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구조조정 ‘첫발’ 회생 가능 기업만 살렸나?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한국경제 시한폭탄 ‘좀비기업’에 대한 현 정부의 첫 제재가 시작됐다. 좀비기업은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통해 이자나 원금을 갚지 못해 금융지원에 의해 연명하는 기업을 지칭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일부 좀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혈세로 연명하는 금호타이어와·한국GM에 대한 경고 의미가 내포됐다는 지적이다.

성동조선 법정관리…STX엔 자구안 요구 //12조 원 쏟아붓고도 구조조정…뒷말 무성

수년간 이어진 성동조선과 STX조선의 구조조정이 마무리됐다.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됐지만 현 정부의 첫 구조조정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통 분담이 없으면 모두가 어렵다”며 해당 기업의 고강도 자구책을 강조했다.

운명 엇갈렸지만 앞날 불투명

업계에 따르면 2010년 4월 자율협약부터 8년에 걸친 성동조선 회생 계획은 결국 법정관리로 마무리됐다. 중대형 선박을 주로 생산하는 성동조선은 2003년 설립 당시만 해도 견실한 중형 조선소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부실이 누적되면서 채권단으로부터 신규 자금과 출자전환 등 총 4조2000억 원의 금융 지원으로 연명해 왔고 2015년에도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성동조선은 지난해 외부컨설팅 결과 청산가치가 7000억 원으로 계속기업(구매·생산·영업 등 기본 활동을 수행하는 기업) 가치 2000억 원보다 세 배나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정부는 금융 논리 외에 산업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며 처분을 유예하고 지난해 말 회계법인인 삼정KPMG에 2차 컨설팅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성동조선의 기능을 조정한 뒤 회생시키는 방안이 유력하게 떠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생존 가능성이 크지 않은 ‘좀비 기업’에 다시 혈세를 퍼붓는다는 비판 여론이 일면서 정부는 성동조선을 법정관리에 넣을 것으로 보인다. 성동조선과 함께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STX조선은 인력 감축 등을 통한 정상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STX조선은 당장 법정관리를 피했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STX조선이 건조 경험이 있는 LNG선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다”면서도 고강도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STX조선은 2016년 법정관리를 거쳐 지난해 조기 졸업했지만 다음 달 9일까지 추가 자구계획안을 내놓지 않으면 산은이 선박 수주 관련 보증을 중단해 2번째 법정관리로 가게 된다.

금호타이어·한국GM에 경고 의미도

업계는 이번 구조조정과 관련해 구조조정의 원칙을 세운다는 의미로 보고 있다.
특히 현 정부 출범 이후 회생 불가능한 ‘좀비 기업’에 추가 혈세 투입은 없다는 원칙이 관철됐다는 것. 과거 구조조정과 달리 섣부른 공적자금 투입이나 회사 청산보다는 ‘생존 가능성과 고통 분담’이라는 두 축 위에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부실 예방과 사전 경쟁력 강화, 시장 중심, 산업과 금융 논리의 균형 등 구조조정 3대 원칙에 따라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성동조선과 STX조선에 다른 해법을 적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성동조선과 STX조선이 동시에 법정관리로 가면 조선산업 전반의 생태계 파괴 우려가 있다”며 “중소형 탱커 등 수주를 받을 조선사가 당분간 존재할 필요가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한국GM과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에 대한 경고 의미로 본다. 한 관계자는 “한국GM과 금호타이어 등 다른 산업 구조조정도 경제 원리대로 풀어야 한다. 좀비기업이 세금으로 연명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이날 대책에도 불구하고 조선산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많다. 2015년 이후 정부와 채권단이 20조 원에 이르는 돈을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빈사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좀비기업 수는 지난 2013년 3000개를 넘어선 후 한 번도 그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국내 외부감사 대상법인 가운데 3년째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갚고 있는 좀비기업(한계기업)은 3126개(2016년말 기준)로 집계됐다. 2010년(2400개)과 비교하면 30% 늘어난 것으로, 전체 국내 외부감사 대상법인의 14.2% 수준이다. 더 작은 기업으로 범위를 넓히면 연명만 하는 기업 비율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좀비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정상 기업들에게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KDI에 따르면 금융지원을 받은 좀비기업 자산이 10%포인트 증가할수록 정상기업의 고용증가율과 투자율은 각각 0.53%포인트, 0.18%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대희 KDI 연구위원은 “기업 구조조정이 지체되는 현상이 지속될 경우 우리 경제의 전반적인 역동성이 저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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