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놓고 여론 뭇매…정부 최소화 약속했지만 출전 기회 축소 논란

- 머리 감독, 라커룸 재배치 등 팀워크 끌어올리기에 나서며 수습에 돌입
세라 머리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총감독, 박철호 북한 감독(왼족부터)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평창동계올림픽이 2주가량 남긴 상황에서 급진전된 남북 단일팀 합의로 인해 여자 아이스하키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더욱이 마지막 담금질을 앞두고 선수구성 단계부터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면서 대표팀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기존 선수들에 대해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는 답변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정치적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등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단 15명은 지난 25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방남한 뒤 우리 선수들이 훈련 중인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 짐을 풀었다.

이날 북측 선수단은 남한 측 선수들이 전한 꽃다발을 받아들고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로 간단한 환영식을 가졌다. 아직까지 양측 선수단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시간 앞에서는 그 누구도 웃음 짓기에 힘든 상황이다. 다음 달 10일 스위스와 조별리그 첫 경기까지 2주 남짓 남아있다.

이에 세라 머리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은 팀 스포츠의 기본인 팀워크를 빠르게 끌어올리기 위해 라커룸 재배치 묘수를 꺼내들었다.

그는 라커룸에 있는 35개의 개인 라커를 ‘남·남·북·남·남·북’ 순으로 배치하도록 해 한국선수 2명과 북측 선수 1명을 한 묶음으로 순서를 배정해 선수들이 빨리 친해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머리 감독은 곧 바로 합동 훈련을 진행하지 않고 남북 선수들이 따로 훈련하게 해 북한 선수들의 기량을 먼저 체크할 예정이다. 그런 다음 합동훈련에 들어가기로 했다.
 
北 4라인 수준,
정치적 압박 변수

 
아이스하키는 통상 체력 소모가 심하다 보니 골리를 제외한 5명(공격수 3명, 수비수 2명)을 한 라인으로 묶어 4개 라인으로 구성한다. 이 라인을 통째로 바꾸면서 경기를 끌어가게 된다.

보통 1, 2라인에 가장 강한 선수들을 배치하고 3, 4라인은 주전 선수들이 쉴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면서 수비에 주력하는 게 보통이다.

한국은 그간 1~3라인을 위주로 경기를 운영해 왔고 4라인의 경기 출전 시간은 매우 작았다.

이에 실력만 놓고 보면 북한 선수들은 4라인에서 제안된 기회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우리 대표팀이 가장 약한 라인인 4라인을 북한이 맡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북한은 지난해 4월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디비전 2그룹 A(4부리그)에서 한국에 0-3 완패를 당할 정도로 남한과 전력 차이가 크다.

다만 4라인의 출전 시간이 미미할 경우 정치적인 압박이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자칫 뜨거운 감자가 될 수도 있다.
 
    비 메달권 종목 지목…
희생 논란 촉발
 

급조된 단일팀이 순항하기까지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머리 감독도 이번 결정을 높고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일 IOC회의가 열린 날 자신의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프로필에 “Are We Predators or Are We Prey?(우리는 맹수인가 먹잇감인가)”라고 표기해 단일팀 구성으로 혼란에 빠진 대표팀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단일팀 논란은 정부 스스로도 자초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6일 출입 기자단과 점심을 같이 먹으며 한 간담회에서 한 발언이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이 총리는 “여자 아이스하키가 메달 권에 있거나 그렇지는 않다. 여러분 잘 아실 것이다. 세계 랭킹 우리가 22위, 북한이 25위 이런 선일 텐데, 그런 선수들 중에서 역량이 빼어난 선수는 북한 선수라 하더라도 1분이 될지 또는 1분씩 여러 번 뛰게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섞어서 뛴다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도 그다지 큰 피해 의식이 있지 않고 오히려 선수들로서도 좋은 기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에 대해 곳곳에서 비난을 받자 이 총리는 지난 19일 “제 발언으로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 사과드린다”고 한 발 물러섰다.

청와대도 직접 진화에 나섰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21일 공식 입장문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놓고 그동안 땀과 눈물을 쏟으며 훈련에 매진해왔던 우리 선수들 일부라도 출전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는 것도 당연하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우리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해명했다.
 
‘공정성’ 논란에
여론도 싸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늘한 여론은 좀처럼 마움을 돌리지 않고 있다. 실제 문재인 정권의 핵심 지지층으로 불리는 20~30대가 크게 요동치고 있어 남북 화합을 위해 급조된 단일팀에 대한 논란에 해소가 필요해 보인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 25일 발표한 리얼미터 1월 4주차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에서는 59.8%로 나타나 취임 후 처음으로 50%대를 기록했다. 또 26일 발표된 한국갤럽조사에서도 64%까지 지지율이 하락했다.

특히 지지율 하락에는 아이스하키팀 남북 단일팀 구성, 동시 입장 등으로 인한 평창동계올림픽 논란의 영향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을 두고 2030세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인 ‘공정성’을 해친 데 따른 결과라고 진단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지지층인 2030세대가 남북 단일팀 결성 과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그 영향 등으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로 떨어졌다고 분석하기로 했다.

실제 한 청와대 관계자는 단일팀 구성 논란에 대해 “공정하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20~30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일국 북한 체육상,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부터)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서 자칫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선 이번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용어 문제부터 부딪혔다. 수년 동안 양측은 다른 용어 다른 전술과 시스템이 뿌린 내린 상태다.

20일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북한선수를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 4년간 다져왔던 조직력이 무너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더욱이 북한 선수들의 합류로 한국대표팀 선수들의 실질적 피해가 발생해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꼴이 됐다. 기존 최종 엔트리로는 23명 중 경기마다 1명이 엔트리에서 빠지고 22명이 벤치에 앉아 조별리그 예선을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단일팀 구성으로 적어도 3명의 북한 선수들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매 경기 한국 선수 4명은 명단에서 아예 제외된 채 올림픽 경기를 봐야 하는 신세가 됐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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