키는 문제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무능일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변명의 여지는 없다. 평소 업무에 태만했던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고, 참모들은 대통령의 판단을 이끌어 내지도 못하면서 보고용 자료를 만들기 위해 우왕좌왕했다. 나중에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당일의 보고 시점을 수정하는 추태를 보였다. 그들이 평소 어떤 식으로 업무를 처리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것이 세월호 참사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세월호 기록팀 ‘진실의 힘’에서 펴낸 700쪽짜리 책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검토해 봤을 때, 세월호 참사의 문제는 간단하게 말한다면 침몰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다.
 
만일 세월호참사
文정부 때 벌어졌다면...

 
우리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구할 수 있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배가 침몰하기 전에 충분히 구할 시간과 기회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배가 침몰한 이후에는 어떠한 비상하고 도박적인 수에 운명을 맡겨보는 식의 결단이 가능했을 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구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만약 문재인 정부였다면, 세월호 참사 대처에 대해 박근혜 정부와 크게 달랐을까? 이렇게 묻는다면, 침몰 이후의 상황에서는 확실히 달랐다고 예측할 수 있다. 대통령을 포함한 책임 있는 위인들이 좀 더 빨리, 좀 더 자주 현장에 나타나 실종자 가족 및 유족들과 의사소통을 했을 것이다.
 
책임 소재를 면하기 위한 언론 플레이를 하기 보다 현장 상황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고 대처를 강구했을지 모른다. ‘에어포켓’이니 ‘다이빙벨’이니 하는 소동을 거치지 않았을 것이고, 당시 그랬던 것보다 실종자를 구출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좀 더 일찍 접게 되었을지 모른다.
 
이후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고 활동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문재인 정부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청와대는 당일에 우왕좌왕했을지는 몰라도 무언가를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특조위가 여야 합의로 훨씬 수월하게 구성되었을 것이고, 참사에 대한 조사가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유가족들이 느꼈을 슬픔이나 울분도 훨씬 줄었을 것이다. 숱한 단식투쟁도 없거나 훨씬 줄었을 것이고, ‘일베’가 광화문에 나타나서 폭식 투쟁을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침몰 이전 상황 말이다. 과연 문재인 정부라면 선장과 선원이 배를 버리고 도망가는 상황에서 책임감 없는 해경을 잘 조율하여 침몰 이전 하선하지 못한 승객들을 인솔하여 나올 수 있었을까?
 
‘침몰 이전 상황’에 대한
성찰 중요
 

이에 대한 대답을 굳이 한다면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 문제에서 우리가 고쳐야 할 것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사실 요즘 자주 쓰이는 ‘적폐’란 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담화를 하면서 그 말을 사용했다. 정치적 해석을 곁들이면, ‘박근혜 정부 책임만은 아니다’란 얘기였다. 그랬던 그 말이 오늘날엔 현 정부가 전임 정부의 유산들을 공격하는 어휘가 되었다.
 
‘적폐’란 말 자체엔 뚜렷한 의미가 없다. 무엇이 잘못인지, 어떻게 고쳐야 할 것인지를 지시한 단어가 아니다. 현 정부가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은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말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모든 구체적 문제가 그렇겠지만, 특히 세월호 참사 문제에 대해선 그런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진실의 힘’의 진단으로 충분히 구할 수 있었던 승객들이 하선하지 못했던 이유를 치열하게 따져야만 한다.
 
기록으로 봤을 때엔 현장에 있던 해경이나 그들과 교신한 정부 인사 중 누구도 ‘내가 책임질 테니 사람들을 살리는 쪽으로 가자’는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 없었다. 거의 유일하게 ‘일단 사람들을 내보내자’고 요구한 것이 참사 해역 주변을 지나던 유조선 둘라에이스호의 선주였다.
 
그는 스스로 선주였기 때문에 공무원 조직의 책임논리에도, 회사에도 이해관계가 없었다. 만약 그런 사람만이 비상시 상식적이고 책임감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 현재의 한국 사회라면, 그것 자체로 심각한 문제다.
 
높은 직무안정성과 국민연금보다 훨씬 좋은 공무원연금 덕에 양질의 젊은이를 빨아들이는 공무원 조직이, 유사시엔 모두가 책임면피를 위해 움직이는 ‘바보들의 행진’을 벌인다는 얘기가 되니 말이다.
 
국가적으로 볼 때 엄청난 비효율이 사람 목숨도 못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바뀐 다음에도 해양수산부에서 불거진 ‘유골 은폐’ 논란은, 이런 식으로 ‘적폐’의 구체적 모습을 바꿔 나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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