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지문 감식의 현주소… 60여 년간 눈부신 기술 발달
전 국민 주민등록 정보 활용… 신속 수사에 큰 기여

 
시대가 변화하면서 범죄 양상도 날로 지능화되는 양상이다. 인권이 중시되면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증거의 중요성도 날로 커지고 있다. 그간 계속 발전해 온 다양한 과학수사 기법은 이 같은 범죄 환경에 대응하는 수사기관의 중요한 무기가 됐다.
 
서울 구로경찰서 형사과에는 지난해 3월까지 꽤 신경쓰이는 ‘숙제’가 있었다. 5년여 전인 2010년 11월 14일 구로구 한 편의점에서 발생한 특수강도미수 사건이었다. 사건 자체는 단순했다. 그날 오후 9시 40분께, 흉기를 든 한 남성이 편의점으로 들어와 종업원을 위협하고 금품을 빼앗으려다 실패해 달아났다.
 
평범한 편의점 강도 사건이지만, 구로서 형사들이 범인 검거 의지를 다진 것은 단지 해결되지 않은 미제사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편의점 폐쇄회로(CC)TV 동영상에 잡힌 피해자의 겁에 질린 모습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아서였다.
 
피해자는 당시 불과 20세였던 여종업원이었다. 파일을 내려받은 것이 아니라 PC 화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해서인지 화질이 나빠 표정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영상을 본 형사들은 범행 당시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감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범인은 모자를 눌러쓴 채 종업원 혼자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음료수를 사는 척 계산대 위에 올리고 담배를 주문했다. 종업원이 뒤편 진열대에서 담배를 꺼내 돌아서는 순간 흉기를 들이댔다. 다른 손님이 들어오려 하자 흉기를 휘둘러 쫓아버렸다. 편의점 안에는 종업원과 범인 둘밖에 없었다.
 
범인은 종업원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머리채를 잡고 머리를 계속 눌러댔다. 그러다 한쪽 구석에 종업원을 팽개치고는 계산대 금고를 열려 했다. 조작법을 모르는지 계속 실패하던 범인은 결국 돈을 꺼내지 못했다. 그는 겁에 질려 구석에 웅크린 종업원을 두고 황급히 편의점을 빠져나갔다.
 
처음에는 범인 검거가 어렵지 않아 보였다.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인 지문이 음료수병에서 채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등록 국민 지문 데이터베이스(DB)에서는 일치하는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 주민등록을 하지 않은 한국인이 아니면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이라는 뜻이었다.
 
결정적 증거인 지문을 활용할 수 없자 경찰은 편의점 주변 CCTV를 뒤졌다. 지금은 사설 CCTV까지 수두룩한 곳이지만, 당시에는 CCTV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CCTV 영상을 돌려 보며 추적했으나 범인은 어느 순간엔가 종적을 감췄다. 인상착의가 비슷한 이들에 대한 탐문도 소득이 없었다. 수사는 벽에 부딪혔다.
 
시간이 흐르는 사이 미제로 남은 이 사건은 구로서 강력 6팀이 넘겨받았다. 밀려드는 다른 사건들을 처리하면서도 이 사건을 잊지 않던 그들에게 지난해 3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유일한 증거였던 음료수병 지문의 주인이 확인됐다는 소식이었다. 정부는 국내 입국하는 17세 이상 모든 외국인의 지문과 얼굴 정보를 등록하는 제도를 2012년부터 시행했다.
 
2014년에는 외국인 지문·사진정보가 전산망으로 경찰청과 연결됐다. 강력 6팀은 경찰청에 음료수병 지문 재검색을 의뢰했다. 국내 체류하는 중국동포 장모(37)씨의 지문이라는 회신이 왔다. 범행 이후 중국을 여러 차례 드나든 기록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지문과 얼굴이 등록된 듯했다.
 
수사는 5년여 만에 급물살을 탔다. 장 씨의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소재 추적 결과 그가 경기도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3월 24일, 강력 6팀 전원이 검거에 투입됐다. 일터에서 형사들을 마주친 장 씨는 담담하게 체포영장 집행에 응했다.
 
“잘못했습니다. 저도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였다. 구속된 장 씨에게는 탈북민 출신 아내와 어린 딸이 있었다. 형사들은 탈북민 지원단체에 요청해 이들 모녀가 생계 도움을 받을 방법을 마련해 줬다.
 
지문 감식은 가장 널리 알려진 과학수사 기법이다. 지문은 사람마다 다르고, 한 사람의 지문도 손가락마다 다르다. 평생 형태가 변하지도 않는다.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지문 일치 여부는 DNA와 더불어 가장 확실한 근거다.
 
한국의 지문 감식 역사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내부무 치안국에 ‘감식과 지문계’가 설치된 1948년 11월 시작됐다. 일제 강점기 일본 경찰도 범죄자 지문을 축적했지만, 경찰은 지문계 설치를 공식적인 시초로 보고 있다.
 
초기에는 다른 방법으로 피의자 신병이 확보됐을 때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과 실제 피의자 지문을 1대 1로 대조, 동일인 여부와 범죄 관련성을 확인했다.
 
1963년 각 시·도 경찰국 수사과에 ‘감식계’가 신설되고서는 ‘1대다(多)’식 지문 검색이 가능해졌다. 종전에 축적된 범죄자 지문 자료를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현장 지문과 대조, 같은 지문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1964년 제도화한 이 방식을 ‘일지지문제도’라 하는데, 한국 과학수사 역사에 중요한 계기로 거론된다.
 
구로경찰서의 사건 해결 과정에서 보듯, 한국에서 지문 감식 기법의 빠른 발전은 법·제도의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했다. 입국 외국인 지문을 등록하게 한 제도 덕분에 종전에 활용되지 못한 지문 증거가 비로소 빛을 발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8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때 좌우 엄지손가락 지문을 날인하게 하는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1975년에는 열 손가락 지문(십지지문)을 등록하게 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국가가 사실상 전 국민의 지문 정보를 보유할 법적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경찰은 이렇게 축적된 지문 정보를 용의자 특정이나 변사자, 행려병자 등의 신원 확인에 활용하고 있다.
 
주민등록상 지문 정보를 국가에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하고 이를 경찰이 상시 활용하는 것은 전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태도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러나 한시라도 빨리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수사기관은 수사 목적에 한해서라면 국민 지문 정보를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송하성 경기대 교수(한국공공정책학회 회장)은 “실종자나 치매 환자 신원 확인 등 민생치안 분야에서 지문은 매우 유용하게 활용된다”며 “한국 경찰의 지문 감식 기술은 1948년 이후 큰 발전을 거듭했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미국 등 수사 선진국에서도 한국의 지문 감식 기술 역량을 인정할 정도다. 오늘날에는 앞선 기법을 개발도상국에 수출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며 “국내에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현장 지문 재검색으로 살인, 강도 등 중요 미제사건을 해결한 사례도 무려 374건에 이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