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최근 치매 환자가 범죄를 저지르거나, 범죄의 표적이 되는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지난 29일 평소 치매를 앓던 70대 남성이 집안에 불을 질러 두 사람이 크게 다쳤고, 한 70대 노인이 부인을 때려 숨지게 하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특히 치매 환자가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해 범행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발생하는 만큼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9일 서울 시흥동의 한 아파트 2층에서 불이나 20여 분 만에 진화됐다. 이 화재로 노부부인 A(74)씨와 B(69·여)씨가 화상과 연기흡입으로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다. 현재 A씨는 의식이 없는 상태며 B씨는 전신에 2~3도 화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이 불은 방화로 인한 화재로 추정된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남편 A씨가 인화성 액체를 거실 바닥에 뿌려 불을 질렀다고 진술했다. 현장감식에서도 화재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너(일명 신나)통 한 개가 발견됐다. 화장실에서도 추가로 부탄가스 통이 나왔다.
 
A씨는 평소 치매를 앓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번 화재와 A씨의 지병이 관련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경찰은 범행 동기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방침이다.
 
지난달 25일에는 치매를 앓던 70대 노인이 부인을 때려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C씨는 이날 오후 11시 8분경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있는 자택에서 아내 D씨의 머리 등을 우산과 지팡이 등으로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평소 의처증이 심했던 C씨는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부터 치매증세를 보여 왔다고 전해진다. 그는 아내가 노인정 등에서 다른 노인과 친하게 지낸다고 의심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치매 환자가 범죄의 대상이 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치매를 앓는 부친을 폭행해 숨지게 한(존속상해 치사 혐의) 아들이 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경미한 정신지체와 간질을 앓고 있는 최 씨는 지난 6월 치매를 앓는 부친(70)의 얼굴을 주먹으로 수차례 때려 숨지게 했다. 최 씨는 평소에도 부친이 같은 말을 반복, 자신을 귀찮게 한다며 폭행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의 한 요양시설에서는 80대 남성이 치매에 걸린 처제를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사건도 있었다. 해당 시설 관계자는 이를 쉬쉬하다가 경찰과 지자체가 조사에 나서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처럼 치매 환자가 범죄에 노출되는 사례가 증가함에 따라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현재까진 치매를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의학 기술은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치매 가족을 돌보는 간병인의 고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가족은 정신적·경제적 이중고를 겪는다.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늘어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환자 본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상대방을 가족으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데 대한 행동, 즉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게 위험으로 작용한다.
 
이 관계자는 “치매 환자를 돌봐주는 요양병원은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가족을 입원시켰다는 부담을 져야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까지 얻을 수 있다”며 “극단적인 경우 앞선 사례가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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