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인재(人災)인가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 21일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망자가 29명을 넘어섰다. 지난 2월 경기 화성시 동탄 상가 화재(4명 사망‧48명 부상) 이후 10개월 만의 ‘대형화재’ 참변이다.

사망‧부상자 각각 29명···소방 당국 부실 점검 논란
사다리차 투입 지연으로 인명 피해 늘어


지난 21일 오후 3시 50분경 제천시 하소동 지상 8층 지하 1층 연면적 3813㎡ 규모 스포츠센터 1층 필로티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발화한 불은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져 많은 인명 피해를 냈다. 현재 사망자와 부상자는 각각 29명이다.

일반적으로 사망자가 5명 이상 발생하거나 사상자가 10명 이상 발생한 화재를 ‘대형화재’라고 일컫는다. 이날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도 사망자가 29명이나 발견되며 또 하나의 대형화재로 분류 된 셈.

10개월 전인 지난 2월 4일 경기 화성시 동탄 메타폴리스 상가건물 3층 뽀로로파크 철거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철거작업 중이던 A씨 등 4명이 숨지고 48명이 연기를 마셔 다쳤다. 화재 원인은 산소절단 작업 중 발생한 불티가 가연성 물질에 튀어 발생한 것으로 감식결과 확인됐다.

지난 2015년 1월 10일 의정부에서는 오토바이에서 발생한 불이 건물 주차장으로 옮겨 붙어 대형 인명 피해를 낸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오토바이에서 발화돼 이후 건물 주차장으로 옮겨 붙으면서 건물 4채에 막대한 피해를 준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이 화재로 5명이 숨지고 139명이 부상당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1971년 12월 25일 발생한 대연각 호텔 화재가 꼽힌다. 이는 역대 최악의 건물 화재 사고로, 1층 커피숍에서 프로판 가스 폭발 화재가 발생해 한 시간 만에 건물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166명이 죽고 68명이 다쳤다. 희생자 중 38명은 불길을 피해 뛰어내리다 추락사했다. 소방 출동은 빨랐으나 당시 고가 사다리가 7층 위에는 닿지 않아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

1974년 11월 3일에는 서울 청량리에 있는 복합상가 ‘대왕코너’에서 화재가 발생해 88명이 숨졌다. 6층 조명등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해 순식간에 같은 층 나이트 클럽을 모두 태우며 위층으로 번졌다. 연기가 스며들자 손님들이 하나뿐인 회전식 출입문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몰려 ‘병목현상’이 일어나 대피가 지연됐다. 종업원들은 화재 상황에도 돈을 지불하라며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아 피해는 더욱 커졌다.

이 같은 대형화재들의 원인이 인재(人災)로 밝혀지면서 이번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또한 인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견된 참사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터져 나오는 형국이다.
 
소방 안전 점검
통과했는데...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은 지난달 소방당국의 소방안전점검을 통과한 것으로 확인돼 소방 당국을 향한 원성도 높아지는 상황.

지난 22일 제천시청사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연 이근규 제천시장은 “스포츠센터 건물은 적법하게 두 차례 증축했으며 지난 8월 법원 임의 경매로 소유자가 변경됐고 리모델링 공사를 한 뒤 11월 말 전문 기관의 소방 안전 점검도 받았다”고 밝혔다.

불과 1개월 전 소방 전문기관의 소방 안전 점검을 통과한 건물에서 예기치 못한 참사가 발생하면서 부실 점검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스포츠센터 같은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소방 안전 점검은 일반 건물보다 엄격하다.
 
사다리차 투입 지연
 
화재 초기 대응 부실 논란도 가열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주차 차량 견인 조치 때문에 사다리차를 이용한 구조가 늦어졌다고 항변했으나 목격자들은 처음부터 고장 난 사다리차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목격자 B씨는 “사다리가 펴지지 않아 초기 구조와 진화에 실패한 것”이라며 “뒤늦게 이삿짐센터 사다리차를 불러 건물에 있던 주민을 구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방당국의 주장은 다르다.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은 현장 브리핑에서 “45% 경사로 사다리를 펴야 하기 때문에 공간이 있어야 했고, 이 때문에 주차된 차량 이동 조처가 필요했다”면서 “주차 차량 4대를 견인하면서 늦어진 것일 뿐 사다리차가 고장 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또 “사다리차의 밸브가 얼어 터져 수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장 때문에 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며 관련 의혹을 거듭 부인하기도 했다.

이어 “1층에서 불이 나 화재에 취약한 건물 내외장재에서 발생한 유독가스가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인명 피해가 커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화재 전문가들은 화재가 이렇게 커 진 것이 스포츠센터 내 방화벽이 닫혀 있지 않았거나 스프링클러 미작동 가능성도 제기하는 상황.

목격자와 소방당국 양 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으나 굴절 사다리를 이용한 구조 활동이 늦어지면서 골든타임을 놓쳤고, 엄청난 인명 피해로 이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근규 제천시장은 “불법 주차 때문에 사다리차 투입이 늦어졌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것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됐다”며 안타까워 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화재 사고에 대해 애도를 표명하면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다짐했다.

추미애 대표는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건축법상 외장재 사용이 금지된 드라이비트가 시공됐지만 방치된 점’, ‘굴절사다리차가 펴지지 않았고 현장 지휘가 미흡했던 점’, ‘화재진압 차량 진입이 주차 차량으로 지연된 점’ 등을 들어 ‘부실한 건축행정’, ‘미흡한 소방행정’, ‘안전불감증’을 질타했다.

그는 “사고 발생과 사고에 대한 태도까지 모든 것이 지극히 후진적”이라며 “안전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후진적 관행을 깨지 않으면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면서 “재난관리 체계, 행정규제, 지방행정 등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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