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 채권자에 눈치 보며 전전긍긍 ‘무대책’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지난 18일 오전 9시경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 등 4명이 민주노총 사무실을 나와 더불어민주당 당사로 들어갔다. 이들은 곧장 9층에 위치한 당대표 사무실을 점거한 뒤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요구사항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등 구속 중인 노동자 석방, 근로기준법 개악 중단, 정치 수배 해제 등이다. 이들의 농성은 22일 기준 4일째를 맞았다. 하지만 정작 당대표 사무실을 점거 당한 민주당은 특별한 반응이 없다. 오히려 공식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방탄당’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쓴 민주당의 무대책 속사정을 알아보자.
 
이영주 사무총장…불법·폭력시위 주도 혐의로 2년째 수배 중
문재인 대통령 “딱 1년만 정부를 믿고 힘을 실어 달라” 

 
민주당 당대표 사무실을 점거한 사람은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이다. 이 사무총장은 현재 수배중이다. 그는 지난 2015년 4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 5월 1일 노동절 집회 등에서 불법·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2년 넘게 수배 중이다.

지난 20일 민주당 지도부는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사 점거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민주당 이춘석 사무총장이 농성 중인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만나 퇴거를 요청했지만 설득에 실패했다.
 
민주당 “자진 퇴거 기대”
노동계 등 돌릴까 걱정

 
민주당에서는 민주노총이 한상균 위원장 석방까지 주장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이들을 자극할 경우 노동계가 등을 돌릴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수배자를 보호하고 있다며 ‘방탄당’이라고 비판을 해도 아무 말 못하는 이유다.

또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8829명의 투표 결과값이 입력되지 않아 결선투표가 미뤄지는 등 내부 혼란이 있는 상황에서 개입이 더욱 조심스럽다.

당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권한도 없고 우리 입장도 없는 상황”이라며 “일단 지켜보면서 물밑으로 대화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민주노총 선거가 끝난 후 이들이 자진 퇴거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도 노동계의 입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화두다. 앞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3당 간사는 지난달 근로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되 기업 규모별로 시기를 유예하고, 휴일 근무 할증은 현행대로 하기로 합의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서 주말수당 중복할증을 폐기한 합의안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환노위 소위 통과가 무산된 바 있다. 당내에서도 노동계 입장을 강하게 대변한 강병원·이용득 의원 등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에 홍영표 환노위원장 주도로 21일 수정안을 제시하며 노동계의 입장을 반영하는 데 힘썼다.

수정안은 기존 여야 합의안에 더해 휴일근로 할증률에 대한 절충안이 추가됐다. 2021년 6월30일까지는 휴일근로 할증률을 50%로 하되 근로자 수에 관계없이 이후에는 일괄적으로 100%를 적용하는 내용이다. 우원식 원내대표도 이 안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26개에서 10개로 축소하고, 남아 있는 특례업종도 2021년 7월 1일부터 전면 해지하는 안이 포함됐다. 그러나 홍 위원장과 여야 환노위 간사들은 21일 오전 비공개 회의에서 이 같은 안에 합의하지 못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는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상황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민주당 입장에서는 민주노총 관계자들을 내쫓을 수도 없어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권 창출에 한 몫했다며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요구하며 ‘촛불청구서’를 들이민 민주노총을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당 “촛불청구서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 비판

 
민주당이 무대책으로 일관하자 야당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20일 정호성 부대변인 명의로 ‘법치를 조롱하는 민주노총의 촛불청구서를 국민들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정호성 부대변인은 “수배 중인 이영주 민노총 사무총장 등 민노총 조합원 4명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점거한 지 이틀이 지났다”며 “이 사무총장은 경찰관 76명이 다치고 경찰 버스 43대가 파손됐었던 2015년 소위 ‘민중 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수배자”라고 지적했다.

또 정 부대변인은 “명백한 범죄자인 이 사무총장이 민노총 사무실에 있을 때도 사무실을 나와 민주당사로 이동할 때도, 민주당 대표실을 점거하고 농성할 때도 경찰은 체포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며 “법치와 적폐 청산을 외치는 더불어민주당도 그 흔한 논평 하나 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정 부대변인은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민주당을 빗대어 “민주노총이 들이민 촛불청구서 앞에는 쩔쩔매는 모습”이라며 “경찰이 지명수배된 범죄자의 은신처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체포하지 않는 것, 범죄자가 유유히 돌아다니도록 방조한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로 관련자에 대해 책임을 엄하게 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른정당도 21일 권성주 대변인 명의로 “방 주인이 쫓아내려 하지 않으니 ‘점거’라는 표현보단 ‘대실’이 맞다”며 비판 논평을 발표 했다.

권성주 대변인은 “불법 폭력시위 주도 혐의로 수배 중인 민주노총 이영주 사무총장이 집권 여당의 당대표실을 사용한 지 사흘째”라며 “민주당 지도부 다수는 ‘민주 세력인 우리가 강제로 그들을 내쫓을 순 없다’고 한다”며 비판했다.
 
문재인 러브콜에
노동계 ‘농성’ 화답

 
이어 권 대변인은 “그들이 말하는 ‘민주’의 정의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민주당 당사는)치외법권 적용 대상도, 경찰이 들어갈 수 없는 곳도 아니다”라며 경찰의 민주노총 관계자 체포를 촉구했다.

민주노총의 초법적 행동에 대해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친노조 정책이 한몫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공공상생연대기금 관계자들과 ‘상생연대를 실천하는 노사와의 만남’ 행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중단된 사회적 대화 체제를 다시 가동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며 ”정부도 사회적 대화 활성화와 상생연대를 위해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노사정위원회 재개를 강조하면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의 참여를 유도하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날 마무리 발언에서도 문 대통령은 노동계에 러브콜을 보냈다. 문 대통령은 “노사정 타협을 위해서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신뢰받는 정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노사 양측도 딱 1년만 정부를 믿고 힘을 실어 달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노동계를 국정의 주요 파트너로 삼겠다고 일자리위원회 등에서 꾸준히 언급해 왔다. 하지만 새 정부와 노동계 동반 행보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각론이 더 뒷받침돼야 하지만 진정된 안이 나온 것이 없었다.

노사정위원회는 김대중 정부 시절 IMF를 극복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하지만 1999년 민주노총이 정리해고·파견근로제 도입에 반대해 노사정위를 탈퇴했었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1월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탈퇴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노사정위 정상화를 추진해 왔지만 정부, 한국노총, 민주노총이 다른 구상을 가지면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렸던 노동계 인사 청와대 초청 만찬에 한국노총은 참석했지만, 민주노총이 불참하면서 ‘반쪽 회담’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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